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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호

EDUCATION 학부모 해외통신원

“공부는 방학 때 할 일 아냐” 쉼에 집중하는 프랑스 학생



이달의 주제 외국 학교의 여름방학

“공부는 방학 때 할 일 아냐” 쉼에 집중하는 프랑스 학생

프랑스의 여름방학은 길다. 올해만 하 더라도 7월 5일, 일제히 방학에 돌입했다. 9월 첫 주 새 학년의 시작과 더불어 개교할 때까지 학교는 문을 닫는다. 거의 2개월에 달하는 기간, 아이들은 학교 근처를 기웃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학내 자율학습은커녕 학생 간 모임 같은 것도 없다. 방학은 학교생활과 절대적으로 단절된 셈이다. 긴 시간만큼 아이들은 신나게 방학을 즐긴다.

캠프에서 색다른 경험 쌓기

매년 7월 첫 번째 주말, 프랑스 언론의 단골 톱뉴스가 있다. 바로 고속도로 교통 상황. 한국의 설·추석 명절 때 도로 상황 중계와 흡사한데,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부터 도로가 혼잡해지는 일이 연례행사이기 때문이다. 휴가에 나서는 프랑스인들로 인해 남프랑스 쪽 고속도로가 심하게 막힌다고, 프랑스에서는 직장인들도 7~8월 한두 달의 긴 휴가를 보내는 것이 보통이라, 자녀들의 여름방학 때 바캉스를 떠난다. 휴가가 여유롭지 않을 경우 할머니, 할아버지나 친척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한국 청소년과 다른 방학 풍경으로 캠프를 꼽을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여름 캠프가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1~2주간 캠핑 생활을 맛보는 것. 프랑스 국내에서 여러 종류의 테마로 운영되는 캠프를 선택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해외로 여름 캠프를 떠난다. 캠프 프로그램은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 중심으로 진행된다. 캠핑 장소가 산 근처라면 등산, 해안가라면 서핑 등을 즐기는 식인데 스포츠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평상시 만나기 어려운 친구들과 단체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가격은 활동 내용과 캠프 지역에 따라 주당 350~900유로(약 47만~120만 원)로 다양하다. 방과 후 활동에 드는 비용이 월 평균 7만 원 정도임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많은 프랑스인들이 방학 캠프에 자녀를 보내고 있다. 일종의 전통인 듯한데, 프랑스인 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학부모들은 유년 시절, 캠핑에 얽힌 추억담을 자주 쏟아낸다.

학습을 목적으로 한 활동은 거의 없는데, 극소수 중학생들은 가까운 영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영어는 학교 성적에서의 비중이 한국에 비해 크지 않지만, 취업 시장, 특히 문과 계열 학생이 평가받을 때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부 잊은 자녀에겐 ‘학습지’

공부는 어떨까? 방학이 시작되면 공부는 뒷전이 된다. 학생들을 보면 방학 동안 학교생활(공부를 포함해서)을 잊는 것이 의무같다. 의미 있는 클럽 활동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학기 중에 아이들이 몸 담았던 클럽들도 6월 중순이면 문을 닫기 때문. 학원 수업과 입시 준비로 학기중보다 더 바쁜 한국 학생들의 여름을 떠올리면 프랑스 학생들의 모습은 너무 달라 헛웃음이 날 지경이다. 다들 놀기 바쁘니 집에서 아이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도 어렵다. 생활이 너무 흐트러지는 것 같아 잔소리도 해보지만 한계가 있다. 학원이 아예 없어 학습을 외부에 맡기기 어려우니 결국 부모가 적극적으로 아이의 생활에 간섭해야 하는 데, 쉬운 일은 아니다. 일부는 과외를 시키기도 하나, 대부분 복습이나 취약 과목을 보충하는 목적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학 때 학습을 시키고 싶은 학부모들은 ‘학습지’를 많이선택한다. 여러 학습지 전문 출판사에서 여름방학용 학습지를 내놓는데, 웬만한 슈퍼마켓에 학습지 진열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프랑스 학부모들도 여름방학 학습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현직 교사들은 방학은 쉬는 시기라며 굳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여름이 되면 나도 한두 권의 학습지를 산다. 일단 건네는 것만으로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어서다.


프랑스 중1의 학습지 중 자연과학 분야에 관한 내용. 학습한 내용의 복습, 문제 풀이가 딸려 있다.


여름방학에 열리는 다양한 청소년 대상 캠프를 소개하는 인터넷 카탈로그.


올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사망 500주년을 맞아 그가 말년을 보낸 샤토 클로 뤼세에서 여러 행사가 열려 많은 가족들이 찾고 있다. 다빈치가 머물렀다는 작업실(위)과 정원 풍경.


처음에는 마냥 좋기만 했던 긴 여름방학, 아이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불만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물론 나도 충분한 휴식과 놀이가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높인다는 생각에 다른 프랑스 부모들처럼 방학 때 자유롭게 풀어두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 거의 늦잠과 게임으로 방학을 보내는 걸 보고 들으니 청소년기에 매년 2개월을 별 노력없이 즐거움만을 생각하면서 보낸다는 것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어릴 때 많이 배워야 한다는 한국 엄마와 많이 놀며 추억을 쌓아야 한다는 프랑스 엄마가 내 안에서 격렬하게 다투고 있는 데, 이젠 그 중간을 택하려고 한다. 이 곳 문화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배움의 습관을 잘 들일 수 있도록 한국식 교육을 접목하려고 시도 중이다. 그래서 최근 한국 학부모들의 관심사를 눈여겨보고 있다. 거리도 멀고, 교육 문화도 다르지만 적어도 한국 특유의 근면한 성향, 발 빠른 학습 트렌드는 배워 두면 아이의 경쟁력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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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미란 (프랑스 통신원)
  • EDUCATION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9년 08월 28일 9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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