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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7호

교과서 파먹기 32 | <정치와 법> 외교

말로 하자, 말로~ 국익 위한 총성 없는 전쟁 ‘외교’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외교 행보를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우리에게 외교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생명줄’과 같다. 대한민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더구나 자원도 열악한 작은 나라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은 빛나는 외교술로 이 땅과 백성을 지켜왔다. 미국과의 통상 외교가 원활하게 이뤄지면 우리가 생산한 자동차와 반도체를 미국에 많이 팔 수 있고, 미국의 값싼 축산물이 수입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또 정부가 어떤 신념을 갖고 외교를 전개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을 비롯해 일본과 얽힌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도 마련할 수 있다. 고등학교 <정치와 법> 교과서에서 다룬 ‘외교’의 정의를 살펴보며 이를 실천한 외교의 달인들을 만나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외교 이야기

아주 먼 옛날부터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자기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대화하고 교섭하고 협상해왔어. 이를 ‘밖과 사귄다’라는 뜻으로 ‘외교(外交)’라고 하지. 뉴스나 신문에만 등장하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실상 외교는 우리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단다. 어느 정도냐면 말야,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암이나 불치병이 아니라 각국 정부의 외교 정책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거든. 이해를 돕기 위해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외교의 달인’이란 평가를 받는 광해군의 ‘중립 외교’ 이야기를 들려줄게.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했어. 전쟁 직후라 우리도 남 걱정할 때가 아닐 정도로 어지러웠는데 당시 동북아 정세 또한 만만치 않았지. 예전부터 조선과 가깝게 지내던 명나라가 오늘내일 하고 있는 반면 새로 생긴 후금(후에 청나라가 돼.)은 그 세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었거든. 결국 야망의 사나이, 후금의 우두머리 누르하치는 명에 선전포고를 하고야 말았어. 아무리 이빨이 빠졌어도 호랑이는 호랑이인 법! 명나라는 참을 수 없었지. 그래도 혼자 출동하기엔 영 찜찜했는지 “이봐, 조선~ 너희 임진왜란 때 우리가 지원군 보내준 거 잊지 않았지? 은혜에 보답할 때가 왔어. 당장 병력을 보내렴”이라고 하네?

광해군은 고민에 빠졌어. 명나라를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후금의 적이 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결국 광해군은 명나라로 원군을 보내기로 결정했어. 그러곤 군대의 총책임자인 강홍립 장군에게 ‘강한 쪽을 따르’라고 몰래 지시했지. 1619년 3월, 명과 후금이 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 싸운 ‘살이호 전투’가 벌어졌는데 명의 패색이 짙자 강 장군은 싸우는 척하다가 후금에 투항했어. 결국 광해군의 외교술 덕분에 조선은 두 나라 어느 쪽에서도 미움을 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군의 소중한 목숨도 지켜낼 수 있었지.

이후에도 광해군은 명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조선을 정비하는 데 힘을 기울였어. 이렇듯 외교란 안으로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밖으로는 세계 여러 나라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아 발전해갈 수 있도록 여러 조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단다.





우리나라 외교의 변화

고등학교 <정치와 법> 교과서 6단원 ‘국제관계와 한반도’에 자세히 나와 있듯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변화에 맞춰 외교 전략을 달리해왔어. 광복 후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 전후에는 심화된 냉전 체제로 인해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 전략을 펼치느라 미국 등 자유 진영과의 외교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지. 1960년대에는 세력이 커진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과의 상호협력을 위해 외교 대상 국가를 확대하는 전략을 활용했단다. 이후 냉전 체제가 완화되던 1970년대에는 국제질서의 흐름에 부응해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에 문호를 개방했고(이를 6.23 선언이라고 해.), 1980년대 후반에는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소련과 중국, 동유럽 국가 등 사회주의 체제 나라들과의 외교를 시도했어.

그러다 탈냉전 시대가 도래한 1990년대 이후에는 남북 긴장 완화를 비롯한 안보 외교를 유지하면서도 실리를 중시하는 외교를 추진했단다. 중국과의 수교,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등이 이때 이뤄졌지.





절망을 기회로 바꾼 협상의 달인, 서희

때는 바야흐로 993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꿀꺽’하겠다며 쳐들어왔어. 이유인즉 고려가 자신들의 땅을 자꾸 빼앗을 뿐만 아니라 (본인들과 껄끄러운 관계인) 송나라와 교류하고 있어 심기가 몹시 불편하단 거였어. 문제는 이미 중원을 위협할 정도로 커버린 요나라는 고려가 만만히 볼 수 없는 강적이었다는 거야.

고려왕 성종과 신하들은 무조건 항복만이 살길이라며 대동단결했어. 한데 여기서 또 의견이 갈렸지. 한 편에선 군사를 이끌고 적진에 가서 투항하자고 했고 다른 쪽에선 평양 이북의 땅을 주는 조건으로 합의를 보자고 했거든. 이때 협상의 대가 서희가 역사의 무대에 올랐어.

서희는 일찌감치 적의 의중을 파악했지. ‘저렇게나 군사가 많은데 서둘러 공격을 감행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그리고 깨달았지. 거란은 고려의 영토를 탐내는 게 아니라 고려가 송나라와 손잡고 자신들을 위협할까 봐 우려하고 있을 뿐임을. 서희는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짓겠다며 홀로 적진을 향해 떠났어. 그리고 양국이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거란에 이롭다는 점과 압록강 안팎의 땅은 원래 고구려의 영역이었고 이는 마땅히 고구려를 승계한 고려의 것임을 논리정연하게 주장했지. 서희의 엄숙하고 조리 있는 언변에 밀린 소손녕은 결국 빈손으로 군대를 물렸고 고려에 강동6주를 넘겨주기까지 했단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상대국의 생각을 엿보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협상을 이끌어내는 거야. 그런 면에서 서희는 모범답안의 정석이라 할 만큼 뛰어난 외교가였단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외교의 자세, 세종대왕

19세기에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은 2천 년 가까이 전 세계를 호령하던 울트라파워 강국이었어. 그 막강한 힘 앞에서 우리를 비롯한 이웃 나라들은 중국을 ‘형님’으로 모시는 사대 외교를 할 수밖에 없었지.

그러나 세종은 그런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서도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짚어냈어. 당시 조선은 해마다 10월이 되면 중국(명나라) 황제로부터 달력을 받아오는 게 관례였어. 천문을 관측해 일식과 월식은 물론 절기와 기상 변동, 시각을 예측하는 것도 황제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됐거든. 문제는 중국과 위도와 경도가 다른 조선에서 이 예측은 벗어나기 일쑤였다는 거야. 세종은 사대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걸 알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기술자들과 함께 혼천의와 자격루, 앙부일구 등을 제작해 조선만의 독자적인 역법을 갖게 했지.

훈민정음 창제는 어떻고. 어찌 ‘위대한 한자’ 대신 ‘천한 글자’를 쓸 수 있느냐는 대신들에게 백성들이 일상에서 억울함이나 불편함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말로 된 쉬운 문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

이뿐만이 아냐. 중국과 다른, 조선 땅에 적합한 새로운 농사법, 조선 사람에게 맞는 의학 시스템, 조선 고유의 음악은 물론 새롭고 강력한 무기까지 개발해 나라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웠단다. 중국이 못마땅해해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어. 세종은 조선의 백성을 위해 자신이 감행한 일들이 중국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며, 중국 문화 가운데서도 좋은 것은 따르되 우리 것을 지키고 가꿔나가야 함을 강조했어. 이렇듯 세종에겐 백성이 늘 먼저였어. 그랬던 군주였기에 대국 앞에서 ‘쫄지 않고’ 당당하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었지.






국제기구 대표, UN

국제기구란 국제적인 목적이나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 단위를 넘어선 개인이나 정부의 모임을 가리켜. 가장 대표적인 국제기구로는 UN(국제연합)이 있단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자 이에 충격을 받은 다수 국가는 다시는 이런 참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인식하에 국제평화를 유지하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기구를 세우는 데 뜻을 모았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UN이란 말씀~ 뉴욕에 본부를 둔 UN은 193개 회원국을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기구야.

UN이 하는 일은 무척 다양해. 세계평화와 안전 유지가 가장 큰 목표인 만큼 나라 간 혹은 지역 간에 분쟁이 벌어지면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한단다. 또 각 나라의 군사 유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활동하기도 하고, 전 인류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지금은 전 세계가 하나의 마을, 즉 지구촌이 된 시대 아니니~ 그래서 각국 문제에 UN이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없을 정도라지 뭐야.

우리나라는 1991년에 북한과 함께 UN에 가입했고 1996년과 2013년엔 안전보장이사회(줄여서 ‘안보리’라고도 해.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국의 상임이사국과 10개국의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돼.)의 비상임이사국이기도 했어. 비상임이사국은 2년 임기로 매년 5개국씩 교체되는데 우리나라가 이를 맡았었다는 건 그만큼 국력이 막강해졌다는 의미란다.


‘글로벌 시민’이 알아야 할 국제기구

UN 말고도 세상에는 지구촌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일을 하는 국제기구들이 있어. 안타까운 사실은 대한민국이 UN 분담금(나누어서 부담하는 돈) 서열로는 무려 11위인 데 반해 한국인 직원 수는 300명 안팎이란 거야. (분담금 대비 2.2%래.)

우리나라에 뛰어난 인재가 없어서일까? 당연히 아니지. 전문가들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개개인의 실력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기구에 도전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어.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를 변화시키는 국제 활동가를 목표로 전진해보는 게 어때? 그러려면 먼저 대표적인 국제기구에는 어떤 친구(?)들이 있나 알아야겠지!




지금껏 우리가 누려온 평화는 어쩌면 각국이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UN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와 국제법을 만들어 협력을 추구한 결과물일지도 몰라.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관계에 금이 가는 모양새야. 우리나라는 자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세계질서 구축을 위해 좋든 싫든 미국과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 일본 등 쉽지 않은 이웃 나라 사이에서 쉼 없이 외교전을 펼쳐야만 해. ‘외교 참사’라는 말이 더 이상 나와선 안 되는 이유야.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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