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뒤로

피플&칼럼

952호

ISSUE INTERVIEW | 한국경제교육학회장 이윤호 순천대 교수

"경제 교육, 작은 경제학자 양성 벗어나야”

경영·경제 관련 진로를 택하는 학생의 비율이 전체 인문 계열의 20%를 훌쩍 넘지만 <경제>를 수능 과목으로 선택하는 비중은 매년 2% 정도에 그친다. 수능에서 <경제>를 선택하는 순간 응시자 비율이 60%, 55%에 육박하는 <생활과 윤리> <사회·문화>에 비해 등급 받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도 진로 관련 선택 과목 이수가 강조되지만 학생들은 내신 성적에 대한 부담으로 <경제> 선택을 꺼린다. 교사들도 시수 부족 등의 이유로 기피하는 현실이다. 한국경제교육학회장 이윤호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 경제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들어봤다.

취재 박민아 리포터 minapark@naeil.com 사진 이의종



"경제 교육, 작은 경제학자 양성 벗어나야"
한국경제교육학회장 이윤호 순천대 교수

이윤호 교수
현재 순천대 사회교육과에서 예비 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재무경제학을 전공해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사회과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금융경제교육연구소 소장, 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으로서 우리나라 경제 교육 발전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 교육, 어떤 상황인가?

현재 양적으로는 매우 성장했다. 대표적으로 2006년 4개였던 지역경제교육센터는 현재 모든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자리잡고 있으며, 2018년 교육 실적은 8천 회, 22만 명에 달한다. 사실 초창기 우리 경제 교육은 정부의 경제 성과 홍보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상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어 금융기관이나 경제 단체 등에 민간 참여자가 늘기 시작했고 2006년 정부 주도로 경제교육협의회가 설립돼 국내 최초로 민관 협력 경제 교육이 시도됐다. 이때 지역경제교육센터도 설립됐다. 이후 2009년 경제교육지원법이 제정되고 2016~2017년 개정으로 더욱 강화돼 기획재정부가 주무 부서인 경제교육관리위원회가 전체 경제 교육을 기획·조정하면서 현재의 양적 성장이 이뤄졌다. 다만, 질은 별개의 문제다. 비효과적인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반복 제공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경제 교육의 효과성 측면은 우려된다. 이제는 질적 관리가 본격화돼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지표에서 경제 교육의 양적 성장이 확인되지만, 학교에서의 상황은 좀 다르다. 경영·경제 관련 학과 진학 수요는 높은 반면, 수능과 학교 교육과정에서 <경제> 기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경제 과목은 난도가 높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기 때문이다. 매년 인문 계열 학생의 20~30%가 상경 계열로 진학한다. 전공 적합성과 학업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에서 경제를 미리 공부할 필요가 있지만 응시자 비율이 60%, 55%에 달하는 <생활과 윤리> <사회·문화>등의 다른 사회탐구 과목에 비해 응시 비율이 2% 남짓한 <경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좋은 등급 받기가 힘들다.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도 내신 성적을 상대평가로 산출하기 때문에 이수자 수가 적은 <경제>는 기피된다.

교사 입장에서도 경제 과목은 어렵다. 사범대 사회교육과에서는 경제학 과목 2~3개를 배운다. 피상적으로 경제를 알기 때문에 가르치는 데 부담을 느끼게 된다. 또 고교 현장에서 수요가 많은 <사회·문화>는 학기당 3학급이 편성된다면, <경제>는 1학급이 편성될까 말까다. <경제>를 맡게 되면 시수를 채울 수 없어 다른 과목도 가르쳐야 해 부담이 늘어난다. 이런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제>를 개설하는 학교가 적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도 공부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청소년 경제 교육의 목표를 되새겨야 한다. 학교 경제 교육은 작은 경제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 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학교 <경제> 교과서를 보면 경제학 원론 체계를 답습하고 있다. 경제 이론이나 개념에 사례를 조금 덧붙이는 식이다. 대학생조차 골치 아파 하는 내용을 중·고등학생이 배우려니 어렵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어려우니 관심도 없어지고 꺼려지게 되는 것이다.

교육과정을 뒤집어야 한다. 우선,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상황이나 사례를 중심으로 두고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경제 개념이나 이론이 들어오는 귀납적 방식으로 교육과정이 재편성돼야 한다. 참고 사례도 존재한다. <생활과 윤리>다. 과거 교육과정에서는 <윤리>로 동·서양 철학 이론과 학자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기피하는 과목 앞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실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윤리 문제를 짚어내 다루면서 윤리 개념을 가져와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꿨고, 과목명에 ‘생활’이라는 단어도 추가했다. 그 결과 쉬운 내용을 담은 과목이 아닌데 학생들의 선호가 높아졌고 수능 선택 비율도 독보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이로 볼 때 경제적 소양을 갖춘 시민 양성을 위한 생활·경험 중심의 <시민 경제>를 신설해 수능 선택 과목으로, 상경 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경제학원론 체계를 따르는 현 <경제>를 진로선택 과목 <경제학 기초>로 만들면 성적에 대한 압박 없이 학생 모두가 다양한 경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학교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면?

당장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교과서를 바꿀 수는 없지만 수업 방식이나 방과 후 활동을 바꿔볼 수는 있다. 투자의 개념을 가르쳐야 한다면 주식, 선물, 비트코인 등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로 투자는 어떻게 하는지, 수익은 어떻게 내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구체적 예시를 통해 다루고 이론을 덧붙이는 것이다. 동아리 활동이나 진로 활동 등에서 페이스북, 구글 등 학생들이 많이 듣고 접하는 IT 기업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창업 방법, 회사의 종류, 기업의 수익 구조 등 여러 경제 개념을 다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경제 주제와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학교에 제공해야 한다. 또 개발·공급 중인 경제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성 검증을 위해 인증 체계 구축에 대한 전문가 검토와 사회적 토론도 시작해야 한다.



가정에서의 경제 교육법에 대해 조언한다면?

올바른 경제적 태도를 체화하려면 부모의 경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청소년 시기에는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가정 내 경제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고, 부모들 역시 경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 지식이 부족하며 방법도 잘 모른다. 여러 가지 방법이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꾸준히 실행하기 힘들고 효과 또한 미미하다.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다면 경제와 돈에 관해 꾸준히 대화를 나눌 것을 추천한다. 다만 부모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 효과가 별로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가 먼저 대화 주제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정부에서도 가정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침, 교재, 모범 사례 등을 개발해 경제 교육을 원하는 부모가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면 좋을 것이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경제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학생들만 하더라도 타 지역 대학 진학 시 거주지를 마련해야 하는데, 각종 주택 대출 및 청년임대 주택 제도를 이해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상에서 이같은 경제적 의사 결정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잘 알아야 한다. 청소년 시기가 경제 교육에서 중요한 이유다. 적절한 지식과 사례를 조합해 이해할 수 있는 연령대이고, 평생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의사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보다. 모두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 노력하지만, 낚시성 광고에 노출돼 사기를 당하거나 혜택을 잘 알지 못해 덜 겪어도 될 고통을 겪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전 국민이 경제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들이는 노력, 잘못된 정보로 인한 피해 등을 비용으로 환산했을 때 낭비되는 인력과 자원이 상당하다. 학교 교육이 개선되고 양질의 필수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마련돼야 한다. 생애 전 주기에서 마주치는 전형적인 경제적 의사 결정 문제의 사례들을 카테고리화하고, 각각에 필요한 필수 정보를 걸러 제공하는 식이다. 이는 기상 예측 서비스처럼 수익을 내기는 어렵고 국민 생활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 성격이 강해 정부가 맡아야 한다. 또 학부모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눈앞의 입시와 관련된 학습도 중요하지만 길게 보면 경제 교육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경제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자녀와 꾸준히 대화해보기를 권한다.





[© (주)내일교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0

댓글쓰기
240318 숭실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