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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호

교과서 파먹기 4 | <통합사회>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_ 두통 유발 시험 지문 최강자,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파헤치기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행복추구권’이 있다. 그러나 ‘행복은 이것!’이라고 명쾌하게 정의 내리긴 어렵다.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아무도 행복이 무엇인지 자신 있게 이야기하진 못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400년 전, 행복을 조목조목 분석해 답을 낸 철학자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며, 행복을 가능케 하는 열쇠는 ‘덕(arete)’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방대한 이론 ‘덕’분에 국어, 사회, 윤리 교과의 시험 지문은 늘 풍성하며 이를 읽어내고 문제를 푸는 학생들의 행복은 감소한다. 알면 두렵지 않다. 지금부터 교과서 속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만나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니코마코스 윤리학> <철학콘서트>










인류 역사상 최대 난제(難題), 행복

너, 행복하니? 중간고사가 끝나서 행복하긴 한데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로 기약된 ‘시한부 행복’이라고? 저런… 행운을 빈다! 오, 여기서 우린 아주 중요한 두 개념을 만났어. ‘행복’과 ‘행운’.

실상 많은 이들이 행복과 행운을 혼동하곤 해. 일반적으로 행운은 예측하거나 의도치 않았는데 우연히 찾아온 좋은 운수를 뜻해. 하지만 행복은 스스로 노력해 성취한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을 뜻하지. (노력해서 50점 받는 거보다 찍어서 맞은 100점이 더 행복할거 같다고? 반박하고 싶지만… 미투.) 또 행복한 삶을 풍요로운 삶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 그러나 경제적인 여유가 행복의 일정 조건은 될 수 있지만 행복 그 자체는 아니야. 행복은 물질적인 조건이 아닌 마음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뜻하기 때문이지.

고대로부터 인간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존재’였어. 철학자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지. 그들은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지, 행복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깊이 사색했고 끊임없이 공부했어.

그중 최고봉이 바로 ‘거의 모든 학문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야. 우리의 머릿속을 카오스 상태로 만드는 논리학·형이상학·인식론·윤리학·정치학·경제학·생물학·천문학 등의 토대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웠다고 보면 돼. (어떤 분야의 창시자, 혹은 토대를 닦은 이가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이 주어질 때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면 거의 정답이야. 너만을 위한 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존재론

고등학교 교과서 <통합사회> 2단원 ‘삶의 목적으로서의 행복’을 펴보자. 원피스에 숄을 곱게 두른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태어난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 대목이 보일 거야. 이를 가리켜 우리는 ‘목적론적 존재론’이라 하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눈은 사물을 보기 위해, 돼지는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해는 따스한 햇볕을 주기위해, 의자는 앉기 위해, 조약돌, 모래알, 심지어 벼룩까지도 존재의 의미와 나름의 가치, 즉 목적이 있다고 여겼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도 목적이 있다고 말했어. 밥을 먹는 건 배를 채우기 위해서인 것처럼 말야. 그런데 어떤 행위를 하던 그 목적의 끝은 ‘행복’으로 귀결된다는 거야.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것도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거지. 이해가 팍! 가고 있지? 잘 따라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답을 ‘덕’에서 찾았어. 여기서 주의할 건 그가 말한 덕(arete)과 동양사상의 덕(德)을 혼동해선 안 된다는 거야. 동양에서의 덕은 도덕적으로 훌륭함을 의미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덕은 뛰어남, 탁월성(excellent)을 뜻해. 이제 기본기를 익혔으니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보자. 팔로 미!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

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피기 전에 먼저 플라톤의 가장 뛰어난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며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불린 아리스토텔레스를 간단히(?) 소개할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아테네 출신이 아닌 북쪽 변방에 있던 마케도니아 출신이었어.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인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부지시다.)의 주치의였지. 17세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공부했고 특유의 영특함과 예리함을 뿜뿜 뽐내며 플라톤의 수제자로 등극했어. 플라톤을 존경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사상을 무조건 따르진 않았어. ‘나는 나의 스승을 사랑한다. 그러나 진리를 더욱 사랑한다’며 플라톤과 논쟁을 벌이기 일쑤였지.

플라톤이 세상을 떠나자 아카데미아를 물려받을 줄 알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뜻이 좌절되고 말아. 큰 실망을 안고 아테네를 떠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상과 학술을 널리 퍼뜨렸지. 그러다가 마케도니아의 왕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됐어. 훗날에는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이라는 학당을 세웠지. (학원 이름에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이 왜 그리 많이 들어가는지 알겠지?)

아테네 출신 플라톤은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를 나누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완벽한 세계, ‘이데아’를 꿈꾼 이상주의자이자 ‘이원론자’였어. (선과 악, 흑과 백, 영혼과 육체 등 두 가지 대립된 원리로 사물을 설명하려는 걸 뜻해. 천국과 지옥도 여기서 왔단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주장했지. 반면 변방 출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중시한 현실주의자, 즉 ‘일원론자’였어. 그는 스승이 하늘 저 높은 곳으로 끌고 올라간 철학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렸지. ‘이상을 꿈꾸되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한다’면서 말야.


행복의 열쇠는 덕, 덕은 ‘중용’을 지키는 것!

앞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은 탁월성을 의미한다고 했지? 이는 바꿔 말해 모든 것이 주어진 제 기능을 잘 발휘할 때 덕이 제대로 발현되는 거라 정의할 수 있어. 연필의 덕은 뭘까? 그래, 글씨가 잘 써지는 거겠지. 가위의 덕은 잘 자르는 데 있고 젖소의 덕은 양질의 우유를 제공하는 데 있어. 의자의 덕은 편안하게 앉는 데 있고 눈의 덕은 잘 보이는 데 있겠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을 잘 발휘하면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즉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이 이성적인 사고를 극대화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최고의 덕이라고 주장한 거야. 다시 말해 행복해지려면 인간다움을 추구해야 하고 이는 덕에 바탕을 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덕이란 ‘중용’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어. 행복하려면 중용의 덕을 지녀야 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는 거지. 한 가지 주의할 건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칭하는 중용은 중간이라는 의미가 아냐.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되 욕구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이성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조화롭게 발휘하는 것을 가리키지.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치우치지 않을 용기

길을 걷는데 무서운 친구들이 무리지어 다가와 돈을 뺏으려 한다면 어떻게 할까? 네가 만약 격투기 선수급 실력을 자랑하는 강펀치 보유자가 아니라면 재빨리 도망치거나 돈을 주고 달랜 후 나중에 신고하는 방식을 택하는 게 바로 중용이야.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겠다며 무리와 맞서다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건 무모한 행위지.

그렇다고 상대가 요구하기도 전에 비위를 맞추려 알아서 가진 걸 다 내놓는 행위는 비겁하다고 할 수 있어. 비겁함과 무모함의 사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용기를 우리는 중용의 덕이라 불러.

하지만 양 끝 가운데 한쪽이 중용과 비슷해 보일 때가 있어. 예를 들어 낭비가 너그러움이나 관대함으로 착각될 때도 있고 성급함이 추진력으로 오해를 받기도 해. 중용을 ‘제대로’ 실천하기가 어려운 이유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 용기, 절제 등은 모두 중용에 속한다고 말했어. 그리고 마치 우리가 밥을 먹은 뒤 자연스럽게 양치를 하듯 중용을 습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지. 갈등과 고민 없이 저절로 중용의 덕이 발현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고 말야. 중용은 플라톤이 말한 현실 세계 너머의 이데아처럼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데 주안점이 있어.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인 행복은 쾌락과 도덕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중용을 실천하면 얻을 수 있다고 본 거지. 인간은 능동적인 존재이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은 늘 행복이 돼야 한다고도 전했고.

이런 주장을 펼쳤다가 아리스토텔레스도 소크라테스처럼 신을 모독했다는 죄로 죽을 뻔했다는 사실, 알고 있니? 당시 사람들은 그를 ‘신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주의자’로 간주해 죄를 물으려 했어.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우신 분’답게 재판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 아니 망명했지. 그러고는 “아테네 사람들이 ‘가장 현명한 자를 사형시켰다’는 죄를 두 번 짓게 할 순 없다!”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지. (이 할아버지 완전 내 스타일이야~)


서양 최초의 윤리학 서적 <니코마코스 윤리학>

다양한 방면을 깊이 있게 연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평생 동안 400여 권의 책을 집필했어. 그중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지만 <형이상학> <논리학> <정치학> <물리학> <기상학> 등은 남아 지금도 여러 언어로 번역돼 꾸준히 읽히고 있지.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을 모든 과학의 기초라 여기고 논리적 유추의 토대가 된 ‘삼단논법’을 제시했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요거 말야.)

이에 더해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철학과 과학 분야의 다수 전문 용어를 만든 장본인도 아리스토텔레스야. 예를 들어 격언·범주·동기·형식·논리·원리 등이 모두 그가 만든 단어란다. 교육 분야에도 관심이 지대해 아이마다 각 연령대에 맞는 내용을 택해 적절한 방식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또한 지식과 도덕, 체력 중에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게 교육해선 안 된다고도 강조했지.

지금까지 길게 설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집약한 책이 바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야. 니코마코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아들의 이름인데 아리스토텔레스 사후에 니코마코스가 직접 책을 편집했다고 해. 아들에게 들려주는 강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저서가 특별한 이유는 모든 행위의 목적은 행복의 추구라는 논점에 따라 행복, 중용, 덕, 정치적 사려, 쾌락과 우애 등을 순차적으로 설명하면서 당시의 윤리가 어떠했는지, 구체적 실천 방법은 무엇인지 보여주기 때문이야.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윤리학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하지. (어렵지 않아서 진심 읽을 만해.) 행복한 삶은 탁월성에 따른 삶이며 이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추구할 때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 진심 멋있지 않니? 다음번에도 멋진 교과서 속 철학자를 모셔볼 테니 기대해!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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