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베트남 남부 도시 호치민은 1년 내내 여름 기온을 유지한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365일 여름의 태양아래서 뛰어놀고,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한다.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와 학교에는 야외수영장이 갖춰져 있어서 사시사철 태양 아래에서 수영할 수 있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한국에 있는 또래 친구들보다 여유 있고 느긋한 편이라고 여겨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1년 내내 햇빛 아래에서 뛰어놀면서 체력을 키우고, 운동을 통해 정서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환경 때문일 것이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국제학교의 커리큘럼과 여름 햇빛의 여유가 아이들에게 선사하는 교육적 시너지는 상당하다.
‘학원’ 성업 중인 베트남 한인 밀집 지역
베트남 호치민에는 꽤 많은 한국 교민이 거주한다. 베트남 전역의 한국 교민은 대략 12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호치민에 그중 7만 명이 살고 있다. LA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외국도시인 셈이다.
호치민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대부분 한국 기업의 현지 주재원 또는 현지 기업의 한국 담당 업무, 한국과 베트남 간 무역 사업 등 업무상의 목적이나 경제적 이유로 터전을 옮긴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30~40대 주재원 가족의 유입이 가장 많다. 유아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자녀를 둔 연령대인 만큼 이들의 최대 고민은 베트남에서의 교육이다.
한국인 밀집 지역의 풍경이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른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 가족이 거주하는 푸미흥(Phu my hung)은 호치민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외국인이 많이 사는 신도시와 같은 곳인데, 한국인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다른 나라라면 한국 식료품이나 한국 식당만으로 가득할 거리는, 교육기관까지 즐비하다. 영어, 수학, 논술 등을 가르쳐주는 학원들이 여럿이고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제학교 입학 준비를 위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학원까지 있다.
한국 교민은 영어 쓰는 국제학교에 관심
나날이 발전하는 베트남의 경제 상황에 발맞춰 교육 환경이 개선되고 있고 다양한 국제학교가 있어 학교 선택의 폭이 비교적 넓다는 점은 교민들에게 위안이 된다.
현재 호치민에는 SSIS(미국), ISH CMC(미국), BIS(영국), ABC(영국), AIS(호주), CIS(캐나다), EIS(유럽) 등 다양한 나라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국제학교가 여럿이다. 한국 교민들은 아무래도 영어를 기반으로 한 서구 교육에 관심이 많아, 현지 학교보다는 국제학교를 선호한다.
문제는 호치민 내에 한국 교민이 많고, 국제학교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보니 입학이 까다롭다는 데 있다. 인기가 많은 학교의 경우 국적 제한을 둬 입학 시험을 따로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현지 교민 사이에는 호치민 한국국제학교(KIS)에 대한 관심도 높다. 유치부부터 고등학교까지 약 1천800명이 재학 중인데, 다른 나라의 한국학교와 비교해 규모가 상당하다.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어야 입학 가능한 만큼 적응 문제가 덜하고, 외국에서 한국의 교육과정을 이수해 한국 대입에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평이다. 특히 올해 중복 합격자를 포함,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에 약 370명이 합격해 교민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또 KIS는 토요한글학교를 운영, 국제학교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나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이 토요일마다 국어와 논술, 한국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다 보면 한국어와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에는 자칫 소홀해질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올해 14살이 된 둘째 아이는 만 3살이 되는 해에 호치민에 왔다. 미국계 국제학교 SSIS 7학년(한국의 중1)이 된 지금까지 10년째 다니고 있다.
아이는 또래 한국 아이들에 비해 지나칠 만큼 느긋하고 여유롭다. 프리킨더부터 초등학교까지 다니는 동안, 학교 가는 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와”라는 말을 무심코 던지면 아이는 깜짝 놀라면서 “어? 나 학교에서 공부 안 하는데?”라며 심각하고 진지한 대답을 해 나를 웃게 했다.
야외 활동과 체험, 토론을 강조하는 수업 방식과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 덕에 아이는 무엇을 ‘배우러’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나고 즐겁게 ‘놀러’ 다녔다.
개인 간의 비교나 경쟁이 드러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국제학교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친자연적이고 따뜻한 환경을 가진, 이 나라의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한국에 비해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시설이 많이 부족하고 체험 또는 견학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라 아쉬울 때도 분명히 있다. 반면 이 나라의 여유로움과 때묻지 않은 분위기는 아이들이 밝고 순수하게 자라게 했다.
지난 10년,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데 호치민의 뜨거운 여름 햇살이 큰 역할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1. 호치민의 한인타운, 푸미흥에 위치한 미국계 국제학교 SSIS(Saigon South International School).
이곳에는 40여 개국 출신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2. 베트남 한인타운에는 한국 음식점이나 마트 외에 저학년 위한 학원부터 대입을 돕는 입시 교육기관까지 있다.
3. 국제학교의 체육 수업(PE). 1년 내내 여름 기온이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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