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뒤로

중등

1056호

교과서 파먹기 27 | <경제> 스태그플레이션

경기 불황인데 물가는 고공행진? 경제 이론 비웃는 ‘스태그플레이션’

최근 세계 경제의 핫 이슈는 단연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과 물가 상승을 가리키는 ‘인플레이션’을 합친 용어다. 보통 호황일 때는 인플레이션이, 불황일 때는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게 자본주의의 ‘이론상 기본 흐름’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은 이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경제 괴물’로 등극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야기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러-우 전쟁, 중국 봉쇄 정책 등의 악재가 세계 경제를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뜨릴 거라 경고한다. 고등학교 <경제>에 언급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갑툭튀’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나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자본주의의 미덕(美德) ‘소비’

1970년에 등장해 장장 52년째 ‘국민 간식’으로 군림하고 있는 새우깡. 출시 당시 50원이었던 이 아이는 해가 갈수록 몸값을 불리더니 지금은 30배가 됐어. ‘서민음식의 대표주자’ 짜장면은 어떻고. 1970년에는 100원, 지금은 6천 원! 무려 60배!

내 용돈은 늘 제자리인데 왜 물가는 한계 없이 오르기만 하는 걸까? 수업 시간에 수요가 많고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지만 그 반대일 땐 가격이 내려간다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배웠어. 그런데 왜 가격이 내려가는 걸 이번 생에 본 적이 없느냐며 화내는 너, 이해해. 하지만 앞으로도 볼 일 없으니 기대하진 마. 왜냐면 말야,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돈의 양’을 늘려야 유지되거든. 돈의 양이 많아지니 당연히 돈의 가치는 하락하고 필연적으로 물가는 오르게 되는 거지. 게다가 양만 늘린다고 장땡은 아냐. 기업이 돈을 아끼려 직원 고용을 멈춘다면? 모두가 자린고비처럼 땡전 한 푼 안 쓰고 은행에 맡겨만 둔다면? 세상은 ‘그대로 멈춰’가 되겠지. 자본주의의 핵심이 ‘소비’인 이유지. (그럼 지금까지 배운 건 다 뭐여!)

주위를 쓱~ 한 번 둘러봐. 누구나 예외 없이 (부모님 빼고) 우리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잖아. ‘지갑을 열어! 가진 돈을 펑펑 써!’ 하면서 말야. 대놓고 상품을 광고하는 CF에 넘어가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착용한 옷과 신발, 가방에 자꾸 눈길이 가지. SNS에 우후죽순 올라오는 명품 인증숏은 어떻고. 가진 건 1도 없지만 ‘구찌’ 하나쯤은 착용해줘야 남들이 날 무시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하잖아.

그렇다면 소비 장려를 위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대폭 올리거나 물건 값을 확 내리는 묘책도 있지 않느냐고? 수중에 돈이 넘쳐나고 그걸 써야 한다면 어떻게 될지 우리 잠깐 상상을 해보자. 히야~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아마도 우린 평소에 사고 싶었던 물건을 공격적으로 구입하려 들 거야. 인기 품목은 금세 품절될 거고. 상품은 무한정으로 만들 수 없는데 원하는 이들이 많다면 가격은 본래 가치가 어떻든 훨씬 더 부풀려지겠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인플레이션’이라고 해.


인플레이션 톺아보기

고등학교 <경제>에 설명된 바와 같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원인은 크게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과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으로 구분 지을 수 있어. 먼저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은 상품을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그에 맞춰 공급량이 늘어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인플레이션이야. 이는 주로 가계의 소비나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 되거나 정부의 지출이나 수출이 크게 상승하는, 경기가 호황일 때 발생하지.

공급 변화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도 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밀가루를 생각해보자. 둘째가라면 서러운 빵순이·빵돌이들 많지? 한데 밀가루 값이 상승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빵은 물론 피자, 과자, 짜장면 가격은(야속하게도 우리의 용돈은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무조건 오르게 될 거 아니니. 경기 호황도 아니고, 소비가 늘지도 않았는데! 이런 끔찍한 사태를 가리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 현상이 특히 무서운 건 돈이 돌지 않는 경기 위축을 초래해 전 국민의 실질 소득 수준을 악화시키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처럼 경기 침체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대략 난감 사태’를 뭐라고 한다? (드디어 나왔군.) 스태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의 끝은 디플레이션?

물건 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제재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네 의견, 존중해. 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시장의 자율성을 표방하는 자본주의하에서 물가는 절대 정체되거나 내려갈 수 없어. 우리가 너무나 자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이유지. 그럼 교과서에 나온 반대 개념인 ‘디플레이션’은 뭐냐고?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의 거품이 커지고 커지다 ‘뻥!’ 터져서 물가가 계속 떨어지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을 말해.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물가는 내려가고 돈의 구매력은 올라가니 언뜻 생각하기엔 좋을 것 같지만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디플레이션을 인플레이션보다 더 위험한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어. 과거 1930년대 대공황이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촉발됐다며 말야.

돈의 가치가 올라가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물건 값이 더 떨어지길 기대하며 소비를 유예하게 돼. 특히나 자동차와 집 같은 고가품은 구매 후 추가적으로 가격이 더 떨어지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이는 기업도 마찬가지야. 설비 투자나 새로 매입하려 한 공장 부지나 기계도 가격 하락이 우려돼 투자를 미루게 되지.

결국 소비와 투자의 감소는 시장에 전반적인 가격 하락을 가져오고 이는 생산 위축과 고용 감소, 임금 하락으로 이어지게 돼. 실업자가 늘어나니 가계 소득은 줄고, 돈을 쓰지 않으니까 자본이 돌아야 유지 가능한 사회가 ‘얼음!’ 상태가 되는 거지.

스태그플레이션 톺아보기

실상 앞서 살~짝 언급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세상에 출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개념이야. 기존의 경제 이론은 경기가 침체돼 있을 때 물가는 떨어지고, 반대로 물가가 계속해서 오를 땐 경제는 호황 상태에 놓여 실업률이 하락한다는 ‘반비례 관계’를 주장했거든.

그런데 1970년대에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선진국에서 물가가 상승하는데도 실업이 늘어나는 ‘이게 미?’ 하는 현상이 발생한 거야. 경제학자들은 기존의 물가와 실업을 다룬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한 이 경제 괴물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이름 지었지. 당시 오일쇼크로 우리나라 경제도 큰 위기를 맞았어.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경제성장률은 끝을 모르고 추락해갔지. 산업 구조가 경공업에서 에너지 수요가 많은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가해진 충격파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어. ‘석유 한 방울이 피 한 방울’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며 국가적 석유 절약 운동이 전개됐고, 석유 배급제까지 시행됐었다지 뭐야.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1040호 ‘교과서 파먹기_오일쇼크’를 참조하기.)

역사적으로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던 시기는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 때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외에는 없었어. 한데 지금!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며 경고하고 있어. 현 상황이 정말 심각하긴 한 모양이야.







세계 경제에 드리운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지난 6월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초에 발표한 4.1%에서 2.9%로 크게 낮췄어. 그러면서 “많은 나라들이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전망치가 2.1%까지 갈 수도 있음을 언급했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또한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5%에서 3.0%로 조정하더니 회원국들의 올해 평균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애초의 4.4%에서 그 두 배인 8.8%로 올렸지 뭐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냐. 지난 7월 IMF(국제통화기금)는 올해 대한민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5%에서 2.3%로 하향 조정했어. 또 내년 성장도 석 달 전보다 0.8% 낮춰 2.1%로 내다봤지. 윤석열 정부 또한 지난 6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합동브리핑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6%로 하향 조정하고, 소비자물가 전망은 4.7%로 대폭 상향했다”고 발표했어.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곧 6%대 물가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고. 정부에서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것임을 공식화했으니 보통 일이 아닌 상황인 거지.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시화된 이유는 너도 나도 짐작하다시피 코로나 팬데믹이 야기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와 초강도로 밀어붙이는 중국의 봉쇄 정책,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따른 에너지·곡물 시장의 격변과 불안한 국제정세 등을 꼽을 수 있어. 더 무서운 건 이를 단기간에 극복할 뾰족한 대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해답 없는 문제, 스태그플레이션

한편에선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된 것은 아니라며 이제라도 적절하게 양적 긴축(중앙은행이 은행권에서 돈을 회수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행위)을 실시하면 사태를 ‘알흠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기도 해. (이렇게 믿고 싶다, 그치?)

실상 스태그플레이션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동원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라고도 할 수 있어. 지난 3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초기 징후가 감지된다며 “충분한 손실 보상과 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겠다”고 발표했어. 하지만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안 위원장의 바람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지. 세금 감면을 약속한 정부가 어떻게 충분한 손실 보상을 할 것이며 예산 확보도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까지 잡는다는 건 모순이란 거야.

당분간(어쩌면 긴 시간) 우린 고공행진하는 물가와 침체된 경기 속에서 고군분투해야 할 거야.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민간과 시장 주도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겠다는 대응법을 내놨어. 과연 이 새로운 방안이 참신한 해결법이 될 수 있을지, 우리 모두 큰 기대를 품고 한마음으로 응원해보자고!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 (주)내일교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0

댓글쓰기
240318 숭실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