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한국과 학제가 다르다. 특히 중등학교, 즉 중·고등학교 기간이 5년, 식스 폼(6th Form, 영국식 수능인 A레벨 준비 기간) 2년, 대학 3년으로 구성돼 있어 입시 제도도 차이가 있다. 흔히 미국이나 유럽 국가는 한국처럼 치열한 입시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알려졌다. 그런 측면은 있지만, 막연한 기대를 품는 것은 금물이다.
한국인에게까지 알려진 학교에 대한 선망은 현지인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학생들끼리 견줘 입학 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같다. 오히려 한국과 다른 평가나 입시 제도에 대한 이해가 낮아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1년’ 꼬박 걸리는 대입
영국은 ‘고입’이 없다. 중등 학제 때문이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면, 식스 폼 과정을 이수한다. 이때 대부분이 중등학교와 같은 학교의 식스 폼 과정으로 진학한다. 대입 실적이 더 좋은 곳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 경우 별도 입시 과정 없이 중등 졸업 시험인 GCSE 점수로 지원할 수 있다.
대입도 전형 방법 자체는 단순하다. 지원과 관련 서류는 모두 UCAS(The Universities and Colleges Admissions Service)라는 통합 홈페이지(www.ucas.com)에서 처리한다. 총 5개 대학·학과에 지원할 수 있다.
대학·학과는 한번 신청하면 바꾸기 어렵지만, 서류 내용은 마감 직전까지 수정할 수 있다. 각 대학에 따라 마감일이 다르니 진학을 희망하는 대학마다 홈페이지에서 입시 일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입시 일정은 꽤 길다. 한국은 수시는 9월, 정시는 12월 중 짧은 기간에 지원한다고 들었다. 영국은 앞서 말했듯 수시·정시가 없고, 통합 선발한다. 식스 폼의 마지막 학년, 13학년이 시작되는 9월부터 원서 접수가 시작돼 보통 다음해 1월 중순에 마감한다. 인기가 많은 의치대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대는 10월 중순까지만 원서를 받는다.
영국의 수능에 해당되는 A레벨 시험은 그 다음해 5월부터 6월 중순까지 진행된다. 결과는 8월 중순에 나온다. 13학년 1년에 걸쳐 대입이 진행되는 셈이다.
대입 관건은 A레벨 성적·자기소개서
영국 대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A레벨 성적이다. 각 대학의 지원 자격(Tariff points)은 대체로 최저 성적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때 보통 A레벨 혹은 그에 준하는 IB, AP 그리고 SAT로 지원하는데, SAT 외에는 예상 점수(Predicted Grade)로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13학년 첫 학기의 성적으로 산출되는 점수다.
식스 폼 과정에서는 예상 점수를 내기 위해 학교마다, 과목마다 진도에 맞춰 작은 시험들이 이어진다. 내신도, 모의고사도 아닌 말 그대로 예상 점수 산출의 기초 자료다. 12학년 성적이 관건인데, 이때 성적이 전반적으로 높고 상승세를 보였다면 13학년 첫 학기 점수가 조금 낮더라도 예상 점수가 높을 수 있다. 꾸준한 성적 관리가 필수이고, 1년 내내 대입을 치르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의치대 진학을 앞둔 학생들은 식스 폼 진학 전 A레벨 과목 선택에 신중을 기한다. 이수 과목으로 지원 자격을 주기 때문. 세 과목 정도 선택할 수 있는데, 대개 수학 생물 화학 성적을 요구한다.
대입 제출 서류로는 자기소개서와 학교 추천서가 대표적이며 재정 사항, 과목 선택, 재학/졸업 학교, 재직 경력서 등도 포함된다. 이 중 자기소개서가 중요하다. 500자밖에 되지 않아, 지원 동기, 동아리 활동 등이 전공 공부에 어떤 도움이 될지, 진학 후 연구해보고 싶은 내용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지원을 마치면 학생 인적이 아닌 UCAS에서 발행한 ID 번호로 성적과 서류가 발행돼 각 대학이 열람할 수 있다. 대학은 이를 검토해 지원자에게 무조건 오퍼(unconditional offer: A레벨 등의 최종 성적과 무관하게 합격)나 제한적 오퍼(conditional offer: A레벨 결과 확인 후 최종 합격) 혹은 탈락을 UCAS를 통해 통지한다.
무조건 오퍼 제안을 학생이 수락하면, 다른 대학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 5개교를 지원해 모두 제한적 오퍼을 받았다면, 두 학교만 선택할 수 있다. 모두 불합격하면, UCAS Extra나 대학에 직접 지원 혹은 일종의 추가 모집 과정을 거쳐 지원을 시도해볼 수 있다. 혹은 학교가 요구하는 한두 과목만 1년 더 준비해 지원하는 갭 이어, 한국으로 치면 재수를 하기도 한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입시 전형에 대한 여러 뉴스를 보면 마음이 좀 복잡하다. 수험생에게 더 많은 기회와 여러 가지 지원 통로를 주는 것도 같고, 반면 내신과 수능 두 가지 성적 부담을 함께 져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도 된다.
아이들을 통해 본 영국의 대입은 ‘내신’이라는 것이 없다. 중등학교 5년은 대입과 관련 없다. 식스 폼 2년만 잘한다면 영국 최고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이때 배우는 A레벨 과목은 고작 세 과목 안팎이다. 난도는 높지만 학생들이 집중해 공부할 수 있고, 학교 외 활동을 하며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물론, 이는 청소년의 절반은 대학을 가지 않는 나라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각 나라의 산업, 일자리, 문화, 민족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입시, 무엇이 정답인지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1 영국 학생들의 대학 지원 대학의 서류 검토와 합격 통보까지 UCAS의 통합 홈페이지에서 진행된다.
2 UCAS에서 발행한 Tariff 도표. A레벨로 환산되는 점수와 외국 학생들의 IB 성적 변환 포인트가 안내돼 있다. (사진 1, 2 출처: www.ucas.com)
3 UCAS 지원을 도와주는 민간 업체의 홈페이지. 수많은 대학과 전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 학과 및 학교가 요구하는 서류, 자기소개서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사진 출처: www.schoolapply.com)
영국 United Kingdom
정은미
영국 통신원
잠깐 영어 공부를 하러 찾았던 영국 런던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두 딸아이는 영국 공립학교 9학년, 11학년에 재학 중이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공립 중·고등학교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 싶다. 소소한 영국 생활은 블로그(rubykor.blog.me)에서도 공유 중이다.
2020년엔 유학생 통신원과 학부모 통신원이 격주로 찾아옵니다. 7기 유학생 통신원은 캐나다와 싱가포르, 4기 학부모 통신원은 중국과 영국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학 선호 국가이지만 중·고교의 교육 환경과 입시 제도 등 모르는 게 더 많은 4개국. 이곳에서 생활하는 유학생과 학부모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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