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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7호

교과서로 세상 읽기 33 | 백신

독감 예방접종 포비아? 과학의 축복과 공포 사이에 선 ‘백신’

코로나19의 기세가 여전히 꺾이지 않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했던 독감 백신이 또 다른 문제로 떠올랐다. 상온 유통과 침전물에 이어 최근 백신 접종 직후 사망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기 때문.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과 겨울철 독감까지 겹치는 최악의 상황, 일명 트윈데믹(Twin-demic)의 사전 차단을 위해 지난 9월 25일 국가 예방접종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 후 사망’이라는 언론 보도는 독감 예방접종에 대한 공포심을 키웠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하려면 접종률이 높아야 한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백신이란 무엇이고 인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TV 뉴스와 신문기사로 본 세상





교과서로 뉴스 이해하기


‘백신’의 탄생, ‘천연두’를 박멸하다

천연두라는 병, 들어봤어? 연두색 사이다병 말하는 거냐고? 와우! 그래, 모를 수도 있어. 1980년 세계보건기구는 지구상에 더 이상 천연두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했고 그 뒤에 네가 태어났으니 말야.

‘두창’ ‘마마’라고도 불린 천연두는 인류가 백신을 이용해 퇴치한 최초의 바이러스야. 적은 양으로도 공기를 통해 쉽게 전염되고 환자 10명 중 3명이 목숨을 잃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였지. 18세기 초 유럽에서만 매년 40만 명이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어. 운 좋게 병이 나아도 온몸에 ‘마마 자국’이라 불린 흉터가 남았고. 기원전 12세기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됐을 정도니 수 세기에 걸쳐 인류를 괴롭혀온 감염병인 셈이지.

과거 인류는 천연두와 젖소가 앓는 ‘우두’라는 병이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를 천연두와 연관 짓지 못했지. 1796년,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젖소에서 우유를 짜던 사람들이 종종 우두에 걸린다는 것과 병에 걸려도 쉽게 낫는 다는 것, 그 뒤 그들이 천연두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지.

‘유레카!’ 당장 우두의 수포를 채취한 제너는 지금 같으면 바로 철창행일 사건을 저지르고 말아. 8세 소년의 몸에 그 수포를 접종했거든. 그러곤 6주 뒤 소년의 몸에 다시 천연두 수포를 넣었어. 결과는? 제너가 ‘면역학의 아버지’이자 역사를 바꾼 위대한 영국인에 등극했으니 뭐. 게다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과서 <생명과학Ⅱ> 1단원의 포문을 ‘생명과학의 역사’로 열게 하는 공도 세웠고 말야.
영광과 그늘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하지. ‘제임스 핍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바이러스 실험을 이겨낸 8세 소년의 이름이야.





다시 읽는 ‘백신


환영받지 못한 백신

제너는 몇 차례의 임상실험을 추가로 시행한 뒤 우두 수포 용액을 정제해 우두법을 개발하고 ‘백신(vaccine)’이라 이름 붙였지. 백신은 한자(漢字) 아니냐고? 오늘 참 여러 번 놀래키는군. 백신은 라틴어 ‘vacca(암소)’에서 기원한 용어야. ‘암소 용액’이란 뜻이지.

제너의 실험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사람들은 접종을 거부했어. 인간의 피 속에 짐승의 균을 넣는다니, 구역질날 만큼 불쾌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 심지어 ‘한 아이가 우두를 맞고서 황소처럼 네 발로 달려갔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고.

그럼에도 제너는 굴하지 않았어. 23명에게 같은 실험을 해서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고 이를 영국왕립학회에 보고했지. 자신의 아들에게도 보란듯이 접종을 시행했고 말야.

제너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접종을 받아야만 천연두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믿었어. 일부에서는 제너에게 백신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고 이익을 취하길 권했지만 그는 모든 제안을 거부한 채 동료 의사들에게 백신 샘플을 보내 접종을 독려했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무료로 접종해주었지.

너 지금 속으로 바보라고 했지? 빌 게이츠 뺨칠 부자가 될 기회를 왜 마다하냐고. 미안하지만 말야, 네 예상과는 달리 제너는 돈 걱정은 ‘1도’ 할 필요 없는 어마무시한 갑부로 살다갔어. 각국 지식인들이 ‘위대한 의학자’라고 존경을 표하며 거액의 후원금을 팍팍 보냈거든. 잠시 반성의 묵념.


‘백신 시대’를 연 파스퇴르

제너의 백신은 운 좋게 성공을 거뒀지만 인류는 여전히 결핵, 장티푸스, 황열, 홍역, 풍진 등 각종 감염병에 시달렸어. 제너 덕분에 비록 바이러스를 채취해 접종하는 예방법에 눈을 떴다 하더라도 우두법처럼 운 좋게 성공할지는 미지수였단 말이지.

이 모든 걱정과 우려를 한 방에 해결한 이가 있으니, 그 이름은 파스퇴르! 뭐? 우유 브랜드명 아니냐고?

파스퇴르는 의사가 아닌 화학자였어. 60℃에서 미생물을 사멸시키는 가열살균법을 발명해 인류가 안전하게 우유를 섭취할 수 있도록 했지. 또한 백신의 안전성을 확립해 예방접종 시대를 활짝 열었어. 대부분의 감염병은 병원균 자체를 백신으로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앞서 말했지? 그러나 이 방법은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도 했고.

예를 들어 광견병을 예방하기 위해 병에 걸린 개의 뇌신경을 채취해 건강한 개한테 주입하면 둘 중 하나야. 죽거나 면역력이 생기거나. 물론 결과는 모두 운에 맡겨야 해. 파스퇴르는 건조법을 이용해 광견병에 걸린 개의 뇌신경을 적당히 살균해 균이 든 뇌수를 약하게 했어.

충분히 약해진 바이러스를 채취해 접종하면 건강을 지키며 질병을 예방하는 면역 효과를 보인다는 걸 증명해냈지. 현대 백신에 통용되는 ‘약독화(弱毒化) 백신’이 탄생한 거야.

파스퇴르는 ‘건강한 개체에게 주입하는 백신은 안전하게 변형돼야 한다’는 개념을 정립했어. 덕분에 현 인류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지. 코로나19가 종식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역사적으로 감염병이 창궐했을 때의 전 세계 사망자 통계를 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걸.


건강 과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루이 파스퇴르.


한걸음 더 생각하기


‘안아키’ 사태와 2020 독감 백신 포비아

우리 몸에서 기억력이 가장 좋은 존재는? 뇌!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심이니? 정답은 ‘혈액’이야. 혈액 속 B림프구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 한 번 몸속에 침입한 특정 항원과 그에 대항해 만들어진 항체를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번 같은 병원체가 들어오면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응해 물리치지. 아프지도 않은데 맞아야 하는 예방백신은 혈액의 기억력에 기댄 행위야. 병을 앓기 전 미리 병원균을 주입해 면역력을 키워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

2017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안아키’ 사태는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어.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카페에서 다수 회원들이 ‘병에 걸리면 면역력은 저절로 생긴다’며 극단적 자연주의 육아를 신봉해 어린 자녀의 필수 예방접종을 거부한 사건이지.

예방접종은 건강한 사람들을 병으로부터 보호, 예방하는 대규모 보건 정책이야. 나와 내 주변에 면역이 된 사람이 충분히 많아야 세균과 바이러스가 다음 감염자인 ‘숙주’를 찾지 못하게 돼. 숙주에서 숙주로의 이동이 어려워져 병원체의 전파가 차단되는 상태가 돼야 ‘집단 면역’이 이뤄져. 안아키 사태는 우리에게 아이의 건강권을 부모의 신념에 위탁해도 되는가, 백신에 대한 불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줬지.

그런데 최근, 백신 불신과 관련한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어. 10월 중순부터 언론에서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 보도를 연이어 터트린 거야. 매일매일 사망자 수 및 백신 보관 실태와 오염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급기야 10대 청소년까지 접종 후 사망했다고 보도해 많은 사람들이 독감 백신을 맞아도 되는지 불안에 떨었어.

그런데 전문가들은 다른 이야기를 해.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산발적으로 발생한다는 점(만일 백신의 제조 과정이나 보관상에 문제가 있었다면 환자 사망 발생은 한 지역이나 집단에 집중적으로 일어났어야 한다는 거지). 사망자들의 연령대가 70~80대의 고령이고 평소 고혈압, 당뇨, 심장 질환 등의 기저 질환이 있었다는 점. 또한 해당 연령대는 독감 백신 지원 사업 전에도 여타 질환 등으로 매일 평균 수백 명씩 사망하고 있다는 통계 수치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백신의 안전성을 주장하고 있지.


백신 불신, 해결책은 ‘신뢰’

백신은 지구상에서 14개의 감염병을 퇴치하거나 줄였어. 인류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 최고의 발명으로 꼽히지.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존의 혈액에 저장된 기억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숙주를 감염시키고 살아남아.

매년 독감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이유지. 백신의 치명적인 단점은 예방주사를 맞는 주체가 그 효과를 직접 느끼지 못한다는 거야. 그 때문일까? 백신 접종 거부 운동은 역사가 깊고 선진국과 개발국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중이야. 지난 9일,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는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효과가 기대 이상이라는 발표를 하며 전 세계인에게 희소식을 전했어. 그러~나 세계적인 감염병을 예방하려면 백신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모두가 맞아야 한다!

제너가 백신 접종법을 개발한 뒤 전 세계가 예방접종을 하기까지 200년이 걸렸어. 공포와 불안감이 믿음을 압도했기 때문이지. 코로나19 백신은 접종이 대규모로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독감 백신보다 접종 후 사망 사례가 더 많이 발표될 거야.

정부와 국민, 의료진이 ‘감염병 감소’를 목표로 서로 간의 신뢰를 쌓지 않는다면 마스크와의 작별을 기약하기는 어려울 거야.제2의 ‘안아키’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고. 정부와 의료진은 충분히 검증된 안전한 백신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국민에게는 무분별한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믿고 따르는 지혜가 필요해.



뉴스는 넘치지만 의미를 제대로 알기는 더 어려워졌죠. 청소년의 실생활과 밀접하거나 알아두면 언제고 도움이 될 뉴스들을 ‘콕’ 집어서, 교과서 개념과 연결해 쉽게 읽어주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중·고등학생의 눈높이로 풀어보고 싶은 이슈가 있다면 내일교육(lena@naeil.com)으로 언제든 제보해주세요.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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