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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1113호

내일신문·내일교육 공동 기획 | 교육학 이론으로 다시 보는 교육 이슈 ④

그 학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글 조현명
이화여자대학교 미래교육연구소
연구교수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뉴욕주립대 버팔로캠퍼스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졸업 후에는 뉴욕주립대 버팔로캠퍼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디지털 전환 및 국제화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교육계의 사회적, 문화적, 정책적 변화 등이다.



인간은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 현장을 바라볼 때, 우리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학교 수업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해 수업을 거부하고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이다. 이때 무언가를 거부하고 포기한다는 것 또한 이들 나름의 선택이기에, 그 선택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은 곧 기존 정체성의 상실 혹은 새로운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게으름’이나 ‘의지박약’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미숙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을 둘러싼 욕구와 이름들이 어떻게 형성 또는 상실되어가는지 살펴봄으로써 한 사람의 인격적 주체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학교와 학생의 관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

이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논의를 위해, 도구연관과 의미연관에 대한 하이데거의 구분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하이데거는 도구연관과 의미연관의 구분을 각각 ‘위하여’와 ‘ 때문에’로 표현한다. 이에 따르면 도구연관이란 실용적 맥락에 따라 특정 목적을 ‘위하여’ 맺는 관계를 가리키는 반면, 의미연관은 언제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는 현존재의 존재에 상관’되는 관계를 일컫는다. 하이데거가 볼 때, 인간은 기본적으로 세계를 ‘배려(Besorge)’하는 존재, 즉 도구연관의 맥락을 통해 세계와 명시적/비명시적으로 관계 맺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모든 ‘위하여’가 궁극적으로 ‘ 때문에’로 소급된다는 점에서 의미연관으로의 가능성을 항상 내재하고 있다.

학생과 학교가 도구연관의 관계로 맺어질 때, 학교는 학생이 이루고자 하는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때 수단으로서의 가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그 ‘목적’을 지향하는 학생이다. 따라서 학생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경우 학교는 학생에게 유의미한 대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학교의 가치에 관한 판단과 관련해 두 가지 가능성이 발생한다. 첫 번째 가능성은 ‘목적’에 경도된 학생이 학교의 도구적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 경우 학생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는 학교의 가치들을 스스로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두 번째 가능성은 학생 스스로 ‘목적’을 갖지 않는 경우다. 목적을 상실한 이에게 수단이 의미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학생 스스로 목적을 상실한 경우 학교의 가치 또한 성립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의 상실은, 현재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2022년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전국의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각각 20%, 40%, 30%가량의 학생들이 희망 직업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목적을 상실했거나 혹은 부정하는 이들에게 학교는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거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학교의 가치와 교육의 의미

도구연관과 의미연관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교육의 의미는 생존과 실존의 두 맥락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 우선 생존의 맥락에서 바라볼 때, 교육은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 경우 교육은 실용적인 목적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닐 수 있으나, 그 자체로서 나름의 가치지향적 활동이라기보다는 정치·사회·경제 등 외부의 맥락에 종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반면 실존의 맥락에서 바라볼 때, 교육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이해되며,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만으로는 다루어질 수 없는 인간다움의 문제를 고민한다. 명백하게도, 이것은 단순히 실존태가 생존태에 우선한다거나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도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도구연관의 접근을 통해 학교의 가치를 고민하는 일은 여전히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논리를 앞세워 실존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엄을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으로는 행복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단순히 특정 학생 집단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학교와 학생의 관계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와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육의 생존태와 실존태를 함께 고민하는 일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학교가 학생들과 함께 생성해낼 수 있는 다양한 가치들 가운데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1110호부터 학교 안팎에서 고민이 큰 중요한 교육 이슈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교육학자 12명의 릴레이 칼럼이 이어집니다. 이화여대 정제영 교수를 시작으로 강지영(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강태훈(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김동호(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김준엽(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박소영(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 박주형(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 이상무(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한종(춘천교대 교육학과 교수) 임효진(서울교대 초등교육과 교수) 조현명(이화여대 연구교수) 황지원(서울시립대 교육대학원 교수) 등 1990년대에 교육학과에 재학하면서 함께 공부한 3세대 대표 교육학자들의 깊이 있는 분석과 해법을 만나보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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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현명 (이화여자대학교 미래교육연구소 연구교수)
  • COLUMN (2023년 11월 01일 1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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