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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88호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크리스마스는 가족의 날 고요한 스페인의 연말연시



스페인은 국민의 약 80%가 가톨릭 신자다. 그렇기에 예수가 탄생한 크리스마스를 매우 성대하게 맞이할 것 같지만 실상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연말연시 대규모 세일이 이어지고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트리 장식이 곳곳에 등장하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명절처럼 가족과 함께하다 보니, 상점은 문을 닫고 거리에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신 학교에선 나눔의 의미를, 가정에선 가족의 정을 되새긴다.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마음만큼은 가장 따뜻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산타가 살지 않는 스페인?
스페인은 12월에도 평균 10도 안팎을 유지한다. 늦가을 날씨라 그리 춥지 않아 겨울방학이랄 것이 없다. 크리스마스부터 연초까지 짧게 2주 정도 쉬는 경우가 다반사다. 학생들에겐 숨을 돌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11월 말까지 모든 교과가 1학기 정기 시험을 치르기에 고삐를 바짝 죄고 했던 공부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기 때문.
이때 학교에서는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하는데, 크리스마스를 기념한 미술 숙제도 포함된다.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다. 보통 한국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산타 혹은 부모님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날,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외식을 하거나 케이크를 나눠 먹는 즐거운 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중학교 진학을 한 학기 남겨뒀을 때, 아들은 학교에서 크리스마스에 생각나는 걸 그려 오라는 미술 과제를 받았다. 선물 꾸러미를 가득 들고 집 굴뚝에 들어가는 산타의 모습을 그려 갔다. 한국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당시 미술 선생님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아들에게 전했다. “스페인에는 산타가 없단다.” 크리스마스는 산타의 날이 아닌 예수가 태어난 날이라는 설명을 듣고 아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 순간을 다시 그려 갔다.
보수적이라는 스페인의 가톨릭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일화였다. 실제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고.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에 선물을 건넨다. 세 명의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예물을 바친날을 기념하는 날로 우리나라의 어린이날과 유사하다.
또 이때 일부 학교에선 기부금 형식으로 학교복권을 학생들에게 판매한다.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세계 최대 배당액을 자랑하는 복권의 당첨번호를 발표하는데, 이를 본떠 학교에서도 복권 시스템을 활용해 대규모 봉사 행사를 진행한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누구나 노트 한 권, 연필 하나라도 당첨되게 만들어 기쁨을 주는 한편 복권 수익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학교 운동장에 테이블을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안내하고 상을 차리는 것까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한다. 행운을 즐기면서 나눔의 기쁨까지 배우는 뜻깊은 연말을 선사하는 셈이다.


관광객들은 실망하는 스페인의 연말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우리나라처럼 거리마다 캐롤송이 흘러나오는, 활기찬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스페인을 찾은 여행객들은 당황할 때가 많다. 뉴욕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처럼 화려한 풍경을 기대했는데, 거리에서 성당 외에는 문을 연 곳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 소수의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조용하고 고요한 풍경은 가족과 함께하는 연말연시 문화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추석처럼 가족과 보내는 시기이기 때문. 가족을 중시하는 스페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만큼은 멀리 떨어진 가족이 한데 모여 축하 인사를 전하고 함께 식사를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전통이 있다.
거리는 고요하지만 가정은 시끌벅적하다. 특히 12월 31일 자정의 모습이 한국인인 내게는 매우 흥미롭다. 이날 밤 11시가 되면 사람들은 열두 알의 청포도를 와인 잔에 담아 준비한다. 이내 자정이 되면 인근 성당의 종탑에서 열두 번에 걸쳐 종을 울린다. 사람들은 종이 한 번 울릴 때마다 청포도 한알씩을 먹는다. 열두 알의 청포도는 1년 열두 달의 행복과 건강을 의미하기에 청포도를 종소리에 맞춰 먹는 것. 또 시청이나 성당의 광장에 나가 청포도와 백포도주를 마시며 시민들끼리 작은 축제를 즐기기도 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할 것 같은 유럽에 위치하지만, 스페인은 가족을 비롯해 공동체를 매우 중시한다. 이런 문화가 연말연시에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가족끼리 식사를 하고, 부모 형제 자식 외에 친지들과도 가깝게 지내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늘 함께한다.
스페인의 연말연시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크리스마스, 연인이나 동료와의 약속에 치우쳐 연말연시를 보내는 한국에서 보자면 보잘것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웃과 나누고, 가족과 함께하는 스페인 문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1. 지난해 12월 31일 자정, 시청 광장 풍경. 조명과 폭죽이 근사하다.
2.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미술 숙제에 산타를 그려 갔던 아들은 결국 예수 탄생 순간을 담은 그림을 다시 그려 제출했다.
3. 크리스마스 직전의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할인 폭이 커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을 기다린다.
4. 일부 학교에서는 연말에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복권을 발행한다.
기부가 목적이지만 학생들에게도 즐거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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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8년 12월 26일 8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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