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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1171호

2025 공신들의 NEW 진로쾌담 | 두 번째 주제_ 우당탕탕 고교 생활

진로 고민을 나만의 무기로 바꾸기

글 김현정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3학년
hjeongkim0214@gmail.com

유년 시절에 언어와 문학에 푹 빠져 외고에 진학했고 일찍 문과의 길을 걷게 되었다.
세계화 시대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인문학과 언어의 힘을 믿으며 독어독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문학을 통해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기르는 중이다. 비슷한 진로 고민을 하는 학생에게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발목을 붙잡은 영어

나는 영어가 가장 어려웠다. 다른 과목은 해가 지날수록 성적이 올랐고 투자한 시간만큼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영어만큼은 달랐다. 내신 경쟁이 치열한 외고에서 좋은 영어 성적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돌아오는 건 떨어지는 성적뿐이었다. 영어 지문을 읽는 게 가장 두려웠고, 외고를 선택했을 만큼 좋아했던 영어가 끔찍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여러 권과 몇백 개의 지문을 읽어야 하는 게 버거워 면학실에서 친구 몰래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효율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무식하게 시험 범위만 n회독하기에 급급했다. 학원이나 인강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해내려고 애쓰다 보니 1학년에 2등급, 2학년에는 간신히 3등급을 받고 3학년에는 아예 밑바닥을 찍었다.

외고이기 때문에 다른 과목보다 영어 시수가 높았고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전체 성적에 큰 타격을 줬다. 부족한 영어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동아리 활동부터 대회 수상까지 챙겼다. 매주 환경, 정치, 인권 등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호주 학생과 화상으로 토론하는 동아리에도 들어갔고 외국인과 영어로 유창하게 사회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실력을 어필했다.

기숙사 학교였지만 다행히 3년 동안 좋은 룸메이트를 만났다. 하지만 진로나 성적이 비슷한 학급 친구들과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려니 쉽지 않았다. 서로의 성적을 자연스레 알게 되면서 친구가 경쟁 상대로 여겨질 때마다 힘들었다. 그럴 때면 가끔은 부모님께 투정도 부리고 혼자 학교 운동장을 걷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와 수다도 떨면서 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독문학 주제를 인권에 접목

외고 학생은 대부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학생부 활동이 가장 중요하다. 인문 계열은 대부분 학과 대신 대학을 우선하고 외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많은 학생이 어문 계열을 선택하지만 나는 3년 내내 가고 싶은 학과가 있었기 때문에 독어독문학과와 희망 진로 사이에서 고민이 깊었다. 관심 분야였던 인권도, 독문학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독문학에서 접했던 사회 문제를 유럽 문화 동아리나 문학 동아리에서 여러 방면으로 탐구하며 희망 진로와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1학년 때는 꿈도 관심 분야도 희미해 일단 넓은 범주에서 교내 활동에 참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사회와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주인공과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주인공을 비교하면서 인간 소외 문제를 탐구했다. 또한 노인 고독사, 장애인 이동권 등을 주제로 한국과 독일을 비교했다.

2~3학년에는 노동권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중 롤란트 시멜페니히의 희곡 <황금용>과 우리나라의 노동 문제를 엮어 탐구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독일에 사는 중국인 꼬마가 충치 하나를 치료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내용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20년 전 독일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진행 중인 문제였다. 일부 한국인 고용주는 외국인 노동자가 자유롭게 사업장을 선택하지 못하게 막고, 만약 사업장을 옮기면 이들은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나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 허가제의 부당함을 알리고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모의 국회에서 활동했다.

또한 이주 노동자의 권리 협약을 기반으로 인권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희곡 <길쌈쟁이들>과 케테 콜피츠의 판화 <직조공의 봉기> 등 노동을 소재로 한 여러 작품을 전시했다. 세특에서도 각 과목과 관심 분야를 연결했다. 영어 뉴스나 책을 보고 독일의 산업 민주화를 일군 노사 공동 결정 제도를 탐구하여 근로 환경 및 노사 갈등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인권과 독문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만 이러한 고민이 오히려 나만의 독특한 무기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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