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방학, 학원 특강의 유혹을 뒤로한 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며 제철 대방어를 먹고 싶다는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요. 묵혀둔 장롱 면허를 꺼내 사춘기 딸과 단 둘이 떠난 우당탕탕 제주도 여행기, 지금 만나보시죠.
글·사진 김성미 리포터 grapin@naeil.com
혼저 옵서예(어서 오세요)
돌하르방과 야자수가 반겨주는 제주공항. 혹시라도 눈이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날씨 요정은 우리 편이었습니다. 여행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맑은 날씨가 계속됐거든요. 비루한 운전 실력 탓에 렌터카를 빌릴까 말까 백 번 고민했는데 용기를 낸 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제주도 한 바퀴를 쌩쌩 돌았으니까요.
평소 뒷좌석에서 핸드폰만 보던 딸도 음악 선곡과 내비게이션 조작을 담당하며 조수 노릇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비록 회전 교차로에서 길을 좀 헤매고, 좁은 골목길에서 땀을 뻘뻘 흘리긴 했지만 사고 없이 여행을 마쳤으니 럭키 비키 아닌가요?
맛 조수다게(맛있어요)
에메랄드빛 바다와 신비한 숲이 매혹적인 제주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는 건 바로 맛있는 음식이죠. 입안 가득 고소함이 밀려드는 두툼한 방어회와 달달한 딱새우, 달고기로 만든 바삭한 피시 앤드 칩스, 멸치젓에 찍어 먹는 흑돼지 구이까지. 먹는 것마다 엄지 척,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우리 집 중학생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음식은 바로 보말 칼국수였습니다. 직접 반죽한 쫄깃한 톳면에 보말로만 끓인 육수로 정성껏 끓여냈다는데 국물이 어찌나 녹진하고 구수한지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소못 소랑햄수다(정말 사랑해요)
겨울 제주 여행의 백미는 차가운 바람을 맞고 붉은 꽃잎을 활짝 피워내는 동백꽃. ‘겨울의 여왕’이라 불리는 동백꽃은 희망과 기다림의 상징이자, 제주에서는 4·3 사건을 추모하는 꽃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붉은 동백꽃의 꽃말은 ‘그대만을 사랑해’라네요. 1월 말, 노랗게 펼쳐진 유채꽃 밭도 추억을 담는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사진을 찍어주지 않는 딸 대신 아이의 ‘최애’ 세븐틴 승관의 인형을 들고 찰칵!
폭삭 속았수다(수고 많았어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거문오름과 천년의 숲 비자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까지. 귤향기 맡으며 놀멍 쉬멍 다니려 했건만 어쩌다 보니 예정에 없던 등산(?)을 하게 됐어요.
제주도 홍보대사인 세븐틴 승관을 따라 국제멸종위기종인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 사업에 기부했더니 ‘탐나는 제주 패스’가 발급됐는데요. 제주도 관광지 23곳이 무료더라고요. 공짜의 유혹에 새벽부터 성산일출봉을 올랐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정상에서 본 장엄한 풍경은 오래 기억될 거예요.
다시 오쿠다양(다시 올게요)
제주의 푸른 바다를 뒤로한 채 집으로 가는 길.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고양이가 있는 소품숍 카페였는데요. 눈부신 오션뷰도 멋진 오름뷰도 귀여운 고양이 앞에선 무용지물이더라고요. ‘최애’의 사인을 봐서 더 신났던 걸 수도요. 아무쪼록 이번 여행이 딸아이가 지칠 때 숨통을 틔어주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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