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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4호

교과서 파먹기 26 | <생활과 윤리> 사형제 폐지

범죄인의 생명 박탈하는 ‘사형제’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까?

사형제가 12년 만에 다시 헌법재판소 재판정에 오른다. 1996년과 2010년, 합헌 결정이 나온 뒤 세 번째다. 우리나라는 1997년 말 이후 25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지만, 형법에는 여전히 사형제가 존재한다. 사형제 존폐는 오랜 기간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 제도인 동시에 생명에 관한 철학적·윤리적 질문을 던져왔기 때문이다. 사형제를 폐지하는 나라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아예 폐지하자는 여론도 날로 비등해지고 있지만 극악무도한 범죄엔 사형만이 답이라는 목소리 또한 여전히 크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형벌인 만큼 신중하게 논의돼야 하는 사형제,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에 나온 찬반 양측의 팽팽한 논쟁을 콕콕 집어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형제의 역사

사형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형벌이야. 사형제를 성문화한 최초의 법전은 기원전 2100년경 고대 수메르의 ‘우르남무 법전’이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기원전 1750년에 공포한 법전보다 300년 정도 앞선 것으로 ‘살인죄와 절도죄를 저지른 자는 사형으로 처벌한다’고 명시돼 있지. 뿐만 아냐. 구약성서와 코란, 우리나라 고조선의 8조법까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서 죄를 갚는다’가 형벌의 기본 원칙이었어.

사형제가 실제로 빈번해진 것은 중세 시대, 즉 국가 권력이 확립되면서부터야. 절대왕권의 확립에 사형만큼 위협적인 제도는 없었을 테니까. 특히 ‘마녀사냥’이 성행해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으로 공개 처형됐는데 1500~1550년 사이 영국에서만 무려 7만 명이 사형제로 목숨을 잃었다고 해. 사형제 폐지 논의는 18세기 이후,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계몽사상의 확산으로 불거졌어. 그러다 근대 형법학의 기초를 마련한 이탈리아 법학자 베카리아가 1764년에 자신의 책 <범죄와 형벌>에서 최초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기에 이르렀지.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서 베카리아의 이론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꼬~옥 살펴보기!)

계몽사상이 낳은 관용주의 정신은 이후 19세기의 자유주의 정신과 결합해 인도주의 형사사법으로 발전했고 여러 논의 끝에 국제사회는 1961년,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를 출범시켰어. 그리고 100여 년 뒤인 1977년에는 독일을 포함한 16개국이 스톡홀름 선언에 서명하면서 사형제 폐지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됐지. 1998년 UN 인권이사회는 사형제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유럽연합(EU)은 사형제 폐지를 회원국 가입 선결 조건으로 규정했단다. 유럽의회의 경우 2003년에 전시 상황에서도 45개 회원국이 사형제를 전면 금지하는 의정서를 발효시켰고. (현재까지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포함 총 55개국이래.)




우리나라의 사형제

고조선부터 조선 시대까지 사형제는 멈추지 않고 행해졌어. 그러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잔혹한(참수형이나 능지처참형 같은) 사형은 중지되고 교수형만 남게 됐지. 우리나라는 25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사형제는 여전히 형법 41조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법정 최고형이야. (형 집행 방법으로는 일반형법에선 교수형을, 군형법에선 총살형을 택하고 있어.) 1948년 정부가 수립된 다음해, 살인범에 대한 첫 사형 집행이 이뤄졌고 1997년까지 총 920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

그러다 1996년과 2010년,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재판이 열렸단다.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어.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해. 참고로 1996년엔 7:2, 2010년에는 5:4로 합헌이 우세했지.) 당시 다수의 재판관들은 ‘흉악 범죄 예방 효과’와 ‘응보를 통한 정의 실현’을 이유로 사형제의 존치를 결정했어. 그러면서도 사형제 대상 범위를 축소하거나 일부 조항을 폐지할 필요는 있다고 보충 제안했지.






세 번째 심판대에 오른 사형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0년 두 번째 합헌 결정을 한 지 12년 만에 사형제의 위헌성을 다시 따져보기로 했어.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은 ‘부천 부모 살해 사건’의 주범으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A씨야. 검찰의 사형 구형에 반발해 ‘사형제는 헌법에 위반된다’며 2019년 2월 헌법소원을 냈지.

이번 심리의 주요 쟁점은 사형제가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위반되는지,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지 여부야. 또한 심리 대상은 헌법 제110조 4항으로 ‘비상계엄 때 군사재판은 단심으로 할 수 있으나, 사형을 선고한 경우는 그러하지 않는다’는 내용인데 헌법에서 유일하게 ‘사형’이란 단어를 언급한 조항이야. 이 단어만으로 헌법이 사형제를 인정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논란의 쟁점이고. 왜냐고? 사형제 합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해당 단어를 꼽으며 ‘우리 헌법이 사형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반대쪽에서는 사형이 ‘살짝’ 언급됐다는 이유만으로 합헌성을 주장하는 건 너무 멀리 나간 이야기라고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지.

공공의 이익을 이유로 인간의 천부적 권리인 생명권을 국가가 앗을 수 있는지도 여전한 쟁점이야. 사형으로 얻는 공익과 예방효과가 막연한 만큼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과 불가피한 경우 허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거든.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이례적으로 법경제학 전공 교수를 참고인으로 지정해 사형제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결정의 근거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어.


정권 교체 후 달라진 반응

국가를 상대로 사형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으니 정부의 입장도 들어봐야겠지? 법무부는 2020년 사형집행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제75차 UN 총회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일시유예)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져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제사회 논의에 힘을 보탰어. (전 세계 국가 중 70%가 넘는 141개국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제를 폐지한 상태거든.)

그러나 정권 교제 후 입장이 바뀌었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도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제 존치가 그 나라의 후진성이나 야만성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는 단적인 예다” “다수의 국가들(84개국)이 사형제를 존치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긴 변론요지서를 대리인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어. 그러면서 유럽에서 사형제가 사라진건 사형제 폐지를 가입 조건으로 내건 EU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지. 다시 말해 유럽 국가들이 사형제 폐지를 옹호한 건 EU 가입에 따른 경제 발전 등의 국익을 고려해서지 국민 인식 변화 때문이 아니란 거야.

또한 법무부는 2021년 국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7.3%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며 “국민적 바람,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를 소박한 법 감정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고 주장에 힘을 보탰어. 그리고 사형제의 대체 형벌로 거론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 사형은 야만적 복수가 아닌 정의의 실현이고, 다른 형벌이 사형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는 흉악 범죄의 예방 필요성을 간과한 주장이라며 말야.






사형제는 폐지돼야 한다!

실상 사형제 폐지는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가 말해주듯) 일반인의 법 감정과 잘 맞지 않는 게 사실이야.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 나타날 때마다 불안한 시민들은 스스로를 잠재적 피해자로 상정하고 살인자를 사회에서 영원히 제거하는 형벌에 찬성하곤 하지. 우리보다 먼저 사형제를 폐지한 여러 나라에서도 정부 입장과는 달리 시민들 사이에선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도 이 때문이고.

이를 방증하듯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등은 강력범죄가 증가하자 사형제를 부활시켰고 이란은 지난 한 해 동안만 314명을 교수형에 처해 최다 사형 집행국으로 명성을 떨쳤어. 사우디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잔인한 참수형을 고집하고 있고.

인간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표방한 20세기 문명국가들은 개인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인간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어. 즉 생명은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므로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란 거야. 범죄자도 인간이며 시민이니 사형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살인일 뿐이란 거지. 게다가 한 번 박탈된 생명은 되돌릴 수가 없잖니. 한데 만약 국가의 판단 실수로 생명을 빼앗았다면? 에이~ 그런 일이 설마 일어나겠냐고? 과거 절대왕정 시대는 물론 현 독재국가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걸~ 우리나라 또한 과거 유신 시대부터 군사 독재 시절까지 사형제는 권력자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되곤 했어. 지금껏 행해진 사형 집행 중 27%를 차지할 만큼. 사형제가 존속하는 한, 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또한 사형과 범죄 억지력의 상관관계는 지금껏 밝혀진 게 없어. 사형제를 집행하는 그 어떤 나라도 흉악 범죄를 뿌리 뽑지 못했고 또 못하고 있거든. 미국의 경우 사형제를 유지하는 주의 강력범죄율이 폐지한 주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고. 자, 이제 반대 측의 의견도 들어볼까?


정의의 이름으로~ 사형제는 필요하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좋든 싫든)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사회적 동물이야. 그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안전한 삶을 누리기 위해 법이라는 준칙을 마련했지. 하지만 만일 누군가 반인륜적인 죄를 저질러 시회를 어지럽혔다면, 또 사회적 격리 같은 일반적인 형벌로는 도저히 다스릴 수 없는 악행을 일삼는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사형제 옹호론 측은 강력범죄의 발생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고 범죄자들을 일벌백계하는 차원에서라도 법적 최고형인 사형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해. 사형제가 있는데 집행하지 않는 것과 아예 없는 건 다른 문제란 거지. 흉악범이라도 범죄를 저지르기 전 이 행위가 자신의 목숨을 걸 일인지 한 번 더 고민해볼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거야. 종신형을 선고해 범죄자를 사회와 완전히 격리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가석방을 전제로 한 종신형은 사형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야. 흉악범이 사회에 나와 재차 범죄를 저지르는 걸 우린 심심치 않게 봐왔으니까. 사회 구성원들의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란 거지.

‘생명의 존엄성’을 언급한다면 사형제는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이 마땅해. 하지만 악랄한 범죄자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섣불리 이야기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야. 자, 그럼 이번에는 헌법재판소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까나?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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