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도영
부산대학교 의생명융합공학부 3학년
ehduddl0326@naver.com
조용히 그리고 적당히 공부하며 평탄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겉으로 보기에 완만한 인생이라도 변곡점은 분명히 있으며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내 몫이다. 잘못된 선택일 수도,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저 보통 사람인 내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미래를 상상해보길 바란다.
수학의 배신, 힘들었던 회복 과정
고1 때, 아주 큰 배신을 당했다. 바로 공공의 적인 수학에게 말이다. 중학생 때는 수학 점수가 항상 좋았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는 50점도 되지 않는 점수와 4등급 끝자락인 성적표를 받았다. 큰 충격에 빠져 눈물에 젖은 3일을 보냈다. 일어나서 울고, 친구와 전화하다 울고, 혼자 시험지를 다시 보다가 울었다. 그렇게 다 울어버리고 난 후에 다시 일어서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일단 3년간 다녔던 수학 학원을 바꾸자 문제집이 바뀌었고 수업 방식이 변했고 문제를 푸는 요령과 방식이 변했다. 이게 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저 듣기만 했던 학교 수업은 선생님의 요점을 파악하며 듣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개념을 다시 읽고 문제를 예제부터 꼼꼼히 풀었으며 증명도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다른 과목과 병행하며 수학을 챙기려면 시간이 모자라기도 했다. 새벽에 울며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하고, 밤새 공부했다가 수업 시간에 졸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기말고사에서는 수학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공 계열을 목표로 한 이상, 수학은 끊을 수 없는 인연이었고 남은 고등학교 생활 동안에도 잔잔하고 꾸준한 좌절을 주었지만 수학과 씨름하며 좋은 결과를 냈던 경험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기억에 남는 경주 역사 학술 활동
고등학교에서는 내신 공부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대학에 가기 위해선 학업 외 활동에도 신경 써야 한다. 다른 친구들은 동아리, 외부 활동, 봉사 등을 병행했다. 나는 고1 때부터 교과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기 때문에 학생부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기에 친구들과 함께 조금씩 학생부를 채우는 활동을 시작했다. 진로와 연관 있는 의학과 생명과학에 관련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에 대해 논술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하거나 과학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고, 미적분이나 화학 분야의 책을 읽은 후 발표하거나 감상문을 써서 세특을 채우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학술 탐방이다. 경주의 역사와 관련한 흥미 있는 주제를 하나 정한 후, 실제로 경주에 가서 여러 유적지를 보며 전문가에게 설명을 듣고 그에 관해 보고서를 쓰는 활동이었다. 사실 당시의 희망 진로 분야와는 교집합이 없었다. 그땐 약사를 꿈꿨고 문과 계열로 진로를 바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역사를 꽤 좋아했고 당시 한창 떠오르는 이슈 중 하나는 ‘융합형 인재’였다. 행정상 문·이과 계열 분류가 사라졌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경계 없이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있는 인재를 선호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진로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나의 흥미 분야와 접점이 있는 다양한 활동으로 학생부를 채운다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경주 학술 활동은 뿌듯한 선택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유물과 유적지를 보면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세세한 내용을 배울 수 있었고, 덕분에 관심 있는 역사를 직접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우정은 학창 시절의 버팀목
고등학교에서 공부만큼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바로 친구들과 우정 쌓기다. 3년 동안 매년 약 20명과 동고동락하며 공부하고, 같이 밥을 먹고 여러 활동을 함께 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좋은 추억은 대부분 고1 때 쌓았다. 가장 단합이 잘됐던 1년이었고 축제에서는 학급 부스로 귀신의 집도 운영했다.
방과 후에 남아서 비닐을 잘라 붙이고, 분장하고, 밥도 안 먹고 귀신 연기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했기 때문에 마냥 즐거웠다. 덕분에 힘든 입시를 버티는 힘이 됐다. 지금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친구와 추억을 나누기도 하고, ‘그때 진짜 웃겼는데’ 하며 혼자 미소를 짓기도 한다. 친구들과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뤄낸 경험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물론 고등학생 때는 대학 입학을 위한 준비가 중요하다.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공부해야 하며 원하는 대학과 학과, 원하는 미래를 위해 많은 학생이 노력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학업으로만 가득 차지는 않았으면 한다. 흥미로운 분야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친구들과 협업한다면 더욱 다채로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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