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민아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3학년
kma00603@naver.com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교 수업과 EBS 강의로 공부했다. 내게 맞는 공부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충분했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건 대입을 친절히 설명해줄 누군가, 먼저 겪어본 이의 이야기, ‘개천에서도 용이 나올 수 있다’는 선례였다.
그때의 내가 궁금했고 나에게 필요했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좋은 대학에 갈 사람은 정해져 있을까. 특정 지역이 유리할 순 있으나 좋은 대학을 가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난 이렇게까지 해봤다’라며 밤새 떠들 수 있다는 것. 고상하게 공부해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 넘볼 수 없는 대학을 넘보려면 무엇이든 뛰어넘어야 한다.
기자 되기 위해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나는 열아홉 살까지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 나를 신생아 시절부터 지켜본 어르신도 있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 가면 플래카드가 걸리는 동네였다. 내 그릇의 크기는 우리 동네에 맞춰졌다. 지극히 평범한 나에게 명문대 합격은 버겁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일이었다.
평준화 지역의 일반고를 다녔는데 매년 2~3명씩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영웅이 나왔고, 한 반에서 공부에 진심인 학생은 5명 정도였다. 강남 8학군이나 과학고처럼 날고 기는 괴물은 없었기에 내신 성적을 받기가 수월한 편이었다.
기자가 되려면 명문대에 진학해야 했고 미디어에서 본 명문대 학생은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스스로 ‘상위권 대학에 갈 만한 재목’이라 진단했다. 아무리 대학 문이 좁아도 난 다를 거라고 믿었다.
목표를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 중 멋들어진 캠퍼스 하나를 골랐다. 영혼은 이미 신입생이 되어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있었다. 고1 1학기까지는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반에서 상위권이었기 때문이다. 2등급 중반의 성적을 받고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만족해했다. 부족한 건 나중에 만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았다. 멀끔한 옷을 입고 푹 자면서 좋은 컨디션으로 포장도로를 거닐며 대학까지 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름 방학을 앞둔 어느 날, 바람은 산산이 깨졌다. 담임 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하며 목표를 얘기했더니 선생님은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니. 우물에서 뛰어놀던 낭랑 17세 소녀가 꿈에서 깨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까마득한 대학의 벽을 마주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흙탕물에 뛰어들기 위해 준비했다.
과목별로 목표 세우고
지필·수행평가 하한선 설정
공부하며 깨달은 건 학업에 대한 열정도, 입시 성공의 희망도 아니었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건 정말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 그릇에 담아야 할 물의 양을 정확히 인지하고 딱 거기까지만 채우기로 했다.
목표 대학과 학과의 입시 요강을 훑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합격선을 확인했고 특목고 친구들을 고려해야 하니까 0.5 등급 높인 내신을 일반고 학생이 갖춰야 할 내신으로 추정했다. 성적에는 ‘강강약약’이 필요한 법. 과목별 실력을 반영해 목표를 조정했다. 전 과목을 2등급 받든, 1등급과 3등급을 섞든 최종 내신이 2등급인 건 같다. 잘하는 과목은 더 열심히 했고 못하는 과목은 더 떨어지지 않게 조율하며 등급을 높였다. 못하는 과목에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우면 자괴감만 늘 뿐 얻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과목마다 목표를 설정한 후엔 시험마다 도달해야 하는 최저 점수도 정했다. 최종 내신 등급, 과목별 등급, 이를 위해 필요한 지필 및 수행평가 점수의 하한선을 정리했다. 등급 컷이 높은 사회탐구는 총점 100점을 목표로 정했다.
지필평가에서 넘어야 하는 최저 점수를 알고 나니 절벽 끝에 선 느낌이었다. 절박함은 좋은 원동력이다. 매 수행평가와 지필고사마다 목표에서 몇 발자국 가까워졌는지 알 수 있었고, 다음 시험에서 받아야 할 목표 점수를 곧바로 수정했다. 목표를 달성한 점수는 ‘앞으로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주었고, 그렇지 못한 점수는 나를 더 불태우게 만들었다. 턱밑까지 쫓아온 점수 하한선 덕에 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기꺼이 흙탕물에서 아등바등 공부했더니 작은 보폭이 모여 까마득했던 목표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최종 내신 등급은 1.6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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