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셰프들의 고향’이자 ‘가장 맛없는 요리’의 나라. 어렵지 않게 영국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영국은 맑은 날이 많지 않아 채소나 과일에 깊은 맛이 들기 어렵다. 정부 방침으로 기본 식자재는 저렴하게 공급되지만, 유기농·고품질 식자재는 비싸다. 그래서 감자와 육류 중심의 간편식을 중심으로 식문화가 발달했다.
동네 골목마다 채소 상점이 즐비하고, 베란다에서 상추나 방울토마토를 키워 먹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에 따라 생활상도 차이가 난다.
주식은 과자, 그마저도 굶어
영국 가정의 저녁식사는 대부분 간편식이다. 전자레인지 등으로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맞벌이가 일반적이라 가정에서는 조리가 단순한 음식을 선호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음식에 익숙하다 보니, 청소년들의 식문화도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10대들의 주식은 프렌치프라이로 한국에 알려져 있는 칩스(Chips)다. 컵라면(pot noodle)도 먹지만 간식 겸 주식으로 감자칩(Crisps)과 초콜릿만 먹는 아이들이 더 많다. 실제 소비량도 상당하다. 친구들과 학교 밖에서 어울릴 때도 제대로 된 식사보다 앞서 말한 칩스와 감자칩, 초콜릿과 에너지음료·탄산음료로 끼니를 때운다. 좀 제대로 먹는 게 패스트푸드일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체중인 청소년이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이유는 활동량 같다. 영국 청소년들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현저히 짧다. 공부는 몇 시간만 집중해서 책상 혹은 침대에 엎드리거나 반쯤 누워 한다. 나머지 시간엔 집 주변, 공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산책을 하고, 스포츠 활동에 열정을 바친다.
최근 외모 중시 경향이 더 짙어지면서 체중 감량과 탄탄한 몸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끼니를 거르는 비율이 매우 높다. 전체의 3분의 1에서 반 정도 되는 학생이 식사를 거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건강과는 거리가 먼 식사마저 잘 챙기지 않는 것.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정크푸드를 광고하는 대중매체와 연예인들을 비난하는 한편, 정부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다만 코로나19로 청소년들의 식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끼리의 식사 시간이 일상화되고,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등 요리를 경험하는 청소년도 많아졌다. 반면 빈곤층 청소년은 학교조차 가지 않다 보니 끼니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요리를 시작했으며, 간식 소비는 더 늘었다는 부정적인 현상도 조사됐다.
패션 강국은 중고 시장에서 탄생했다?
영국 10대의 패션은 SNS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유명 브랜드들이 매 시즌 새롭게 선보이는 스타일도 영향을 미치지만, 연예인들의 영향력이 더 크다. 가수나 배우뿐 아니라 SNS 인플루언서들의 사진을 보며 트렌드를 읽고 따라 한다.
요즘 영국 10대 패션 트렌드는 ‘Y2K’. Year 2000의 줄임말로 2000년대 패션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조금 과한 장신구와 단색의 소재, 작은 가방, 찢어진 스타킹, 벨트로 사용되는 목걸이 등이 특징이다.
40대에게 어울릴 듯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진주 목걸이도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짧은 상의와 속옷이 드러나 보이는 헐렁한 바지, 레오파드(leopard,표범) 프린트 상의와 굵게 주름이 잡힌 짧은 치마도 유행이다. 머리는 길게 땋아 내린 복고 스타일이 기본으로 특이한 색상으로 물들여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옷은 자신들의 용돈을 모아 사거나 중고로 사고판다. 나 역시 두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 옷을 사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 집 아이들은 브랜디 멜빌(Brandy Melville)의 옷을 사서 한철 동안 잘 입고, 상점에서 더 이상 판매되지 않을 때 인터넷에 내다 팔아 그 돈으로 새 옷을 사서 입는다. 이렇게 여러 패션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영국이 패션 강국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다. 자신의 용돈을 모아 직접 옷을 사니 본인에게 어울리거나 꼭 갖고 싶은 것을 사려 깊게 고민한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들은 또래 문화에 소외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옷차림을 하게 된다. 두 아이만 하더라도 자매라 서로 옷을 나눠 입는데도 각자 개성이 다르다. 대학생이 되고서도 직접 옷을 사러 다녀본 적이 없던 내겐 낯선 풍경이다.
음식과 옷. 두 가지로 영국 청소년들을 살펴보니 한국과 참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 가정은 성인 자녀에게도 유기농 재료로 염분을 최대한 낮춰 만든 다양한 요리를 먹이려 애쓰고, 경제력이 없는 청소년기 이하 자녀들은 부모가 옷을 살 돈을 주거나, 아예 사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를 보호하고 위하는 문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도록 하는 문화 중 어느 것이 낫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다문화가정으로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중간 지점은 없을까 고민이 된다.
1 영국 학생들이 식사 대신 먹는 칩스와 초콜릿.
2 코로나19로 인해 영국 청소년들은 직접 요리를 하거나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등 건강한 식습관을 갖게 된 반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간식 섭취 또한 증가하는 부정적인 면도 함께 나타났다. 이런 내용을 다룬 기사. (출처 uk.style.yahoo.com)
3 패션 강국 영국 청소년들의 패션 문화는 SNS에서 많은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영향이 크다. 올해는 Y2K, 2000년대 초반 패션을 접목한 의상, 소품을 매치하는 차림이 매우 인기다.
(출처 www.instagram.com/y2kfash10n)
영국 United Kingdom
정은미
영국 통신원
잠깐 영어 공부를 하러 찾았던 영국 런던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두 딸아이는 영국 공립학교 9학년, 11학년에 재학 중이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공립 중·고등학교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 싶다. 소소한 영국 생활은 블로그(rubykor.blog.me)에서도 공유 중이다.
2020년엔 유학생 통신원과 학부모 통신원이 격주로 찾아옵니다. 7기 유학생 통신원은 캐나다와 싱가포르, 4기 학부모 통신원은 중국과 영국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학 선호 국가이지만 중·고교의 교육 환경과 입시 제도 등 모르는 게 더 많은 4개국. 이곳에서 생활하는 유학생과 학부모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_편집자
댓글 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