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뒤로

피플&칼럼

975호

ISSUE INTERVIEW | 대우주와 몸속 소우주 연결하는 나노로봇공학자 김민준

SF영화 현실로 만드는 힘? 상상하고 도전하라!

영화 <이너스페이스>에는 사람의 혈관 속을 유영하는 초소형 잠수함이 등장한다. 개봉 당시에는 단지 기발한 상상력에 불과했던 일이 30여 년 만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 몸속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 크기의 나노로봇을 투입해 암세포에 직접 항암제를 투약하거나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는 ‘최소 침습 수술’이 머지않아 가능해질 전망이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술이 개발된 건 나노공학, 유전공학, 로봇공학의 다학제 간 융합 연구 덕분이다. 첨단 기술 개발의 선두에 선 나노로봇공학자 김민준 교수는 SF영화 속 기술을 현실의 공학으로 구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도발적인 상상력과 혁신적인 도전정신을 꼽았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재 백정은 리포터 bibibibi22@naeil.com




김민준 교수는
연세대 기계공학과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A&M대 기계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브라운대 공과대학원에서 ‘박테리아를 이용한 미세유체역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 박사 후 과정을 거쳐 드렉셀대에서 교수로 근무했고, 독일의 막스플랑크 광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생체공학센터 등에서 연구했다. 2016년 ‘동맥 혈관을 따라 수영하는 마이크로로봇’을 개발한 공로로 그해 가장 혁신적이며 전도유망한 기술에 수여하는 유네스코-넷엑스플로상을 받았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서던메소디스트대 기계공학과, 전기·컴퓨터공학과, 화학과에서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나노로봇이란 무엇인가?

나노로봇은 머리카락 굵기의 1천 분의 1에서 10만 분의 1 크기인 아주 작은 로봇이다. 사람의 머리카락 두께가 보통 0.15mm 정도 된다. 원래 나노(Nano)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한 말이다. 크기가 너무 작아 인간의 눈으로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스스로 환경을 인식하고 상황을 판단해 자율적으로 동작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반적인 로봇과 달리 무기물뿐 아니라 생체 재료들의 생화학적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를 모방해 만든 ‘인공 박테리아 나노로봇’은 박테리아처럼 세포체와 편모를 갖고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미터의 세계에 몰두하다 보면 때론 소인국에 간 걸리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바이러스·DNA·단백질·박테리아에 ‘극초미세 가공 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나노로봇을 만든다. ‘극초미세 가공 기술’이란 나노 단위의 구조물이나 기계를 제작하고 시스템화하는 기술로 반도체·전자 등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딥러닝·머신러닝 등 다양한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나노로봇의 자율주행을 위한 운동 제어, 행동 계획, 위치 추적, 환경 인식 등의 알고리즘도 개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노로봇을 인체 내에 투입해 ‘표적 지향형 약물 전달’과 ‘최소 침습 수술’의 의학적 임무를 수행하도록 다양한 실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나노로봇이 상용화되면 알약을 먹는 수동적인 약물 전달 방식을 암세포 같은 표적에 정확하게 항암제를 투약하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인간의 뇌를 탐험하는 날도 올 것이다. 현실 세계가 직면해 있는 많은 의공학적 문제들이 나노로봇에 의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SF영화에 나올 법한 ‘나노로봇’을 연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고등학생 때 영화 <이너스페이스>를 보면서 보이지 않는 작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폭발했다. ‘이너스페이스’는 우리 몸속의 소우주를 뜻하는 말로 한 비행선 조종사가 초소형으로 작아진 채 다른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그린 공상과학물이다. 영화 속 상상을 현실에 구현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기계공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전기화학·미세유체역학·생물리학 등을 공부했다. 기계공학을 넘어 다양한 학문을 경험해본 덕분에 학문의 영역을 넘나드는 융합 연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교수가 된 후 로봇공학자들과 함께 유체공학과 로봇공학의 시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작은 로봇이 몸속으로 들어가 암세포를 제거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기술에 대한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노로봇공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게 됐다. 도발적인 상상이 현실의 공학으로 구현된 셈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나노과학 기술과 로봇공학의 다학제 간 융합의 결과물인 나노로봇공학이 본격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 년 전부터다. 당시 나는 드렉셀대에서 ‘박테리아를 이용·모사한 마이크로·나노로봇’을 연구개발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던 순간이 많았다. 어떤 연구보다 더 굳은 신념과 의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만남을 가졌고, 그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유능한 사람은 유능한 사람을, 정직한 사람은 정직한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고 믿는다. 과학 연구는 그러한 사람들 간의 만남 속에서 끊임없이 진보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첨단 나노로봇공학 연구에서 강조되는 역량은?

융합과 소통, 도전과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노로봇공학은 혼자 하는 학문이 아니다. 유전공학, 나노공학, 로봇공학의 융합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결과물이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긴밀히 소통하며 공동 연구를 통해 결과를 하나씩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나노로봇공학은 로봇에 관한 인문학이자 기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박테리아의 운동성을 자연 모사해 다양한 나노로봇의 디자인에 활용하고, 그 운동역학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미생물학자, 유전공학자, 재료공학자, 화학자, 응용수학자, 제어 이론가, 의공학자, 로봇공학자와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한다. 융합형 연구팀이 천재 한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재다능한 천재는 학문 이 방대하지 않던 과거이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문의 융합을 통해 혁신을 이루려면 열린 마음과 다양한 소통 역량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도전이 있어야 실패 또는 성공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삶과 기술의 혁신이 일어난다. 나노로봇공학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귀담아들었으면 좋겠다.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공부는 인생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익히고 기르는 과정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공부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찾길 바란다. 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공부를 한다면 현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희망인 것은 미래를 살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반납하는 청소년과, 현재의 행복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은 삶의 질이 다르지 않을까?

한 가지 더, 꿈은 언젠가는 꼭 이뤄진다는 걸 믿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언제 이뤄지느냐는 나중 문제다. 자신이 꿈꾼 인생을 꿈 안에 내버려두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세상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지만 우리는 과정을 배워야 한다. 꿈을 이룬 사람보다 꿈을 이뤄나가는 사람이 더 행복한 이유다.



대우주와 우리 몸속 소우주를 연결하는 나노로봇공학자의 융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SF소설에 나올 법한 일을 현실의 과학으로 만들어낸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 (주)내일교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0

댓글쓰기
240318 숭실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