4차 산업혁명은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등 3개 분야의 기술이 융합된 사회 변화를 뜻한다.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회자되며 인류 생활의 대변혁을 예고했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저 이론으로 존재했다. 코로나19는 이 상황을 바꿨다.
인류가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으로 강제 소환됐다. 원격 수업과 재택근무는 시·공간을 초월한 생산 활동이 가능함을 일깨워줬고 기술 진보 속도를 체감케 했다. 그런데 20여 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원격 수업의 도래를 예견하고 미래 교육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이가 있다. 한양대 이현청 석좌교수다. 4차를 넘어 5차 산업혁명 시대가 목전에 다가왔다며 ‘준비하는 대학만이 살아남을 것’이라 역설한다. 대학교육, 그리고 그와 떨어질 수 없는 중등교육과 대입까지 아울러 미래를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내일교육> 창간 20주년을 맞아 그의 혜안을 좇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이의종
이현청 교수는
한양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남일리노이대에서 교육학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부산대 교수를 거쳐 호남대와 상명대 총장으로 재직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IBC가 선정한 ‘세계 100대 교육자’, 미국인명정보기관(ABI)이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사상가’에 등재됐고, 2011년 고등교육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ABI가 주관하는 ‘국제 업적상’을 수상했다. <4차 산업혁명과 대학의 미래> 등 국내외에서 38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현재 한양대 석좌교수와 고등교육연구소장으로 있다.
대입에 얽매인 고교 교육,
공정성 새로 봐야
고등교육 전문가로서 현재 고교 교육을 진단한다면?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는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암기식, 강의식 수업이나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한 과도한 성적 경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융합적 사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지식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이로 볼 때 고교 교육과정이 학교가 규정한 획일화된 프로그램에서 학생 스스로 설계하는 ‘교과 선택제’로 전환된 것, 더 나아가 학생 개개인의 진로를 고려해 과목을 선택 이수하는 ‘고교학점제’가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것 모두 바람직한 현상이라 본다.
지금 말한 ‘바람직한 변화’에 대해 반응이 엇갈린다.
특히 대입과 결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지금의 고교 교육은 대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래 인재의 육성을 위해 다양성으로 흘러가야 할 교육이 입시의 틀 안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최근의 정시 확대는 이 틀을 더 공고히 했다고 본다.
지금 이 시대에, 수능이라는 시험이 과연 교육의 목표에 합당한지 다 같이 재고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능의 도입 취지를 아는가? 1994년 창의적 미래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로, 단편적인 지식 암기에서 벗어나 종합적 사고를 신장시키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5지선다형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능의 출제 유형이나 형태를 파악한 사설 학원들은 학생들에게 시험 대비 요령만 터득케 했고, 사교육 시장만 부풀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취지를 살리지 못했고, 비교육적 결과를 불러왔다. 게다가 ‘다양하고’ ‘융합하는’ ‘개별화된’ 교육이 절실한 지금, 획일화된 시험 결과로 줄을 세워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적절한가도 의문이다.
‘수능’으로 대표되는 종전의 입시 체제는 한계에 달했다고 본다. 시대 변화에 맞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 선발의 재량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수능 응시 여부부터 응시 영역까지 학생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래 인재, 융합형 인재를 키워내겠다며 고교 교육은 학점제를 도입해 마음껏 교과목을 선택해 스스로의 진로를 설계하라 해놓고 대입은 이와 별개로 정형화된 과목, 성적이 잘 나올 과목으로 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대입이어야 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고교 교육이 대입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입시 변화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특히 제시한 방안은 ‘공정성’과 관련해 논쟁의 여지가 있다.
입시를 논할 때면 항상 ‘공정성’이 대두된다. 공정성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평등의 관점에서 ‘기회의 평등’을 말한다. 기회를 가짐에 있어 모든 개체들이 동등하게 보장받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은 각자 타고난 능력과 출생 지역 또 경제적 계층이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한데, 교육에서만 갑자기 평등해질 수는 없다. 따라서 교육에서의 평등은 ‘불평등+불평등’이어야 한다. 앞서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더 안고 있는 ‘불평등 요소’를 보완시켜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교육에서의 복지, 장학 지원의 방향을 다듬어야 한다. 학생의 능력과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등 지원하는 불평등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평등, 그리고 공정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교육과정에서도 불평등이 개입돼야 한다. 학습 기회는 누구나 평등하게 얻어야 하나 수학 머리를 타고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교육 방식이 같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입시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재고해보자. 대입에서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 과연 공정일까. 어떤 이는 모두가 똑같은 객관식 시험을 보고 동일하게 평가받는 것을 공정이라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을 객관식 시험으로 평가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답은 다를 수 있다.
다양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사람마다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져야 개인도 사회도 살아남을 수 있다.
다만, 다른 생각이 부딪힐 때 해법이나 기준은 4,5차 산업혁명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 수능의 특성과 결과를 보자. 지금처럼 획일화된 평가에서 특정 성적을 얻은 사람이 특정 대학에 모이고, 비슷한 직장·유사한 직업을 갖는 사회에 머문다면, 그 사회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전국 고교의 전교 1등이 전부 자연 계열, 의대 지망생일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공정성이 ‘다양성의 실종’과 동의어가 돼서도 안 된다. 기회의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특정 대학, 특정 학과로의 쏠림이 심화된다. 이는 다양성이 요구되는 미래 사회를 역행하는 것이다.
대학 생존의 열쇠는 ‘융합’,
바탕 되는 핵심 과목 재조명해야
최근 인문 계열 전공도 코딩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대학 교육도 많이 바뀌고 있다.
2030년이면 5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다. 융합에 융합이 중첩된 재융합의 시대가 열린다는 뜻이다. 변화의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현재 대학에서 도입한 AI와 빅데이터, 코딩 교육 등의 융·복합형 학문 영역의 확대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더 빨리 바뀌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미 달라지고 있는 직업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는 졸업생 배출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때, 대학은 단순히 산업 변화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교육의 방법론과 교육과정, 학과 설치와 운영까지 전반을 재고해야 한다. 학과 간 벽을 없애고 기초 이론을 넘어 AI와 빅데이터, 3D, 로봇을 직접 활용해보는 융·복합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지금의 대학생과 청소년들은 한 직업, 한 전공으로 생존할 수 없다.
미래학자들은 한 사람이 평생 7~16개의 직업을 가질 것으로 예견한다. 직업·지식의 유목민으로 살아갈 텐데 어떠한 환경이 됐든 바로 적응할 수 있어야 생존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전공도 복수 전공이나 부전공 형태의 소극적 융합이 아닌 다양한 과를 넘나드는 대융합 체계를 구축해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본다. 대대적인 개혁에 뛰어들어야 한다.
세계 대학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대학은 무엇에 중점을 둬야 하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IT 산업이 발달했지만, 그에 수반한 콘텐츠와 전문가 양성에는 실패했다. IT의 본질을 놓치고 게임, 통신 쪽으로만 키운 게 화근이었다. AI와 빅데이터도 한발 늦었다. 그러나 로봇과 3D, 클라우딩, 핀테크 분야는 승산이 있다. 이를 대한민국만의 융합 모델로 확장시켜 K팝처럼 K교육으로 특성화시켜야 한다.
또 어떠한 변화가 닥쳐도 응용의 줄기를 뻗쳐나갈 뿌리가 되는 ‘핵심 학문’에 힘써야 한다. 인문사회 계열의 ‘철학, 심리학, 사회학’, 자연과학 계열의 ‘물리학, 생물학, 화학, 수학’이 바로 그것이다. 이 7개 영역을 기본으로 모든 융합이 재편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의 중·고교와 대학에서는 이들을 도외시하고 있다. 학생들이 배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어떤 과목은 삭제되고 어떤 과목은 선택 과목으로 전락했다.
시대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은 기존 교육을 대체하는 학문을 배운다거나 하고 싶은 과목만 배우는 교육이 아니다. 핵심 학문은 지금보다 오히려 더 탄탄하게 교육돼야 한다. 그 뒤 변화에 필요한 새로운 교육, 응용 학문이 추가 돼야 한다. 사고의 확장,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호기심과 창의력은 그 바탕에서 성장 가능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교육의 방향을 짚어준다면?
초·중·고를 비롯해 대학까지의 모든 교육과정이 연계돼야 한다. 특히 고교와 대학은 긴밀한 연계가 요구된다. 선택형 교과 과정이나 고교학점제는 개인의 자질과 잠재력을 조기에 구현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대학에서 꽃피우게 해야 한다.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시시각각 변하는 4차, 5차 산업혁명 사회에서는 고정된 교육과정을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획일화된 방식은 ‘대학의 종말’을 불러올 것이다. 단기적이고 경쟁력 있는 단기 학위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 또한 학령인구의 감소와 대학의 글로벌화로 앞으로 어떤 대학도 정원을 모두 채울 수 없을 전망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이 아닌 양질의, 경쟁력을 갖춘 교육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정부 보조금에 의지하려는 안일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시공간의 제약 없이 원격 수업을 통한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대학은 지금의 모습을 탈피해 ‘교육 플랫폼’ 즉 평생 교육을 책임지고 제공하는 장이 돼야 한다.
청소년,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가
달라진 시대, 대학과 전공의 선택 기준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조언을 해준다면?
지금의 시각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에는 법조인이 각광받았고 경영학도가 그 뒤를 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의사가 되길 희망한다. 안정적인 전문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 남학생이 2021년에 의대에 입학한다고 가정해보자. 의대를 나와 군의관을 거쳐 인턴과 레지던트 전문의 과정을 마치는 데 평균 16년이 걸린다. 2037년이 된다는 뜻이다. 앞서 5차 산업혁명이 2030년이면 도래한다고 했다. 5차 산업혁명은 제약, 의학, 생체학의 혁명이기도 하다.
전 세계 의료계는 풀제(pool制, 같은 업종이 협력을 맺어 이윤을 분배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이다. 독일에 있는 의사가 러시아에 있는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과 처방은 각 병원의 AI의사가 하는 시스템이 된다는 의미다. 의사 충원을 위해 많은 인재를 양성할 이유가 없다.
이제 학생과 학부모 모두 명문대에 진학하면, 의대에 가면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래학자들은 2030년이면 오늘날 직업의 40~70%가 기계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한다.
사라질 직업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들이 판사, 의사, 변리사 등 고연봉의 전문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학교의 자유학년제나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를 도입한 이유가 여기 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어떤걸 좋아하는지, 내가 배우고 싶고 그를 토대로 생각을 확장해나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답이다.
교육의 또 다른 주체인 학부모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
얼마 전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 구글의 CEO 순다르 피차이와 대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각기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를 물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대답은 같았다.
스펙과 대학은 보지 않는다. 지원자의 도전정신과 호기심, 팀워크 즉 다수의 사람들과 협력 가능한가의 여부만 본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은 창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더 이상 성적 줄 세우기, 일류대 고집하기는 통하지 않는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개별화된 교육으로 개편돼야 한다.
교육에 있어 학생은 학습권, 학부모는 위탁권, 정부는 관리권, 대학은 선발권과 교수권이 있다. 기업은 대학이 배출한 인재를 쓰는 수혜자다. 이들을 모두 일컬어 ‘교육의 주체’라 한다. 이 교육의 주체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며 합의하고 생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미래는 암울하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다양한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올바른 가치를 지향할 때 변화는 조금씩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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