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영국도 중학교를 기점으로 학생들의 세계가 크게 바뀐다.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 역량을 더해가는 때이면서, 여러 문제에 노출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영국 학교의 특징적인 문화와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려 한다.
타인 아닌 ‘나’에 집중하는 중등학교
영국의 초등학교는 보통 학년당 두세 학급으로 규모가 작다. 그러다 7학년, 한국의 중·고등학교를 합한 중등학교에 입학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학교의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져, 학생들의 세상 역시 수십 배로 커진다.
더 커진 세계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학업에 집중한다. 앞서 말했듯 영국은 중등학교도 절대평가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성취가 중요하다 보니, 학교 전반의 문화도 타인과의 경쟁보다 자신의 기초 역량을 닦고 관심 분야를 찾아 깊이를 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중1부터 학년은 같지만, 학습 능력을 기준으로 반이 갈린다. 대부분의 학생은 과목마다 학습 능력이 다르기에, 그에 따라 대학처럼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다. ‘우열반’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와는 좀 다르다. 개별 학생의 수준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 학교에서 높은 학습 능력을 가진 학생을 우대하는 일은 없고 학생들 역시 자부심 혹은 열등감을 느끼는 일이 없다. 자신의 현재 실력에 맞는 수업을 따라갈 뿐이다.
과목 학습도 차이 난다. 중등학교 5년 중 3년은 전 과목을 공부한다. 한국의 중학교 과정과 유사한 시기인데, 학생이 적성에 맞는 과목을 찾아 심화하는 한편 싫어하거나 취약한 과목도 기초를 닦는다. 이 과정을 지난 10학년은 GCSE(중등학교 능력 시험) 과정에 들어간다.
이때는 필수인 영어 영문학 수학 생물 물리 화학을 제외하고 4과목을 선택해 총 10개 과목만 파고든다.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다 보니 학생마다 배우는 과목이 제각각이다. 공학 계열 지망은 심화수학, 의학 계열 지망은 수학 과학 등 희망 전공에 따라 과목이 달라지며, 라틴어나 그리스 어학·문학을 공부해 차별화하려는 학생도 있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목표로 한다면 비즈니스 컴퓨터 헤어 배관 등의 과목을 공부한다.
학교 시험은 시기가 있지만 띄엄띄엄 2주에 걸쳐 실시하며 석차는 매기지 않는다. 학생들은 평소 잘하던 친구를 기준으로 성적의 변화를 가늠하며, 교사도 개별 학생의 이전 시험 결과와 빗대어 성적 결과를 논의한다.
그렇다 보니 교사도 학생 개인의 궁금증이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다. 늘 “와서 물어봐야 네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할 수 있어”라고 당부하며, 성적에도 수업 참여도가 반영된다.
영국 학교의 그림자, 폭력과 약물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다만,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학교 또한 많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7학년, 중등학교의 시작은 모두가 비슷하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 뒤 8학년이 되면 한국의 ‘중2병’같은 문제점이 하나둘 표면에 드러난다. 가장 심각한 것은 따돌림과 학교폭력. 남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거나, 방과 후 단체로 싸우는 일이 잦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학생이 의자를 교실 창문으로 집어던지는 사고도 잦다.
술과 담배, 마약도 고질적인 문제다. 영국에선 담배 한갑이 1만5천 원 정도로 비싼 편인데, 그보다 저렴한 마약류를 학생들이 손쉽게 접한다. 부유한 가정의 엘리트들이 모인 사립 기숙학교도 이 문제가 심각하다. 따돌림의 경우, 신체·언어폭력에 최근에는 사이버상에서의 공격까지 더해져 피해자를 피폐하게 만든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학교 규칙을 어긴 학생들은 ‘detention’이라는 처벌을 받는다. 방과 후 30분 동안 남아서 반성문 종류의 에세이를 쓰는 식이다. 정도가 심하면 정학을 당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해법을 쉽게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이 많지만 제도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해, 당사자나 학교 모두 어려움을 겪는다.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영국 교육 문화의 장점을 많이 알리게 됐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상당수 학교, 적지 않은 10대가 여러 문제에 노출돼 있다. 한국 학생도 학습에 대한 태도가 양극화돼 있다지만, 영국은 더하다.
학업에 전념하지만 ‘공부’라는 틀에 갇힌 학습이 아니라, 자기계발·사회 활동·리더십·협력을 배우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그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이상적인 영국 중등학생들이 전체 학생 중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시간을 경험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사회 전반을 주도하다 보니, 영국은 엘리트리즘의 나라로 불린다.
그래서일까. 여러 설문, 연구에서 영국의 10대가 유럽에서 가장 삶의 만족도가 낮다는 결과를 자주 접한다. 치열한 경쟁에 지치는 학생, 일찍 자포자기하는 학생. 한국와 영국의 문제적 학생의 모습은 다르지만,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영국 United Kingdom
정은미 영국 통신원
잠깐 영어 공부를 하러 찾았던 영국 런던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두 딸아이는 영국 공립학교 10학년, 12학년에 재학 중이다.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공립 중·고등학교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 싶다. 소소한 영국 생활은 블로그(rubykor.blog.me)에서도 공유 중이다.
2020년엔 유학생 통신원과 학부모 통신원이 격주로 찾아옵니다. 7기 유학생 통신원은 캐나다와 싱가포르, 4기 학부모 통신원은 중국과 영국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학 선호 국가이지만 중·고교의 교육 환경과 입시 제도 등 모르는 게 더 많은 4개국. 이곳에서 생활하는 유학생과 학부모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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