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 피해자 구제 앞장선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
"스마트폰 사용하는 청소년 누구라도
디지털 성범죄 대상될 수 있다"
조진경 대표는
2001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사회선교위원회 간사, 2003년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사무국장 등을 역임한 이후 지금까지 성인권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십대여성인권센터의 대표를 맡아 10대 청소년 성범죄 피해에 대해 전방위적인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3년부터 ‘아·청·법’ 개정을 추진해오다가, 2019년 전국 378개 시민·사회·여성·아동·청소년 단체와 연대해 ‘아·청·법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 20대 국회 회기 내에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 SNS를 통해 성착취 영상을 만들고 공유·판매한 ‘n번방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관련 보도를 접하면서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더 큰 분노와 경악을 느꼈을 것이다. 피해 여성의 상당수가 아동·청소년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일부에서는 디지털 성범죄가 가정에 문제가 있는 가출 청소년이나 채팅 앱 사용자 등 일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기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날로 진화하고 있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에게 물었다.
취재 │ 백정은 리포터 bibibibi22@naeil.com
사진 │ 이의종
디지털 성범죄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지나?
‘디지털 성범죄’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로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사진·영상의 촬영·유포 행위,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더 나아가 성폭력·성매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칭한다. 대부분의 경우 SNS를 통해 피해자에게 접근해서 친밀감을 형성하고 길들이는 ‘그루밍’ 과정을 거친 후 현실 공간에서의 성착취로 이어진다. 사실 가출로 궁핍한 처지가 된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다만, 과거에는 주로 PC방에서 채팅 사이트를 통해 유인한 위기 청소년이 그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IT기술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일반 청소년들까지도 광범위하게 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n번방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피해자 중 10대 청소년이 많은 이유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SNS를 통해 접근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이나 판단 실수로 불건전한 채팅 앱을 이용했다가 피해를 입은 경우뿐만이 아니라 SNS에 사진, 영상, 인적 사항 등이 노출되면서 범죄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벤트에 당첨됐으니 사진을 보내면 상품을 준다고 속이거나 SNS에 올린 사진을 내려받은 후 알몸 사진과 합성해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그 수법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치밀하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성범죄자들이 현행법의 허점을 악용해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성년자를 의도적으로 노리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이 일상화되면서 10대 청소년의 성을 상품화하는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현행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어떤 허점이 있나?
‘아·청·법’은 만 13세 미만의 아동에 대해서만 ‘의제 강간(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성행위 시 형사 처벌)’을 인정한다. 만 13세가 넘으면 폭행·감금 등에 의한 성폭력임을 피해자가 스스로 입증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강제성을 입증 못하면 자발적인 성매매나 합의에 의한 관계로 간주돼 청소년이 처벌을 받는 게 현실이다.
범죄자들이 이를 악용해 ‘너도 처벌받는다’며 피해자들이 신고를 못하도록 협박한다. 성폭행 후 일부러 몇 푼의 돈을 쥐어주고 성매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악랄한 죄질에 비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미미하다. 많은 나라에서 이미동 ‘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성적 착취·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한 ‘UN 아동권리협약’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그렇게 가야 한다. ‘n번방의 악마’가 진화하도록 부추긴 것도 허점 투성이의 현행법인 셈이다.
피해 청소년이 범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범죄자에게 걸려들면 협박이나 그루밍을 통해 빠져나가거나 신고하지 못하게 압박한다. 강제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자신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부모님이 실망할까 두려워서 신고나 상담을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밀하게 대화를 나눈 기록이 있거나 호감을 표현하는 하트 이모티콘 하나만 보내도 자발성이 있는 것으로 본 재판 사례가 많다. 지금 법이 그렇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사진을 보내고, 자기 발로 범죄자를 만나러 나간 것에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자녀가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생각해 성폭행을 당해도 신고하지 않거나 아이를 책망하는 사례도 많다. 부모에게조차 위로받지 못한 아이들은 다시 범죄자의 손에 놀아나거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피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실제 성착취로 이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신고·상담을 통해 범죄의 고리를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 죄책감이나 후폭풍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까운 누구에게라도 피해 사실을 알리고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범죄 피해를 입은 자녀 때문에 패닉에 빠진 부모님도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인지하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가해자를 처벌하고 아이의 미래를 다시 밝힐 수 있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는 피해 청소년뿐 아니라 그 부모님을 위한 상담 창구도 마련돼 있다. 아이가 평소와 다른 행동, 예를 들면 방문을 걸어 잠그거나 말수가 줄고 눈을 맞추지 못하거나 학교에 가지 않거나 사주지 않은 고가의 물건·용돈을 가지고 있다면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것이 아닌지 잘 살펴봐야 한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현행법상 디지털 성범죄는 대부분 성폭행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앱을 내려받고 범죄자와 대화를 하고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는 거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청소년에게 범죄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이스 피싱에 속아서 거액의 돈을 송금한 사람에게 자기 손으로 돈을 보냈으니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하지는 않지 않나? 하물며 판단 능력이 미숙한 미성년자에게 ‘자발’인지 ‘강제’인지를 따져서는 안 된다. 일단 성매매로 판결이 나면 안타깝게도 부모조차 자녀를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7년 전부터 ‘대상 아동·청소년 삭제’ ‘보호 처분 삭제’ ‘아동·청소년 전문통합지원센터 설치’ 등을 골자로 한 법 개정을 주장해왔다. 2018년 2월 여성가족위원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금까지 계류 중이다. 그러다가 결국 ‘n번방 사건’이 터진 것이다. 허술한 법망 아래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어디까지 악랄해질 수 있는지 온 국민이 지켜봤다. 이제는 더 물러설 곳이 없다. 법 개정이 시급하다. 바로 지금 해야 한다.
십대여성인권 센터에 접수된 청소년들의 실제 피해 사례 CASE 01 “나 여자야, 너랑 동갑이고.”
A는 랜덤채팅 앱을 통해 또래 여자 친구를 사귀어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A에게 카톡이나 라인 등 다른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해서 별 의심 없이 알려주고, 프로필 사진을 보냈다. 그러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네 사진을 다른 알몸 사진이랑 합성해서 인터넷에 퍼뜨리겠다’며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협박했다. 상대방은 여자도, 동갑도 아니었던 것이다. 겁이 난 A는 십대여성인권센터에 상담을 신청했다. CASE 02 “축하합니다. 이벤트에 당첨됐어요.”
B는 자주 사용하던 메신저를 통해 한 남성으로부터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는다. 많은 상금이 지급된다며 은밀한 부위의 사진과 알몸 영상통화가 조건이라고 했다. B는 혹해서 ‘얼굴만 안 나오면 괜찮겠지’하고 요구에 따랐지만 그 남성은 B의 위치 정보와 개인 정보를 확인해 직접 만나자고 계속 요구하며 성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신체 사진과 영상 통화 내용이 유포될 것이 두려웠던 B는 십대여성인권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CASE 03 “전문가인 내가 도와줄게.”
C는 SNS에 익명의 계정을 만들어 자신의 벗은 몸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와서 C의 계정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경찰에 신고당할 것이 두려워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고 ‘신고당할지도 모른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나는 변호사인데 도와주겠다’는 댓글이 달려 연락을 했더니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한 달 동안 자신의 노예가 되라며 신체 사진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C는 절박한 마음에 사진을 보냈지만 그는 변호사가 아니었다. CASE 04 “네가 누군지 다 알아.”
메신저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진과 영상을 주고받던 D에게 한 남성이 연락을 해왔다. ‘나는 컴퓨터 전공자다. 해킹으로 네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라며 자신과 영상 통화를 해서 시키는 대로 다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나눈 음란한 대화와 영상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했다. 지속적인 협박에 두려움을 느낀 D는 십대여성인권센터로 연락했다. <출처> 안전한 온라인을 위한 깨알 가이드 깨톡(https://teen-it.kr/)
※ 십대여성인권센터 상담전화 02-2633-1318 / 010-3232-1318 / 카톡·라인 ID: cybersatto 또는 10up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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