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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2호

교과서 파먹기 25 | <정치와 법> 미국 총기 규제

매일 110명씩 죽어가는 미국,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건(Gun)?!

미국에서 대형 총기 참사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지난 5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3분의 1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희생자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회사에서 일하다가, 생필품을 사러 슈퍼마켓에 갔다가, 교회에서 예배를 보다가 테러를 당했다. 참변이 일어날 때마다 총기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늘 그때뿐이었다. 그랬던 미국이 30년 만에 강력한 총기 규제에 나섰다. 하지만 같은 시기, 미국 연방대법원은 ‘개인의 자기방어권’을 이유로 공공장소에서의 개인 총기 휴대를 허용했다. 총기 규제는 기본권 침해라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무엇일까? 고등학교 <정치와 법>을 통해 국가에 의한 개인 기본권 제한의 요건과 한계를 살펴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미국의 반복되는 총기 테러

지난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으로 어린 학생 19명을 포함해 21명이 목숨을 잃었어. 범인은 교실에 침입해 ‘굿 나잇’이라는 인사말을 남긴 뒤 그 작고 어린 생명들에게 총구를 겨눴지. 그로부터 나흘 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앨라배마의 한 교회에서 또다시 3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총격 사건이 일어났어.

미국에서 총기에 의한 무차별적 테러는 어제오늘 일이 아냐. 잊을 만하면 사건이 터지고 잊을 만하면 또 터지고…. 그럴 때마다 미 전역은 충격에 ‘잠시’ 절규해. 그러곤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잠깐’ 총기 규제를 부르짖지. 하지만 근본적 변화 없이 결국엔 없던 일이 돼버리는 패턴이 매번,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어.

CNN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총기 테러로 희생된 17살 이하 아동청소년은 1천560명으로, 2020년부터 현재까지 코로나바이러스로 숨진 동일 연령대 아동청소년보다 무려 490명이 많아.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화재 대피 훈련을 하듯 미국은 총격 사건에 대비해 책상 밑으로 숨는 연습을 하고 있다나? 하….

개인이 소지한 총기를 싸~악 국가가 거둬가고 앞으로도 총기 판매·구매를 법으로 금지시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폭력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텐데, 미국은 법도 없냐고? 하지만 지금까지 총기 규제가 허용되지 않은 게 바로 법 때문인 걸. 고구마 100개 먹은 듯한 네 기분 이해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기본권’이라고 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은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지. <정치와 법>에 나온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살펴보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평등권·자유권·참정권·청구권·사회권 등이 있고. 한데 헌법에는 국민의 기본권은 국가가 안녕할 때 보장될 수 있으므로 국가 안보나 질서, 공공복리의 실현을 위해선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고도 명시돼 있어. (이게 악용되면 어쩌냐고? 우린 이미 겪어봤는걸. 과거 유신정권과 군부독재 시대에 말야. 무소불위의 공권력이 개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처절하게 경험했지.)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 반드시 헌법이 명시한 ‘과잉 금지의 원칙’을 지켜야만 해. 목적이 정당하고, 방법이 적정해야 하며, 제한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 피해와 공익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야. 또한 아무리 기본권을 제한해야 하더라도 결코 국민의 자유와 본질적인 내용까지 침해해선 안 돼.

그렇다면 미국의 총기 규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 23일 미국 의회는 30년 만에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가결했어. 역사적 순간이라며 기뻐한 것도 잠시, 같은 날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가 안보와 질서를 위해 공공장소에서 총기 휴대를 제한한 뉴욕주(州)의 주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지. 1913년 제정된 뉴욕주의 주법이 일상적 정당방위 필요가 있는 개인의 무기 소지 권리, 즉 기본권을 침해했으므로 위헌이라나? 이 욕 나오는 상황을 이해하려면 우선 미국만의 특별한 총기 역사를 살펴봐야만 해.





총으로 지켜낸 생명과 자유

미국은 25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지닌 나라야. 나라가 세워진 과정도 좀 특별하지. 미국은 ‘총기의 나라’이기도 해. 인구수가 약 3억2천600만인데 민간인 보유 총기 수가 3억 정 이상이라니 이건 뭐, 1인 1정꼴이네! (살벌하구먼~ 우린 1인 1닭밖에 모르는데.)

미국에서 총기 소지를 아예 금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1791년 비준된, (미국판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수정헌법 제2조에 총기(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기)를 소유할 권리가 명시돼 있거든. 지금부터 이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줄게.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이들은 고구려 주몽처럼 건국의 꿈을 안고 떠나온 게 아냐. 종교의 자유를 위해, 새로운 기회를 잡아보고자, 죄를 짓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이주를 감행한 사람들이지.

국가가 성립되기 전이다 보니 이주민들은 자신과 가족을 스스로 지켜야만 했어. 야생동물로부터, 원주민들로부터, 또 다른 이주민들로부터 말야. 그들이 선택한 건 총이었어. 그리고 지역 치안 유지와 외부 침략 대처를 위해 민병대를 조직했지. 즉 초창기 미국은 국가 상비군이 아닌 민병대가 국방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거야. 게다가 영국은 식민지 건설 단계부터 미국을 착취와 약탈 대상으로 여겼어. 그러니 초기 이주민들에게 상비군의 이미지가 어땠겠니? 세금을 핑계로 약탈을 자행하는 ‘느아쁜X’들일 뿐이었지. 공권력 불신이 이때 싹텄다고나 할까.
1765년 영국 의회는 설탕세법, 인지세법, 차세법을 통과시키며 미국의 경제를 더욱 옥죄려 했어. 영국이 독단으로 마구잡이식 세금을 징수하자 식민지인들은 강하게 반발했지. 영국은 본격화하는 식민지의 독립 움직임을 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 왜? 개개인 모두 총기를 소유했으니까. 마침내 1774년 4월 19일, 영국군이 보스턴 민병대의 무장을 해제하려는 과정에서 독립전쟁의 첫 총성이 울렸어. 결국 식민지인들은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내기 위해 잡은 총으로 대영제국과 싸워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 거야. 그렇게 미국이라는 신흥 강대국이 세워졌고 미국인들에겐 총이 생명과 자유의 보루라는 이미지로 각인됐지.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국가가 세워진 다음에도 미국은 개인 총기 소지를 여전히 허용했어. 국가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자연 상태의 폭력을 규율하는 것이 근대국가의 기본 개념인 만큼, 정부가 들어선 즉시 개인이 소지한 총을 압수하고 화약무기를 국가가 독점했어야 했는데도 말야.

미국 헌법 제정을 주도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새로 성립된 연방정부가 상비군을 두면 각 주의 독립과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할 위험이 있다고 봤어. 이들은 논의 끝에 주 민병대가 무장할 권리를 헌법에 보장하면 연방정부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지.
실상 1789년 제정된 미국 헌법에는 국민 기본권이 담겨 있지 않았어. 기본권은 너무나 당연하니 따로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지.

그러다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최종 10개 조항을 추가한 수정헌법이 제정됐어. 1조는 종교와 언론·출판, 집회 자유권에 대한 보장을, 4조에는 부당한 압수·수색·체포를 당하지 않을 권리를, 5~8조에는 정당한 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서는 생명·자유·재산을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와 민·형사 제반 권리 등 대개의 국가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 10개 항목이 담겼지. 그중 두 번째가 무기 소유권이라니… 말잇못.




산 넘어 산

앞서 말했듯 기본권의 경우 다른 헌법상 권리와 상충할 때 일정한 제약을 가할 순 있지만 본질적 내용은 결코 침해할 수 없어. 다시 말해 수정헌법 2조를 폐기하지 않는 한 미국 정부가 어렵사리 30년 만에 총기규제 법안을 마련했어도 지금도, 앞으로도 강력한 총기 규제는 불가능하단 말씀이야.

그럼 헌법을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한 번 정해진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미국에서 사용하는 단위 좀 봐봐. 전 세계가 사용하는 센티미터(cm)와 킬로미터(km), 리터(L), 그램(g)대신 여전히 꿋꿋하게! 인치(inch), 야드(yard), 온스(ounce), 파운드(pound)를 쓰고 있잖아. 어디 이뿐인가? 전기도 끝까지 110v를 고집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여기는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대통령 선거 제도는 어떻고. 200년 전 제도를 지금까지 안 바꿔! 그러니 헌법은 말해 뭐 해.

현대 무기의 발전상과 군대의 전문성을 고려할 때 소총으로 무장한 민병대를 기준으로 정한 수정헌법 2조가 말이 되느냐는 주장이 나온 건 실상 오래전 일이야. 설사 민병대의 무장이 압제를 막는다고 쳐도 민병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총을 갖게 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의견도 진즉 나왔었고. 하지만 이 모든 주장에 미국 대법원은 무기 소유권은 모든 미국인에게 부여된 개인적 권리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어. (네네~ 잘하셨습니다!)

법도 문제지만 총기 규제에 있어 또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이 있어. 미국 최대의 이익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의 강력한 로비! 연방 상·하원 의원들이 총기 테러가 발생하면 충격과 분노를 표시하지만 그때뿐인 이유가 바로 이 NRA가 쏟아붓는 정치 후원금 때문이거든. 후원 액수가 워낙 크다 보니 규제 강화 입법에 적극 나서거나 NRA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들은 거의 없어. 오히려 ‘제가 현직에 있는 동안 총기 규제 걱정은 붙들어 매십쇼!’ 할 정도지. (고구마 500개….)


총은 죄가 없다?

6월 25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공화 양당이 조율해 상·하원을 통과한 총기 규제 강화법에 서명했어. 수십 년 만에 총기 규제를 대대적으로 손보는 이 법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법을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지.

바뀐 법안에 따르면 18세 이상이면 쉽사리 총기를 구매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18~21세는 범죄 유무를 포함한 신원 조회를 받아야만 해. 그리고 21세 미만 총기 구입자의 정신건강 상태를 당국이 최소 열흘간 검토하게 되지. 또 더 많은 총기 판매업자에게 신원 조회 의무를 부여하고 총기 밀매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위험하다고 판단된 사람의 총기를 일시 압류하는 ‘레드 플래그(red flag)’ 법을 도입하는 주에 가산점을 준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그럼에도 총기 테러와 작별을 고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야. 여전히 미국인 대다수는 총을 자기방어의 수단 겸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고 총기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가 많아질수록 총기 구매가 급증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으니까.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는 링컨은 ‘법 위에 자비가 있다’고 했어. 법은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최소 수단일 뿐이야.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막거나 줄이지 못하고 방치하는 법은 법으로서 자격미달이지. 민주주의의 심장이자 최고 수준의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문명국’ 미국이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결국 다시 도돌이표를 찍을지 우리 모두 주의 깊게 지켜보자고!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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