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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호

ISSUE INTERVIEW | 학교 공간 폐쇄성 꼬집는 건축가 유현준

학생 숨통 틔우는 학교 환경 개선_ 인테리어 아닌 공간 변화가 핵심

학교 공간 폐쇄성 꼬집는 건축가 유현준
"학생 숨통 틔우는 학교 환경 개선
인테리어 아닌 공간 변화가 핵심”

지금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혹은 그 윗세대까지 교과서는 수차례 바뀌고, 수업이나 시험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교실의 풍경도 꽤 달라졌다. 아이들이 적어졌고, 다양한 특별실이 생겼다. 하지만 ‘학교’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외견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굳게 닫힌 교문, 운동장, 네모난 다층 건물. 이것이 우리 교육의 가장 큰,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 중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다. <알쓸신잡>으로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건축가로 떠오른 유현준 교수(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유현준건축사무소 대표)다. “학교는 교도소와 건축적으로 같은 공간”이라는 말로 세간에 충격을 안기기도 한 그는, 새로운 교육은 그에 맞는 공간 변화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유 교수를 만나 학교 공간의 문제점과 해법을 들어봤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이의종

# 학생 압박하는 학‘ 교’ 공간
학교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제 아이들이요. 큰아이와 아내의 갈등이 깊어지더라고요. 저는 건축가라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공간과 연결해보는 버릇이 있어요. 공간은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까요. 예를 들어 사춘기 아이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는 건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가 행동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죠. 알려졌듯 사춘기는 ‘자아’가 격렬하게 발현되는 시기예요.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딪칠 만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정집은 다른 가족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예요. 프라이버시를 위해 자기 방문을 닫는 거죠. 하지만 부모는 “가족끼리 왜 벽을 쌓니?” 혹은 “숨어서 뭘하는 거야?” 라며 질책해요. 아이 입장에선 스스로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데, 자꾸 혼이 나니 부모를 회피하거나 적대하죠. 더 자기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고, 부모들은 답답하니 잔소리를 반복하면서 관계가 악화되는 거예요. 그렇게 아이에 집중하다 보니, 학교 공간까지 눈길이 가더라고요.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정말 문제적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의 어떤 점이 ‘문제’로 여겨졌나요?
학교는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다양성이 제거된 장소예요. 이런 곳에서 사람은 경직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육은 여전히 경쟁적이라 학생들이 받는 압박도 상당해요. 게다가 사람 사이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적절한 거리 유지가 필요한데, 지금 학교는 개인과 개인의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 한 번 가려고 하면, 교실 내 거의 모든 구성원들의 눈길을 받아야 하죠.
혼자 생각을 정리하거나 소수의 친구와 마음을 터놓을 장소도 마땅치 않습니다. 운동장은 특정한 일부 학생들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고, 옥상이나 체육관은 대개 안전상의 이유로 잠겨 있죠. 여기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으며 정해진 시간에 맞춰 생활합니다. ‘집단’만 있고 ‘개인’은 없어요. 그렇다 보니 교내 구성원들은 정신적인 피로감이 쌓입니다. 학교공간이 긴장을 완화해주기는커녕 심화하는 셈이에요. 이런 공간에서 12년을 생활한 아이들이 열린 생각을 하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1:1로 교우관계를 다질 장소조차 마땅치 않은데, 의사소통 역량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요? 어떤 선진 교육을 받아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거예요.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라며 교육적으로 여러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데, 정작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 공간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어서 문제 제기를 하게 됐어요.


# 학교 환경 개선,
벽 색칠하기 아닌 벽 부수기 필요
최근 학령인구 감소와 교육 정책 변화가 맞물려 일선 학교에서 환경 개선 사업이 나름 활성화되고 있지 않나요?
맞아요. 학교 환경을 고민하는 첫발을 뗐다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테리어 작업에 치우친 것 같아 우려됩니다. 빈 교실을 특별활동실로 만드는 사업이 활발한데, 벽색을 바꾸거나 책상·의자 등 사물의 위치나 모양에 변화를 주는 건 ‘공간’을 바꾸는 게 아니에요. 사용 목적과 분위기에 변화를 줬을 뿐, 천장 높이나 창문의 방향, 출입문의 위치는 그대로입니다. 학생들이 받는 시선이나 동선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죠. 시간이 지나면 결국 특정인들의 아지트가 되거나,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되기 쉬워요. 실내 소품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꿔야 삶이 바뀝니다.

참여한 세종행복도시의 학교 프로젝트는 그런 의미의 공간변화가 잘 적용됐나요?
절반의 성공이라고 봐요. 유·초·중·고와 공원, 도서관 등을 아우른 프로젝트인 세종행복도시 6-4생활권 복합 커뮤니티 단지의 마스터플랜과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MA(Master Architect)로 참여했어요. 지형을 고려해 넓은 공간에 여러 개의 낮은 건물로 이뤄진 ‘마을 같은 학교’를 만들겠다고 계획했죠. 학생들이 이동하는 짧은 순간, 자연을 접하며 숨통을 틔울 수 있게요. 결과적으로 운동장이 공원으로 간 것은 의도에 부합했지만, 건물들이 원했던 만큼 잘게 쪼개어지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아요.
한편, 이 프로젝트로 현실의 벽도 실감했어요. 학교 건축은 규제가 많아 ‘다른’ 설계가 나오기 어렵더라고요. 공공건축물중에서도 건축 비용이 가장 낮게 책정돼 있고, 최저가 입찰이라 사용할 예산이 더 적어지다 보니 참신한 작품이 채택될 가능성 자체가 매우 낮고요. 구조적 문제를 바꿀 수 있는, 학교 건축에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를 꺼려요.


유 교수는 건축가이며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건축·인문 분야에서 보기 드문 흥행작을 잇따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모더니즘: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 <어디서 살 것인가>는 국내 인기에 힘입어 중국과 대만에서도 출간됐다.

교육 정책가들이 생각하는 학교 공간 개선과 건축가인 제가 필요하다 여기는 공간 개선의 간극도 확인했습니다. 행정가들은 형평성과 안전이 일순위예요. ‘다른 공립학교와 형평성이 어긋난다’ ‘사각지대에서의 사고가 발생하면 어쩌나’ 부터 걱정합니다. 학교 공간의 기능은 통제와 감시가 최우선이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바꾸려면 대중의 요구밖에 답이 없어요. 학부모들도 학생들의 교육과 생활 면에서 학교의 책임을 일정 부분 나눠 가져야 하고요. 제가 강연이나 책에서 계속 학교를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떤 학교 공간이 이상적일까요? 빈 교실이 늘어난 요즘 학교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주세요.
‘공간의 다양성’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표준화된, 획일적인 공간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사고를 접하며 개인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없어요. 성적 혹은 돈과 같은 일부 기준에 매몰되고, 이는 사회를 병들게 해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교내에 ‘자연’을 도입하는 겁니다. 매일 날씨가 바뀌고, 시간과 계절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면 학생들은 여유를 얻을 겁니다. 아파트와 아스팔트 도로에서 자란 이 시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요소죠.
기존 학교에 적용하는 법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벽을부수면 됩니다. 빈 교실을 한곳에 몰아 벽을 없애고 테라스를 만들면 어떨까요. 곳곳에 벤치를 두고요.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테라스들을 계단으로 연결하면 교내 공간에 ‘여유’가 생길 거예요. 이때 2층에서 바로 운동장으로 나갈 수 있는 계단을 설치하면 아이들에게 동선의 선택권도 줄 수 있어요. 교실에서 다른 교실을 볼 수 있는 창문을 만드는 것도 제안해요. 건축적으로 창문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요소거든요. 교무실을 맨 꼭대기층으로 올리는 것도 방법이죠. 공간이 갖는 권위를 덜어낼 수 있으니까요.


# 건축가는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
건축보다 ‘공간’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시네요. 인간에게 공간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강조하시고요.
건축 공부를 하면서 20대 후반 즈음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어요. 건축이라고 하면 건물 혹은 건축 기술부터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 건축은 건물에서 살 사람들의 삶을 디자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창문과 계단, 문 등 건축 요소가 사람과의 관계를 조율하고 행동이나 사고를 바꾸는 요소임을 체득했거든요.

요즘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데, 대중 앞에 나서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제자의 추천으로 여러명의 건축가와 함께 쓰게 된 신문 칼럼이 시작이었어요. 고료로 15만 원을 준다기에 두말 않고 합류했죠. 반응이 좋아 출판 제의를 받아서 낸 책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였어요. 사실 연구논문을 대체할 수 있어서 낸 건데, 이 책을 본 PD가 자신이 연출한 <명견만리>에 출연을 청해 처음으로 TV 프로그램에 나갔죠. 같은 식으로 <어쩌다어른> <알쓸신잡>까지 나가게 됐고요. 해보니까 다른 어떤 작업보다 파급효과가 크더라고요. 건축에 대한 지식을 대중에게 알린다는 보람도 컸고요. 소위 ‘관종’ 성향도 있어 잘 맞았던 거 같아요. 혼자 작업하는 걸 싫어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즐겨요. 건축 자체가 저의 자기표현을 사람들이 굳이 찾아가지 않고 일상에서 체감하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청소년에게 건축은 매력적이지만, 선택하기는 어려운 진로예요. 직업인으로서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현실적으로 말하면, 학생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건축가가 될 수 있는 확률은 0.1%가 채 안 돼요. 건축가가 되기 위한 자격증들은 단순히 전공을 하거나 시험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실무 경력까지 요구해요. 공부량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수입이 보장되지도 않죠. 특히 우리나라 건축 시장은 건축가가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런데 지금 시대에 안정적인 직업이 몇이나 될까요?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저도 여러 번 그만두려고 했어요. 공모전에서 탈락해 실력이 모자란가 의심하거나, 왜 좋은 건축주를 만나지 못할까 제 운을 탓하기도 했죠. 하지만 건축을 좋아하니까 이를 계속 하기 위해서 유명한 대학원에서 학위를 따고, 대학 교수로 강단에도 서며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이 아니라, 내가 열정을 쏟을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시도해볼 만해요.

"공간의 다양성’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표준화된, 획일적인 공간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사고를 접하며 개인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없다."

건축가가 필요로 하는 역량은 섣불리 말하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는 다른 건축가들에 비해 그림 실력이 다소 부족해요. 하지만 현대 기술을 건축에 잘 접목시키고, 논리적인 사고와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뛰어난데, 이는 결국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내죠. 자신만의 무기를 갖고 있으면 된다는 얘기예요.
다만, 청소를 잘하는 학생은 소질이 있어요. 건축가는 왜 이 위치에 네모난 공간이 들어가야 하는지, 어째서 창과 문을 이 방향으로 둬야 하는지 정해야 해요. 자기만의 규칙을 설정하고 이를 타인에게 논리적으로 설득시켜야 하죠. 끊임없는 시안 수정 과정에서, 전선이나 수도 배치까지 제시된 평면도를 펼쳐 일일이 확인하고 반영하긴 어려워요. 규칙이 내재화돼 있어야 작업이 수월해요. 이걸 일상에서 연습할 수 있는 게 정리정돈이거든요.

학부모로서 다른 학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 저도 학창 시절엔 학원과 학교, 집을 반복했지만 학원 등·하원 시간이 실시간으로 통보되진 않았죠. 그래서 한강을 가는 등 환경이나 공간을 바꿔 자신을 환기할 수 있었어요. 사실 취업난이 심한 요즘, 대학생이라고 부담이 덜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훨씬 살 만하다 느끼는 건 ‘자유’롭기 때문이에요. 시간을 배분할 수 있고, 그 사이사이 어떤 공간에 있을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 아이들이 더 쉽지 않은 세상을 살리란 걸 알아요. 그러려면 손에 잡히지 않는 창의력은 차치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줘야 해요. 다양한 공간에서 자극을 받고, 자기 생각을 해보고, 선택하면서 스스로 성장할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죠. ‘보호’ 를 명분 삼아 아이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있지 않은지 한 번 돌아볼 때예요. 당장 저도 가정에서 적용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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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 ISSUE INTERVIEW (2020년 04월 08일 9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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