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뒤로

생활&문화

1197호

일상톡톡

사춘기, 중2로운 날들

평생 한 번은 치르고 지나가야 한다는 사춘기. 중2병이 제때 찾아오는 것도 복이라고 하죠. 비를 맞아봤으니 우산을 씌워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지만 비가 올 땐 결국 함께 젖으며 걸어가는 수밖에 없나 봅니다. 뜨거웠던 여름방학, 요동쳤던 사춘기 일상을 담아봤습니다.

글·사진 김성미 리포터 grapin@naeil.com




/갑자기 찾아온 두통/

처음엔 꾀병인가 싶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아이가, 학원 갈 시간만 되면 거짓말처럼 두통을 호소했거든요. 몇 번은 쉬게 해주었지만, 매번 쉬고 싶다고 하니 나중에는 모른 척하며 억지로 학원에 보냈죠. 습관이 될까 봐 신경이 쓰였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학원에서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어요. “엄마, 나 머리가 너무 아파.”

놀란 마음에 병원으로 달려가 온갖 검사를 받아봤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결과는 청소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원발성 두통. 말 그대로, 요동치는 호르몬과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사춘기만의 신호라네요. 병원 복도를 가득 메운 머리 아픈 또래들을 보며 청소년 시절이 주는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됐어요.


/여름방학, 학원을 몽땅 끊으며/

짧은 여름방학, 원래라면 수학 진도도 빼고 과학 특강까지 고민했겠지만 머리 아픈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건 양심에 찔려 잠시 쉬는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대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죠. 좋아하는 회도 실컷 먹고, 바다도 마음껏 즐기며 온 가족이 힐링 타임을 가졌어요.

학원 없는 방학, 책이라도 읽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요. 독서록 기재 도서 ‘0권’ 소녀답게 엄마의 기대를 살포시 뒤로한 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개학이 다가왔습니다. 8월 내내 눈앞에서 노는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았지만, 잔소리를 꾹 참으며 보낸 한 달. 학업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웃음이 돌아오고, 아이의 두통도 사라지는 걸 보며 ‘인생 별거 있나, 건강이 최고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중2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굿즈가 뭐길래/

역대급 더위에 24시간 풀가동 중인 에어컨 앞에서 꼼짝 않던 집순이 딸을 집 밖으로 끌어낸 건 다름 아닌 ‘픽셀리 굿즈’였습니다. 요즘은 외식도 귀찮다며 고기의 유혹도 마다하고 집에서 라면만 끓여 먹던 사춘기 딸이, 편의점 앱에 ‘잠뜰빵’ 재고가 떴다는 소식에 36℃ 찜통더위 속에 1.4km를 걸어 빵을 한아름 사 오는 걸 보니 기가 막혔죠. 평소에는 용돈 100원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알뜰한 아이가 굿즈를 향해 통장을 시원하게 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띠부씰 40종 중 절반 이상을 모았다며 의지를 불끈 다지는 모습도 놀라웠고요.

2주째 간식은 온통 빵뿐이라 ‘목은 안 막히나?’ 싶었는데, 빵이 끝나자 이번엔 과자의 역습이 시작됐습니다. 이번에는 포토카드를 준다네요. 세븐틴 이후 오랜만에 다시 시작된 ‘굿즈가 뭐길래’ 체험 주간. 하도 움직이지 않아 운동을 시켜야 하나 고민했는데 편의점 열 군데를 제 발로 도는 걸 보니 결국 중요한 건 ‘의지’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게, 그 의지로 공부만 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심심함이 만들어낸 기적, 책과의 만남/

연필 한 번 잡지 않고 흘러간 야속한 8월. 온종일 놀다 보니 심심했는지, 딸이 갑자기 “엄마, 나 책 보고 싶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귀를 의심했어요. 평소 책과 담을 쌓던 아이가 조지 오웰의 <1984>를 사달라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죠.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책을 주문했어요.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던 책을 스스로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며, 심심함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에 새삼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중2의 변덕, 만세!




/9월, 다시 시작/

더 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이의 방황(?)은 한두 달 만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집에서 공부 습관을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는 “엄마, 난 자기 주도는 꽝이야. 집에서는 그냥 쉬고 싶어”라며 다시 학원에 가겠다고 하네요. 대신 개별 진도를 나가는 수학 학원으로 바꾸고 싶다고 합니다. 저도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을 따뜻하게 지켜보려고요. 방황하는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길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파이팅!















[© (주)내일교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일교육
  • 김성미 리포터 grapin@naeil.com
  • EDU CHAT | 일상톡톡 (2025년 09월 10일 1197호)

댓글 0

댓글쓰기
251124_서울여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