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분해 식물성 플랑크톤 개발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희식 센터장
“사람·사회에 공헌하는 ‘공학의 가치’
환경오염 해결할 획기적 연구 이끌었죠”
미생물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해로운 생물체로 인식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인간에게 해로운 미생물은 전체의 1%도 안 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세포공장연구센터 김희식 센터장은 “이로운 미생물이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미생물 없이는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고등생물체가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김 센터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떠오른 미세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미세조류에 속하는 플랑크톤 역시 미생물의 한 종류다. 김 센터장을 만나 미처 알지 못했던 환경바이오공학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사진 이동웅
자료 제공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희식 센터장은
건국대 미생물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발효공학 전공으로 석사를 마친 뒤 일본 NAIST(나라첨단과학기술대)에서 응용미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세부 분야는 미세조류 세포공장 개발 및 바이오매스 생산과 미생물 유래 바이오 소재 개발 및 대량 생산이다. 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세포공장연구센터장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환경바이오공학 전공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개발했다.
지상에서는 플라스틱을 폐기물로 수거해 처리하지만, 해양에서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미세플라스틱은 어패류 등 물에서 사는 생물들이 먹이로 오인해 섭취하기 때문에 중금속이나 방사능처럼 먹이사슬을 통해 플라스틱 생물 농축이 일어날 우려가 크다.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 단계에서 식물성 플랑크톤은 1차 생산자로 대부분 미세조류다. 미세조류가 미세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가정해봤다. 그게 가능하다면 먹이사슬을 통한 오염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연구를 시작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PET 분해 효소(PETase)의 아미노산 서열을 이용해 식물성 플랑크톤에 적합하도록 유전자를 합성하고, 그것을 미세조류에 주입해 페트병을 분해하는 식물성 플랑크톤 ‘CC-124_PETase’를 개발한 것이다.
이번 연구의 성과와 의미를 설명해준다면?
이번 연구를 통해 개발한 식물성 플랑크톤이 실제로 페트병을 분해하는 과정을 전자현미경과 HPLC 성분분석기를 통해 확인했다.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녹색미세조류를 개발했다는 점,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오염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먹이사슬을 통한 미세플라스틱의 생물 농축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추가 연구를 통해 생태계 복원이나 수산 양식 등 다양한 분야에 널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스틱 분해 식물성 플랑크톤이 페트병을 인체에 무해한 단량체
(TPA: 테레프탈산-terephthalicacid, EG: 에틸렌글라이콜-ethylene glycol)들로 완전히 분해했다.
사진은 전자현미경을 통해 페트병이 분해되는 과정을 관찰한 모습.
세포공장연구센터장은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세포공장이라는 말이 생소할 수 있다. 미세조류나 미생물을 이용해 유용 소재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세포공장 기술이라고 표현한다. 미세조류, 미생물의 유전자를 변형하거나 재조합해 바이오 디젤, 화장품, 사료, 기능성 식품, 최근에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기술까지 연구한다. 센터장의 위치에서는 실험보다 회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새로운 주제를 도출하기 위한 연구 기획·설계 관련 회의가 가장 많고, 실험실 연구원들과 수시로 토의·토론 시간도 갖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강의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도 주요한 업무다. 현재 환경 바이오공학캠퍼스에 들어온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는 과학자의 이미지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하는 모습인데, 사뭇 다르다.
공학과 과학의 차이를 알면 이해하기 쉽다. 생명과학(Bio Science)과 생명공학(Bio Technology)을 예로 들면, 생명과학은 생명현상이라는 과학의 학문 원리 규명에 보다 집중하는 반면, 생명공학은 규명한 생명현상의 과학적 원리를 어떻게 인류의 삶에 적용할까 고민하는 응용 학문이다. 아마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모습을 과학자의 전형이라고 생각해 빚어진 오해 같다.
미생물을 배양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짧게는 하루 이틀 만에 미배양되기도 하지만, 연속배양의 경우 100일, 길게는 3개월 이상 걸리기도 한다. 가장 큰 변수는 ‘오염’이다. 멸균 상태를 완벽히 유지하고 온도와 공기압 등 실험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단 몇 초간의 정전도 용납될 수 없다. 오염의 원인을 찾는 경우보다, 찾지 못한 상태로 실험을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때 꼭 필요한 덕목은 성실함과 끈기다. 원하는 목표와 결과를 얻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티는 힘은 아주 중요하다.
연구 개발한 것 중 상용화된 기술·소재를 소개한다면?
개인적으로 생명공학 분야에 느끼는 매력 중 하나다. 내가 개발한 소재와 기술이 산업에 활용되고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에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그 자체로 재미있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계면활성제 연구를 진행해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나중에 유화제로 확장시켜 실제 화장품에 활용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세조류의 일종인 세네데스무스에서 모발의 성장을 촉진하는 성분을 발견하고 발모 샴푸 생산 업체에 기술을 이전해 제품이 나왔다.
미생물을 전공하기까지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어릴 때 아버지가 정기 구독하는 과학 전문 잡지를 보며 자랐다. 그땐 컴퓨터게임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던 시절이었고, 집 안 곳곳에 늘 책이 있어서 많이 읽었다. 돌이켜보면 지금은 일반화된 토마토나 감자 등 식품의 유전자 변형, DNA 재조합 원리를 그때부터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별 고민 없이 이과로 진학해 미생물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마치고 석사 때는 발효, 박사 때는 응용미생물학을 전공했다. 연구원에 들어온 계기는 단순하지만 특별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할까 대학원에 진학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선배를 따라 이곳 연구원에 오게 됐다. ‘여기에만 오면 내가 하고 싶은 연구는 뭐든 다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여러 경로로 알아보고 도전한 끝에 94년에 환경바이오센터 미생물실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진로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운이 좋은 편이다.
문·이과 융합 교육을 시행 중이지만, 여전히 청소년들의 진로 탐색 여건은 쉽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매를 키우며 진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해 당연히 이과를 선택한 아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을 거의 하지 않더라. 하고 싶은 공부도 딱히 없다길래 내가 미생물학과를 권유해 입학했지만, 1년 반 만에 포기하고 학과를 옮겼다. 공부가 너무 어렵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힘들어했다.
지금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과학기술정책 관련 학과에 들어가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반면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줄기차게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싫다고 했다. 활동적인 일, 그중에서도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겠다고 해 그쪽으로 입학했다. 내 경험으로도 수학 잘한다고 자연 계열, 글 잘 쓴다고 인문 계열, 이렇게 무 자르듯 진로를 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넓은 시야로 계열이나 학과를 정하고 대학에 들어와 더 공부하고 싶은 세부 전공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힘을 키웠으면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발표를 하며 지내는 게 일상이다. 흔히 말하는 과제를 따오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해양수산부 등 정부 기관의 연구 주제에 맞춰 과제 신청서를 내고 채택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도 어떻게 프레젠테이션하느냐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평소 말하는 걸 즐기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때만큼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자기 생각을 말로 꺼내 표현하는 의사소통의 힘을 기르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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