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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호

내일신문·내일교육 공동 기획 | 교육학 이론으로 다시 보는 교육 이슈 ⑧

고교학점제 정착을 위한 학업성취 평가

글 김준엽 교수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후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교육측정평가(양적방법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찰스 드류대 정신의학과의 AIDS연구소 선임연구원 및 조교수를 거쳐 2008년부터 홍익대에 재직하고 있다.
홍익대에서 입학관리본부 입학사정관실장을 역임했고 한국교육평가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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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성취는 교과 교육을 통해 학생이 성취하기를 기대하는 목표를 실제로 성취한 정도를 의미한다. 학업성취는 개인 수준에서 직업경력과 사회경제적 지위를 예측하는 중요한 요인이며 사회 수준에서도 번영의 전제조건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각 국가들은 국가 교육 시스템의 강약점을 분석하고 우수한 성취를 보이는 국가를 벤치마킹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국가의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자원이 교육에 투입된다.

학업성취 평가를 위해 학교 현장에서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두 가지 방식이 사용된다. 최근 고교학점제 도입과 맞물려 2025학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전 과목에 대해 5등급의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병기하는 개편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학업성취 평가의 목적은 두 개의 대조되는 평가관, 즉 인재 양성의 관점에서 학생의 학업 능력을 측정해 이를 선발과 배치에 활용하고자 하는 선발적 평가관과 학생발달의 관점에서 무엇을 얼마나 잘 배우고 있는가에 관련한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해 학습을 개선하고자 하는 발달적 교육관에 기초한다. 목적이 다르다면 목적에 맞는 산출물을 얻기 위한 평가 방식도 달라야 한다. 선발적 평가관을 반영한 규준참조(norm-referenced) 평가 방식과 발달적 평가관에 기초한 준거참조(criterion-referenced) 평가 방식이 전통적으로 학업성취 평가에 활용돼왔다. 일반적으로 규준참조 방식을 상대평가, 준거참조 방식을 절대평가라 한다.

학생 A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85점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85점이라는 숫자(원점수)가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상대평가에서는 85점이 함께 시험을 본 집단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해당하는지에 평가의 기준을 둔다. 상대적 위치 판단을 위해 상위 4%에 1등급을 부여하는 등의 상대등급으로 그 결과를 제공한다.

준거참조평가(절대평가)는 주어진 학습 목표에 도달했는가에 기준을 두고 원점수를 평가한다. 준거란 어떤 영역에서 학습자가 도달하기를 기대하는 기준을 의미한다. 즉 목표한 수준 이상으로 학습이 이루어진 학생이라면 이 시험에서 80점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80점 이상을 목표 달성으로 판정하자는 것이 절대평가의 기본적 논리이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80점은 학습 목표와 시험의 내용 및 난도를 면밀히 분석해 도출된 값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평가 전문성은 절대적 역할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평가=다른 학생과 경쟁하지 않고 90점 이상이면 모두가 A를 받는 평가 방식’이라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절대평가를 이렇게만 받아들인다면 A등급은 단순히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는 의미로만 해석되게 된다. 이 경우 ‘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인과적 추론을 할 수 있다’ ‘맥락적 정보를 활용해 추론하는 능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등과 같이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아직 부족한지를 판단하고 이에 기초해 배움을 지원하고자 하는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2025 내신 개편 방안에 대한 검토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본격 도입되면서 고교 내신은 전 과목에서 상대평가 1~5등급과 절대평가 A~E등급을 함께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대목은 선택 과목을 포함한 전 과목 상대평가 적용, 그리고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병기이다.

모든 과목에 상대평가를 적용할 경우 수능 선택 과목에서 본 것처럼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이나 진로에 기준을 두고 과목을 선택하기보다 상대평가에서의 유불리를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 고교학점제가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교육과정 운영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 과목 상대평가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맞게 운영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병기할 경우 절대평가의 용도가 사라져 유명무실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모두 5등급으로 운영할 경우 등급의 해석과 관련된 여러 혼란 또한 불가피하다. 특히 상대평가 등급은 학교 내에서 상위 몇 %에 해당하는 점수라는 비교적 명료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절대평가의 A등급이 의미하는 능력의 수준은 학교마다 달라져 등급의 의미가 모호해질 수 있다. 절대등급 해석의 모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 기초한 학교 간 일관성 있는 성취기준 설정과 이에 기초한 평가도구 제작 및 채점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교사들의 평가 전문성 제고를 위한 각종 연수나 교사학습공동체 운영 또한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러한 정착 과정을 거쳐 절대평가 등급이 어느 정도 학교 간 비교 가능한 등급 체계라는 신뢰가 형성되고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등급이 차별성을 가지는 명료한 정보를 제공해야 비로소 대입 등에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학생의 배움을 지원하기 위한 평가로서의 절대평가가 고교학점제를 위한 평가 체계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1110호부터 학교 안팎에서 고민이 큰 중요한 교육 이슈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교육학자 12명의 릴레이 칼럼이 이어집니다. 이화여대 정제영 교수를 시작으로 강지영(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강태훈(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김동호(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김준엽(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박소영(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 박주형(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 이상무(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한종(춘천교대 교육학과 교수) 임효진(서울교대 초등교육과 교수) 조현명(이화여대 연구교수) 황지원(서울시립대 교육대학원 교수) 등 1990년대에 교육학과에 재학하면서 함께 공부한 3세대 대표 교육학자들의 깊이 있는 분석과 해법을 만나보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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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엽 교수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 COLUMN (2023년 12월 06일 1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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