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학교 시험은 학생들을 줄 세우기보다 학생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학교 간 성적 비교와 대입 위주의 평가는 존재한다.
하지만 교육 정책 결정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한결같다. ‘시험이 학습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학습이나 입시 정책의 방향이 일관적이다. 이는 학부모에게 예측 가능한 안정감을 주고 성적에 대해 한국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만 5세부터 기초능력평가 치러
영국 학생이 치르는 첫 전국 단위 시험은 무엇일까? 만 5세에 치르는 기초능력평가가 아닐까 싶다. 영국에서는 만 4세 때 유치원(Reception Year)에 입학하는 데, 이때부터 1년간 배운 내용을 평가해 교육부에 제출한다. 학생들의 평가 결과뿐 아니라 교사, 보조교사, 학부모 상담 교사 등 학생과 관계된 학교 직원들의 피드백도 포함한다. 초등학교 과정에서 아이의 학습 발달과 속도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기 위함이다.
영국은 이 같은 성격의 학업능력평가시험(SATs)을 중학교 졸업 전까지 세 번 더 치른다. 한국으로 치면 유치원생과 초1인 1·2학년을 Key Stage 1(KS1), 초2~5는 KS2, 초6~중2는 KS3로 구분해 각 단계가 끝나는 학년, 봄에 시행한다. KS1 SATs 시험은 영어 읽기와 쓰기, 그리고 수학이 포함되며 학교가 시험 방식을 자유롭게 정하는데 통과/실패가 아니라 학생의 학습 상태를 평가한다. 결과표에도 목표에 맞음, 혹은 높거나 낮은 수준이라고 표기된다.
KS2 평가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실시하며 영어 수학 과학 과목이 포함되며 결과를 교육부에 제출한다. 일반 공립 중학교에서 입학 후 성적대별로 그룹을 나누기 위한 기초 자료로 쓰인다. KS3는 KS2와 평가 방식이 같다.
중3 이상의 고학년을 의미하는 KS4는 GCSEs로 평가한다. 영어(언어·문학), 수학, 과학(생물·화학·물리 중 택 1)이 필수이며, 외국어·디자인기술·미술 등 선택 과목까지 더해 보통 학생 1인당 8개 과목 이상 시험을 치른다. 모든 과목에 최소 20% 이상 실기 평가가 포함되며, 100% 실기 평가만 하는 과목도 있다. GCSEs 시험 결과로 대학 입학 과정인 A Level(혹은 IB) 학교를 지원한다. 여기까지의 평가 방식은 영국 공립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 된다.
끊임없는 퀴즈와 숙제, 답보다 긴 ‘피드백’ 딸려와
물론 한국의 정기고사 같은 시험도 있다. 중등학교의 경우 하프텀(6~7주) 간격으로 실시된다. 교육과정 자체가 하프텀 중심으로 설계돼, 해당 분량을 배운 후 평가하는 것. 이전에 배운 내용도 연계해 문제를 내는 만큼 벼락치기 공부론 대응하기 쉽지 않다.
또 학기중에 퀴즈 형식으로 끊임없이 평가를 받는다. 다만 단답보다 서술형 중심이다. 수학을 예로 들면 문제 풀이 과정이 점수에 반영되며, 한 문제를 풀어도 지금까지 배운 여러 단원의 내용을 알아야 풀 수 있다. 과학도 수학과 비슷하게 여러 단원의 주제를 아울러 한 문제로 출제되는 경우가 많다.
외국어는 쓰기, 읽기, 듣기, 말하기로 평가하지만, 한국식 외국어 교육과 비슷하게 말하기와 듣기 수업의 비율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중심이 되는 읽고 쓰는 시험은 에세이형 문제가 절대 다수다. 한 번에 2시간 정도 진행돼, 시험 시간 내내 대여섯 문제를 풀고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순히 알고 있는 지식으로 푸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모든 정보를 동원해 내용을 다시 배치하고,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까지 포함해 표현해야 한다.
한국식 평가에 익숙한 내게는 까다로워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익숙하다. 초등학생부터 자연스럽게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연필도 겨우 잡는 손으로 삐뚤하게 한 자씩 글자를 적는 어린아이들도 홀로 혹은 옆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를 스스로의 문장으로 써내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옆 학생과 시험지를 바꿔서 채점하는 일도 잦다. 서로의 답을 보며 몰랐던 것을 배우거나 아는 것을 가르쳐주는 동시에, 시험관의 시각도 갖게 돼 효과적인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숙제도 잦은데, 평가에도 반영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주어지는 숙제는 경우에 따라 양과 난도가 천차만별이지만 교사가 꼼꼼히 체크해 점수를 매기고 피드백을 준다. 문제마다 점수 단위와 평가 기준이 있어, 돌려받는 숙제에는 감점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적혀 있다. 이런 과정은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배움 정도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돌이켜보니 영국은 시험이 꽤 많은 나라다. 하지만 학생들의 피로도는 높지 않다. 사회적으로도 학교 시험과 관련한 논란이 크지 않다. 잦은 시험을 자신의 배움을 점검하고 부족함을 보완하며 교사와 소통하는 창구로 여기는 인상이다. 100점이나 A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발견한 교사의 피드백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사회 환경과 문화, 그리고 교육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한국과 다르긴 하지만, 시험 횟수와 숙제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학생과 교사·학교의 충분한 소통과 단단한 신뢰는 꽤 부러운 부분이다.
평가 기준표와 과제 피드백. 학생들은 노트에 세부 채점 기준표를 붙여두고 참고한다.
과제를 제출하면 교사가 감점 부분에 대해 상세한 피드백을 준다.
영국 United Kingdom
잠깐 영어 공부를 하러 찾았던 영국 런던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두 딸아이는 영국 공립학교 9학년, 11학년에 재학 중이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공립 중·고등학교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 싶다. 소소한 영국 생활은 블로그(rubykor.blog.me)에서도 공유 중이다.
2020년엔 유학생 통신원과 학부모 통신원이 격주로 찾아옵니다. 7기 유학생 통신원은 캐나다와 싱가포르, 4기 학부모 통신원은 중국과 영국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학 선호 국가이지만 중·고교의 교육 환경과 입시 제도 등 모르는 게 더 많은 4개국. 이곳에서 생활하는 유학생과 학부모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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