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라고 하면 예술·명품·문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산업이기도 해 청소년들의 관심도 높다. 영화·영상 관련 분야도 빼놓을 수 없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전문교육을 받아 대학에 굳이 가지 않는다.
반면 코딩 열풍은 보기 힘들다. 학원도 없고, 학교에서 다루는 범위도 한정돼 있기 때문. 특히 자녀의 진로 결정에 부모의 개입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부도, 진로도 결국 학생의 인생이니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진로 결정, 성적 영향 커
프랑스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 계획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지’란 생각이 강하기 때문. 물론 자녀의 희망 직업을 물으면, 한국과 다르지 않은 답이 튀어나온다.
특히 프랑스는 일종의 엘리트 교육 기관인 에꼴 드 꼬멕스나 그랑제꼴 출신은 질 좋은 취업이 보장돼 학부모들은 이들 학교에서 마케팅이나 엔지니어링 공부를 하길 원한다. 두 학교는 선발 기준이 워낙 높아 인문계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고교 과정을 마친 후 ‘프레빠’라는 집중 학습 과정까지 거치고 나서 입학 시험에 도전한다.
결국 학교 성적에 따라 장래 직업이 좌우되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진로 결정 시기부터 ‘고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꽤 다르다. 일단 프랑스는 중학교 졸업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진로를 정한다.
직업 체험과 진로 상담의 영향이 크다.
중학교 마지막 학년에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5일간 실제 직업 현장을 체험한다. 체험처는 스스로 찾아야 하고, 입사 서류처럼 지원 동기도 적어 낸다. 업무가 나와 맞는지부터, 근로 환경이나 인간관계 등 실제 직장을 체험하며 미래를 가늠해본다. 체험 결과는 약식 보고서나 발표 등으로 담임에게 평가받고 성적에 반영되기도 한다.
또 진로 상담 교사는 성적을 바탕으로 진로 진학 계획을 함께 세운다. 중학교 마지막 학년 성적이 평균 20점 만점에 10점 이하라면 직업계고, 12점 이상이면 일반 인문계고 진학을 권장하는 식. 이 과정을 거쳐 졸업이 다가오면, 적지 않은 학생이 미용, 배관, 요리 등 전문 기능을 수련하기로 마음먹고, 직업계고 진학을 결정한다.
취업도 수월하다. 수공업이나 제과·제빵업, 요리, 건축 관련 직업은 직업계고에서 공부한 후 자격증을 받으면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 학생에게도 인기 높은 일러스트레이터, 스튜어디스, 경찰, 연기자 등은 아예 대학 졸업증이 필요 없다. 프랑스 대학은 이론 위주라 연기학과나 음악, 미술 분야는 학부에 학과가 없다. 대신 음악원(Conservatoire),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등 실기 전문 교육원이 있다.
특히 직업계고에서 기능을 익히는 학생들은 일찌감치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만큼 30대만 되더라도 장인으로 존중받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다 보니, 학생들도 자신의 성향이나 재능에 맞춰 일찌 진로를 결정하는 선순환이 반복된다는 인상이다.
성적 중요하지만, 공부는 아이의 몫
고등학교에 와서 아이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 부모라면 어떻게 할까? 한국 학부모라면 열에 아홉은 학원이나 과외 등을 이용하겠지만, 프랑스 학부모들은 반반이다. 아니, 학생에게 맡겨두는 비율이 더 높을 수 있다. 경제적 환경은 상관없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프랑스식 철학 때문이다. 학업 역시 자녀의 몫이니 스스로 능동적으로 해야 하며, 학교 수업에 흥미가 없는데 굳이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
학업과 달리 사회적으로 학생, 청년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재정적 독립. 학생들도 빨리 공부를 마쳐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어한다. 부모들도 자녀에게 자립하라는 심리적 압박을 준다. 그렇다 보니 진로를 고민할 때 언제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지,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려한다. 성인이어도 더 좋은 취업처를 찾을 때까지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일이 흔한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이기도 하다.
중학생인 딸아이에게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가끔 묻는다. 어릴 적엔 미용사, 웨이트리스 혹은 동물원 사육사를 말하던 딸이 지금은 한결같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친구들의 희망 직업을 물어봐도 몇몇 외에는 다들 모르겠다고 했단다. 이런 주제로 프랑스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면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학생 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그 나이 때 뭘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는 것. 그 말은 내게 안심이 된다. 혼자 성급해서 아이를 때 아닌 고민에 빠지게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가 내 생각을 기준으로 꿈을 찾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내 딸이 그렇게 살 수 있는 행운을 갖기를 바라본다.
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고등학교 진로 선택 계획서. 고등학교 선택은 여러 차례의 상담과 개인의 숙고 후 이뤄진다.
명품 매장 앞. 패션·뷰티·명품 관련 산업은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유망 진로로 손꼽힌다.
2018년 프랑스 18~25세 청년의 선호 직업 설문 결과를 담은 기사. 1위 연기자, 2위 비디오 저널리스트, 3위 외교관, 4위 가수, 5위 비행사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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