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지영 교수
성신여대 교육학과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정부의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초청받아
인디애나대에서 교육과정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2년부터 성신여대 교육학과에 재직하고 있으며,
재미한인교육연구자협회(KAERA)에서 선정한 대학원생 최우수 논문상(2019년),
미국사회교육협회(NCSS)에서 선정한 박사 학위 논문상(2021년) 등을 수상하며 신진 학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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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2025년부터 학교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학교 자율시간과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고 단위 학교의 과목 개설권을 확대함으로써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을 가속화했다. 하지만 정작 이에 대한 학교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다. 국가에서는 학교에 더 많은 자율권을 준다고 하는데 왜 학교에서는 이를 환영하지 않는 것일까?
교육과정 자율화, 무엇이 문제일까?
일단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됐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교육과정 자율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오히려 교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먼저 학교의 교육과정 자율권이 확대됐지만 이와 동시에 교육과정 편성 시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다른 규정이 추가됨으로써 실질적으로 교사들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됐다. 예컨대 2009 개정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와 함께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학습자의 학습 부담 경감’을 위해 학기당 8개 교과를 초과해 이수할 수 없다는 제한을 두었는데, 이는 오히려 학교에서 융통성 있게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동했다.
대학 입시와 이에 따른 시장의 논리도 학교의 자율권을 제한했다. 애초 정부에서는 교육과정 자율화를 통해 학교의 실정과 학생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교육과정 편성을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대부분 수학과 영어 시수를 늘리고 도덕 실과(기술·가정) 음악 미술은 시수를 감축하는 양상을 보였다. 자율권 확대로 각 학교의 교육과정이 다양해질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모든 학교에서 입시 교육이 강화되는 획일적인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은 교사들의 충분한 공감대 형성과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추진된 교육과정 자율성은 엄밀히 말해 교사들의 자발적인 요구와 필요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책으로 하달됐다는 점에서 ‘타율적인 자율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의 취지는 학교와 교사를 위한 것이었지만 정작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경험한 것은 자율보다는 강제와 통제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교육과정 자율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율화를 전면 중단하고 예전처럼 중앙집권형 방식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강력한 국가 교육과정 체제는 경직성과 획일성으로 인해 다양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미래 사회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율화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어떤’ 자율성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에 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를 정책의 대상이 아닌 정책을 구성해가는 주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국가와 지역교육청은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대한 각종 지침과 규정을 양산해내는 역할을 주로 담당해왔다. 이제는 외부의 틀을 교사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현장에서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혁신적 노력들을 국가와 지역교육청이 시스템으로 담아내려는 상향식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와 지역교육청이 기존에 학교 교육과정을 규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오히려 학교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불필요한 지침과 규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간소화함으로써 학교와 교사의 교육과정 개발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역할로 변화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2025년부터 새로운 교육과정을 통해 학교의 교육과정 자율권이 대폭 확대될 경우 직면할 중요한 과제는 바로 교육과정 불평등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교육과정에서부터 교과서까지 국가에서 제공해주는 ‘패키지형 교육과정’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교사의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점이고,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과 학교에 따른 교육과정의 질 격차 문제가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육과정 분권화 지역화 자율화가 확대되고 무엇보다 고교학점제가 점진적으로 도입되면서 교육과정의 질 격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교에서 다양한 선택 과목을 개설해줘야 하는데 인구 유출이 많은 지역은 강사 수급이 어려워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각 지역교육청을 중심으로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이를 보완하겠다고 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을 보면 개설된 과목 수와 다양성 측면에서 지역별로 차이가 나타난다. 따라서 앞으로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이 교육과정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적·물적 환경이 열악한 지역과 학교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과정 지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1110호부터 학교 안팎에서 고민이 큰 중요한 교육 이슈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교육학자 12명의 릴레이 칼럼이 이어집니다. 이화여대 정제영 교수를 시작으로 강지영(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강태훈(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김동호(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김준엽(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박소영(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 박주형(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 이상무(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한종(춘천교대 교육학과 교수) 임효진(서울교대 초등교육과 교수) 조현명(이화여대 연구교수) 황지원(서울시립대 교육대학원 교수) 등 1990년대에 교육학과에 재학하면서 함께 공부한 3세대 대표 교육학자들의 깊이 있는 분석과 해법을 만나보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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