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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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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 오를 결심

등산은 좋아하지 않지만 겨울 백록담은 꼭 보고 싶었습니다.
장장 8시간의 등산으로 몸은 지쳤지만 끝내 백록담을 만나고 왔습니다. 할 말을 잃게 만든 절경을 소개합니다.

글·사진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사라오름의 추억/

우리 가족은 2024년 12월에 이어 2025년에도 제주를 찾았습니다. 해외여행을 고민하다 아이의 입시가 마무리되지 않아 택한 차선책이었죠. 제주를 찾을 때면 오름은 꼭 방문했어요. 2024년 겨울 여행을 준비하면서 사라오름을 알게 됐죠. 평범한 오름이라 여겨 남편과 저는 등산화, 두 아들은 운동화를 신고 올라갔어요. 겨울이라 혹시 몰라 간이 아이젠을 구매했죠. 사라오름은 한라산 성판악 백록담 코스 남쪽에 자리해 속밭 대피소를 지나 한참 더 가야 했어요. 눈은 쏟아지고 길은 미끄럽고 날씨는 춥고 꽤나 험했습니다.

저는 걷기는 좋아하지만 등산은 좋아하지 않아요. 내려올 걸 왜 굳이 힘들게 올라가나 싶거든요. 저를 닮은 둘째도 올라가면서 온갖 짜증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란 없기에 둘째를 다독이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온통 눈으로 덮인 나무와 데크, 웅장한 오름 분화구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느 오름에서도 느끼지 못한 웅장함과 묘한 고요함이 압도했죠. 순간, 겨울 백록담의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새벽 등산객이 이렇게나 많다고요?/

2026년을 이틀 앞둔 12월 30일, 드디어 한라산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두 아들에게 등산화를 장만해주고 튼튼한 아이젠까지 챙겼습니다. 새벽 5시 40분쯤 주차장 만차 안내 메시지가 연이어 울렸어요.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해가 뜨기도 전에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바람은 차갑고 산은 어두웠죠.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오후 4시 하산을 목표로 발길을 재촉했어요. 장비를 제대로 갖춰서인지 생각보다 버틸 만했습니다. 힘들게 등산은 왜 하냐고 묻던 둘째도 “등산은 장비발”이라며 씩씩하게 올라갔습니다.

날씨가 포근해 좋고 눈 쌓인 길도 발목에 부담을 덜어 주더라고요. 평탄하다 싶으면 갑자기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지만, 숨이 턱 막히고 죽겠다 싶으면 어느 순간 평탄한 길이 나와 숨통을 열어줬어요. 힘들 때마다 옆에서 속도를 맞춰주는 가족과 스쳐 지나가며 “수고하세요~”라고 응원해주는 등산객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죠.



/드디어 정상/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한라산 정상, 10년 전 여름에 맞이한 백록담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다른 오름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크기에 감탄했습니다.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눈으로 덮인 백록담, 가을 하늘처럼 파랗고 드높은 하늘, 매서운 바람은 자연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줬죠.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각자 백록담을 바라보며 새해 목표를 잘 이뤄보자고 다짐했어요.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이들을 보며 보다 나은 한 해가 되길 바랐습니다.



/함께라서 가능했던 일/

올라갈 때는 남편과 함께했고 내려올 때는 올해 입시에 재도전한 둘째와 함께했습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최소한의 대화만 했던 아이가 등산 후 말도 많아졌고 힘을 내려는 모습이 제 눈에도 보였습니다.

힘들게 한라산 정상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보니 힘들었던 순간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울림이 있더라고요.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씩씩하게 견디고 나아가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아이에게 이야기했어요. “엄마 미안해. 재수했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부끄럽지?”라는 아이의 말에 “자식이 부끄러운 부모는 없다”라며 찐~하게 안아줬습니다. 한라산의 기운을 받아 새해를 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벅찬 감정이 꿈틀했죠. 혼자였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겨울 등반, 가족과 함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행복하고 힘든 순간, 혼자가 아닌 ‘우리’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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