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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30호

EDUCATION 학부모 해외통신원

자원 없는 무역 강국 학교에서 배운 외국어가 무기


이달의 주제 외국 학교의 언어·역사 교육
자원없는 무역 강국 학교에서 배운 외국어가 무기

네덜란드는 영어권 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뿐만 아니라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이도 많다.

예부터 자원이 부족했던 네덜란드는 주로 금융업이나 상업, 무역을 통해 발전했다. 다양한 언어 구사는 국가 경쟁력의 바탕이 됐다. 이 경쟁력은 공교육에서 키운다. 초등학생 때 배우기 시작하는 영어는 물론 중학생이 되면 다수의외국어를 공부해야만 한다.


외국어, 어디까지 배워봤니?

네덜란드는 한국 이상으로 영어 교육을 중시한다. 영어만이 아니다. 중학생 때 부터 학교에서 독일어, 프랑스어에 스페인어나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등등 다양한 외국어를 배운다. 딸아이는 중3까지 독어, 불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했다. 필수인 네덜란드어와 영어까지 총 여섯 언어를 익힌 셈이다.

모두 매주 두세 번 수업을 하니, 비중의 차이도 크게 없었다.

이 많은 언어를 계속 배우진 않는다. 고등학생이 되면, 공부할 언어를 선택한다. 딸은 독일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택했는데, 독일어 독해와 듣기 시험의 장벽을 넘지 못해 고3인 지금 고대 그리스어만 공부한다. 네덜란드의 외국어 과목 듣기 시험은 cito라는 교육 관련기관에서 제공하는데 체감 난도가 상당하다. TV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방송,공사장 인터뷰 등을 활용하며 등장인물마다 억양이 다르고 간혹 잡음이 들리기도 해 풀기 까다롭기 때문.


네덜란드 고3의 영어 교재.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공부하는 점이 눈에 띈다.


딸이 공부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어 고3 교과서.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연합군의 격전지였던 벨기에 Ieper. 네덜란드 역사 수업은 종교개혁과 세계대전을 중요하게 다룬다. 특히 세계대전은 교과서 학습 외에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인근 유적지를 찾아 현실감 있게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외국어 교육은 청소년들의 언어에 대한 감을 높여준다. 어휘와 문법,문장 암기가 수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나, 주변 나라의 언어라 원어민과 종일 수업을 하거나, 인근 독일·프랑스를 찾아 시민 인터뷰 프로젝트 등을 진행할 때 활용할 기회가 많다. 게다가 유럽 각국의 언어는 서로 비슷한 단어가 많고, 문법적으로 익숙하다. 독일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2 ~3년 배우면 기본기는 갖춘다. 독일에 갔을 때도 두 아이는 식당의 메뉴나 경고문 등을 읽을 수 있었고, 현지인과 의사소통도 가능해 많은 도움이 됐다. 유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 문자들을 띄엄띄엄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헛배우지는 않았구나 싶어 내심뿌듯하다.

다만, 언어 과목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무려 6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웠던 중학생 땐 여러 언어가 머릿속에서 섞여 힘겨워했다. 독일어 수업 다음에 프랑스어 수업이 있으면, 작문 중 무의식적으로 독일어 단어를 쓰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시험을 닷새에 걸쳐 치러, 과목별 학습량도 분배할 수 있고 언어 간 혼란도 적다는 점이다.


생소해서 더 어려운 네덜란드 역사

나라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네덜란드의 역사 교과는 유럽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선사 시대부터 네덜란드와 주변 국가, 유럽 그리고 세계사까지 점차 반경이 넓어진다. 고교 진학 이후엔 선택 과목이 되는데, 우리 아이는 자연 계열 진로라 중3 이후로 역사를 배우지 않았다.

아이들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유럽사 특히 네덜란드사는 매우 생소하고 어려웠다. 인명이나 지명도 복잡해 시험 때마다 곤혹스러워했다. 지금 고3인 큰아이에게 고생담만 떠올리는 역사 수업이지만, 기억에 남는 수업 내용이있다. 바로 80년전쟁과 네덜란드 독립전쟁, 종교개혁, 제1·2차 세계대전이다.

네덜란드 중학생은 한 학기 내내 종교개혁을 배우니 인상에 남은 듯하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문화에 걸쳐 크게 달라진 사건이라 비중이 크다. 유럽에서 발발한 제1·2차 세계대전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수업은 물론 생존자의 증언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거나 학교 밖의 관련 장소를 견학하고, 관련 프로젝트도 많이 수행한다. 다만 지금은 하나의 유럽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탓인지 전쟁으로 인한 참상과 비극을 배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과거의 국가 간 관계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학습한다.


16~17세기 네덜란드는 중개무역을 통해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황금시대를 열었다. 지금까지도 연간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경제 강국이다. 자원 없는 나라의 이 같은 성과는 교육, 특히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 교육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다. 언어는 직업을 떠나 보다 폭넓은 세계를 보는 시야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활약할 수 있는 경쟁력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이런 외국어 역량을 키워주는 중추적 역할을 학교가 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영어는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하고, 중학교때는 6개 안팎의 언어를 학교에서 접하고 익히니 부모의 경제력이 언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못해도 10년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구직이나 승진 시험에서 영어 실력의 영향이 크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영어를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계층 승계의 수단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외국어 교육법과 그 환경만큼은 한국에서 눈여겨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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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인순 네덜란드 통신원
  • EDUCATION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9년 11월 13일 9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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