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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53호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영어 vs 중국어 교내 언어도 학교 선택 기준



말레이시아는 다민족국가다. 크게 말레이-말레이계, 말레이-중국계, 말레이-인도계라는 세 민족으로 구성된다.
현지 학교도 이에 따라 말레이학교, 중국학교, 인도학교로 구분된다. 단, 현지 학생들은 민족에 상관없이 어느 학교든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생각보다 여러 형태의 학교를 마주하면서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다양한 문화’라는 말레이시아의 특성을 체감했다.

국제학교 아닌 현지 중국학교 선택
우리 가족은 말레이시아 페낭에 거주하고 있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진, 태국 국경에 가까운 섬이다. 관광지로 유명하고, 최근엔 영어 교육에 관심 많은 한국 엄마들이 주목하는 곳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치안이 좋고 저렴한 학비로 국제학교에 다닐 수 있으며, 한국과의 거리도 가깝기 때문.
5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 역시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입학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페낭에 오래 거주한 지인은 중국어를 배우리 좋다며 현지 중국학교를 권했다.
사실 페낭은 중국계 말레이인의 비중이 높아 중국학교가 많다. 무엇보다 페낭 주 정부는 부모의 비자에 따라 입학을 허가하는데, 남편의 비자는 현지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킬 수 있었다. 지인은 흔한 기회가 아니라며, 적극적으로 현지 중국학교 입학을 권했다.
결국 큰딸은 사립 중국 중·고교의 정규 학년이 아닌 파운데이션 과정에, 작은딸은 현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현지 공립 중·고는 초등학교와 달리 외국인의 입학을 불허하나 명문 공립학교는 사립학교를 같이 운영하므로 언어만 된다면 입학이 어렵지 않다.

교육비 저렴하지만 스타일은 포기해야
중국계라도 엄연한 말레이시아 학교인 만큼 체제는 다른 현지 학교와 같다. 말레이시아 현지 학교는 대개 1월 첫째 주에 새 학년이 돼 11월 셋째 주에 학년을 마치고, 5~6주의 긴 방학에 돌입한다.
입학 준비물은 한국과 같지만, 준비 방법은 다른 점이 많다. 우선 교복.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아이의 교복을 구할 수가 없었다. 사립학교나 국제학교는 학교 직영 매장에서 연중 상시 구매 가능하나, 공립학교는 입학철 대형마트에서 교복과 체육복 등을 대량으로 판매한다. 다시 말해 입학 시기가 아니면 제품을 구하기 어렵다.
교복 스타일도 한국과 다르다. 내가 중학교 때 입었던 교복이 그리워질 정도로 옛스러운 디자인이다. 예쁜 교복이 아니라는 실망감은 잠시, 귀를 의심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놀랐다. 교복을 산 후, 미용실을 찾았다. 공립학교는 머리카락을 짧게 유지해야 해, 작은딸도 단발로 잘랐다.
마지막으로 서점에서 교과서를 구입했다. 현지 학생들은 학년 말 방학 전, 다음 학년 교과서를 무료로 받고, 해당 학년을 마치면 교과서를 반납한다. 반면 외국인 학생은 따로 시중 서점에서 구입하되, 반납할 필요는 없다.
낯선 글자로 쓰인 새 교과서를 처음 펼쳤을 때 느꼈던, 먹먹하면서도 복잡했던 감정이 지금도 선연하다. 딸이 학교에서 매일 느껴야 할 벽이 눈앞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딸은 입학 후 거의 한 달간 눈물바람으로 학교에 오갔다. 그런 아이가 지난해 11월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1월 어엿한 중학생이 됐다.
현재 두 딸은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큰딸은 1년 6개월 후, 작은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제학교로 진학했다. 큰딸은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규율이 엄격한 현지 학교 문화와 갈등이 커졌고, 중국어로 교과 공부를 하면서 성적도 많이 떨어져 전학을 결정했다. 작은딸은 처음 한 달은 힘들었지만 잘 적응해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주변에서 한국인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다만,대학까지 내다봤을 때 영어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전학하게 됐다.



두 딸에게 현지 중국학교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자 시련이었다. 동시에 이국에서 작은 성취감을 맛본 곳이기도 하다. 중국어권과 말레이시아 문화를 몸으로 부딪치며 이해하고 적응해나간 경험, 유창한 중국어 실력은 처음부터 국제학교만 다녔다면 얻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또 부모로서 돌이켜보니 아이의 수준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 다양한 학교 선택지를 나름 유용하게 활용한 것 같다. 남들과 비슷한 길 혹은 정해진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 속에서 내 아이에게 맞는 길을 찾아 골라봤기 때문이다. ‘하나’에 익숙한 한국 엄마가 다양성이 정체성인 말레이시아에 적응한 첫 사례가 아이들의 입학과 전학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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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8년 03월 28일 8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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