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뒤로

중등

1011호

교과서 파먹기 9 | <체육> 올림픽

지구촌 최대 이벤트 올림픽의 모든 것

‘인간의 완성과 세계의 평화!’ 이는 근대 올림픽을 탄생시킨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이 선언한 ‘올림픽 정신’이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지구촌 최대 이벤트다. 인기가 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지만 얼마 전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만 하더라도 우리 선수들이 투혼을 불사른 매 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이자, 환희와 감동의 ‘종합선물세트’였다. 그 어느 도시에서 개최되든지 간에 전 세계인 누구나 시공간을 이겨내며 자국 선수를 목청껏 응원한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이 언제, 어디서, 왜, 어떤 목적으로 시작됐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제전경기로 출발한 올림픽이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체육>과 <역사> 교과서를 통해 알아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위키백과·지학사 교과서
참고 <아테네에서 아테네까지> <올림픽 2780년의 역사>









종교의식으로 출발한 고대 올림픽

전 국민을 치어리더로 만드는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를 그 기원으로 해. 중학교 <역사Ⅰ> 교과서 1단원 ‘문명의 발생과 고대 세계의 형성’을 보면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도시국가인 ‘폴리스’를 형성했다고 설명돼 있어.

즉 고대 그리스는 통일된 국가가 아닌 다수의 폴리스로 이뤄진 공동체를 의미하는 거야. 우리가 잘 아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도 이들 중 하나고. 각 폴리스는 이해관계가 달랐던 만큼 자주 다퉜지만 올림포스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를 공유했고 언어와 생활양식도 대동소이했어.

당시 폴리스 간의 전쟁은 지금처럼 최첨단 무기로 싸우는 게 아닌 거의 ‘주먹 대 주먹’의 싸움이었어. 그러다 보니 한 번 전쟁이 나면 양측 모두 싸우다 쉬고 그러다 힘내서 또 싸우고를 반복하며 해를 넘기기 일쑤였지.

그러던 어느 날, 엘리스의 이토피스 왕은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멈출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어. ‘전쟁을 멈추고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을 열라’는 델포이 신탁을 받았다며 이 폴리스 저 폴리스에 막 소문을 낸 거야. 당시 델포이 신탁의 영험함은 넘사벽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스의 이웃 폴리스였던 스파르타와 피사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휴전조약을 맺었지. 그 뒤 전쟁으로 지쳐 있었던 폴리스들도 은근슬쩍 ‘저기, 우리도…’하며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표했어.

이후 각 도시국가의 단결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4년에 한 번씩 제우스 신전이 있는 ‘올림피아’에 모여 5일간 운동경기를 벌이며 평화의 축제를 즐겼지. 전쟁을 하다가도 올림피아 제전 3개월 전부터는 여행객과 주민의 보호를 위해 그리스 전역에 휴전령을 선포했다고 하니 이 사람들, 진심 전쟁이 싫었나 봐.


쿠베르탱, 올림픽을 부활시키다

고대 올림픽은 1200여 년 동안 계속돼왔어. 그러다 그리스는 새로운 강자, 로마의 지배를 받는 처지로 전락하게 됐지. 이후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올림픽을 ‘이교도들의 종교 행위’로 간주해 없애버렸어. (그래놓고 본인들은 콜로세움에서 막 사자랑 인간을 싸우게 하질 않나~ 검투사끼리 죽고 죽이는 모습을 관람하며 좋아하질 않나~) 이제 올림픽은 문헌으로만 존재하는 역사가 돼버린 거야.

그 뒤 1500여 년간 잊혔던 올림픽 경기는 1896년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교육자인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부활하게 됐어. 하지만 실제는 1850년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고대 그리스 덕후, 브룩스 박사가 잉글랜드 서쪽에 있는 ‘머치 웬록’이란 동네에서 주변 마을 사람들과 ‘동네 대항경기’를 하며 올림픽을 먼저 부활시켰다고 해. 당시 쿠베르탱은 나폴레옹 시대, 강했던 프랑스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질 만큼 약해진 이유를 ‘청년들의 체력 문제’라 여겼어.

그러다 브룩스 박사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박사와 편지를 주고받은 뒤 직접 웬록 올림픽을 참관하기에 이르렀지. 이후 조국의 부국강병만 생각하던 쿠베르탱은 국가끼리 전쟁이 아니라 평화롭게 경기를 하는 것이 훨씬 ‘알흠답다’는 확신이 섰고 본인의 재력과 인맥을 총동원해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설립했어. 2년 뒤인 1896년, 올림픽의 발상지인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을 개최하는 놀라운 추진력을 보였단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올림픽 규칙

IOC의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야. 왜? 쿠베르탱의 모국어니까! 올림픽 개회식이 왜 프랑스어-영어-개최국 언어 순으로 진행되는지 알겠지? 그리고 또 특이한 건 월드컵은 개최국명을 붙이는 데 반해 올림픽은 도시명을 붙인다는 거지. 한국올림픽, 영국올림픽이라고 하지 않고 서울올림픽, 런던올림픽 등으로 말하잖아.
이유는 말야, 올림픽이 지금처럼 자리를 잡기 전, 초반에는 ‘세계만국박람회(EXPO)’와 함께 열렸기 때문이야. EXPO와 올림픽은 도시가 주관했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이지.

그럼, 올림픽에서 국가별 선수단 입장 순서는? ABC 순으로? 땡! 첫 번째와 마지막 입장 국가는 모든 올림픽에서 예외 없이 동일해. 그리스와 개최국이지. 그 뒤 개최국의 언어, 즉 우리나라로 치면 가나다순으로 각국 선수들이 입장해. 그럼 그리스에서 개최되면 어떻게 하냐고? 실제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리스가 두 번 입장했어. 처음과 마지막으로.

올림픽 종목의 변천사를 보면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육상·수영·체조·역도·레슬링·펜싱·사격·사이클·테니스 등 9개였는데 이후 점점 늘어나 25개 종목에 달하게 돼. 이 가운데 쿠베르탱이 올림픽을 위해 ‘특별히’ 만든 종목이 있어. 바로 ‘근대5종’이지. 펜싱·수영·승마·사격·크로스컨트리로 이루어진 근대5종은 1912년에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올림픽의 상징 종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우리의 자랑스런 전웅태 선수가 역대 최초로 동메달을 딴 그 종목!) 때문에 IOC 위원장은 해당 종목에 필히 참석해 금메달을 수여해야만 한단다.

재밌는 사실은 근대5종이 ‘군대 훈련 종목’이라는 거야. 전쟁 시 적군을 칼로 제압하고(펜싱), 강을 건너(수영) 적의 말을 뺏고(때문에 승마는 말이 무작위 배정이라 낙마 사고가 잦아), 총으로 먼 거리의 적을 쏘며(사격) 달리면서도 총을 쏘지(크로스컨트리). 쿠베르탱이 바라던 게 뭐? 프랑스 청년의 체력 향상과 나폴레옹 시대의 영광재현!


전쟁과 냉전에 휘말린 ‘평화의 제전’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며 부활한 올림픽은 안타깝게도 전쟁의 빌미가 되거나 독재와 테러에 악용되기도 했어. 허긴, 쿠베르탱부터가 IOC 조직 당시 본인이 미워하는 독일엔 아예 초청장도 보내지 않았다니 원. 고대 올림픽은 휴전까지 하며 진행했건만, 전쟁으로 3번이나 대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 1916년 베를린올림픽은 1차 세계대전으로, 1940년에는 도쿄에서 개최 예정이었지만 중일전쟁을 치러야 한다며 일본 측이 IOC에 개최 자격을 반납했고 1944년 런던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취소했어.

정치적 문제로 테러가 일어나고 대회를 보이콧하는 사례도 발생했지. 1972년 독일은 뮌헨올림픽으로 1,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에서 모범국가로 이미지를 변화시키려 했어. 최초로 ‘마스코트(닥스훈트)’를 도입한 대회이기도 하지. 그런데 웬걸,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해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고 당시 이스라엘에 수감돼 있던 234명의 포로를 석방하라고 요구한 거야. (‘테러’라는 개념도 이때 생겼다지)

독일은 카오스에 빠졌고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 폭탄을 던진 게 그만, 선수들이 탄 헬기에 떨어져 인질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지. (궁금하다면 영화 <뮌헨> 강추!) 1980년 모스크바 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난하며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60여 개국이 참가를 거부했어. 그랬더니 그다음 올림픽이 열린 미국 LA에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이 대거 불참! 그런 와중에도 모스크바 대회의 마스코트였던 ‘미샤’는 올림픽 역사상 최고 귀요미로 인정받으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안 비밀!


올림픽 캐릭터 중 역대급 미모를 자랑하는 미샤.




1936년 베를린, 1988년 서울

중학교 <체육> 교과서 2단원 ‘도전’에는 올림픽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1936년 베를린 대회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모습이 담겨 있어. 일제강점기, 조국의 대표가 아닌 침략국의 선수로 뛸 수밖에 없었던 한 청년의 비애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적시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날, 성화를 손에 들고 감격에 겨워 겅중겅중 신나게 뛰는 한 노인이 있었어. 가슴에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손기정 선수였지. 그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이들의 가슴도 벅차올랐어. 아, 또 한 명의 영웅!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레슬링에서 우승해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긴 양정모 선수도 잊어선 안 돼!

‘88올림픽’으로 불리는 서울 대회는 올림픽 유치가 국가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라는 기록을 남겼어. 개최지 유치 결정은 일반적으로 10년 주기로 이뤄지는데 1988년은 일본 나고야가 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거의 확정된 분위기였어. 우리는 그다음인 1996년이나 2000년을 기약해야 할 처지였지만 ‘일단 부딪쳐!’ 정신을 발휘, 결국 기적을 이뤄냈지.

외국인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은 도시 정비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눈물을 흘린 이들이 있음도 기억해야 할 거야.) IT 강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됐어. 이전 올림픽까진 경기 결과를 전화나 칠판을 사용하거나 수기로 작성해 각 언론사에 전달했는데, 서울 대회는 최초로 컴퓨터와 HD방송으로 결과를 내보냈어. 또한 역대 올림픽 중 동서화합이 가장 잘 이루어진 대회로도 기록돼 있고.

그뿐만이 아냐. 서울올림픽은 장애인 대회인 ‘패럴림픽’에서 올림픽에 버금가는 응원전을 펼쳐 찬사를 받기도 했어. 올림픽 종료 후 열린 패럴림픽의 텅 빈 관중석을 본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가 선수들을 응원하며 기운을 북돋아줬거든. 이런 정 많은 민족!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올림픽과 동계스포츠 종목이 만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근대 올림픽 이후에도 동계스포츠는 올림픽 종목이 되기에 어려움이 많았어. 가장 큰 이유는 날씨였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1인이 있었으니, 쿠베르탱의 친구이자 IOC 창립위원인 스웨덴의 구스타프 발크! 그는 동계스포츠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고 결국 1908년 런던올림픽에 피겨스케이팅을 정식 종목으로 추가했어. (발크 아니었음 우리 김연아 선수의 눈부신 점프를 못 볼 뻔.)

그 뒤 1924년엔 프랑스 샤모니에서 동계올림픽이 처음 열렸고 1926년 제26차 IOC 리스본 총회에서 동계올림픽을 분리하기로 결정했지.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까지 하계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리다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2년 주기로 동계·하계올림픽을 번갈아 열고 있어. 피겨스케이팅·아이스하키·스피드스케이팅·스키점프 등 16개 종목으로 시작됐던 동계올림픽은 2018년 대한민국 평창에서 102개 종목을 운영하기에 이르렀지.

평창올림픽엔 역대 최대 규모인 92개국 2천920명의 선수가 참여했어. 또한 ‘저비용 고효율’을 내건 대회답게 개폐회식에서 자본과 물량 투입을 지양하고 증강현실과 드론 등 최첨단 기술로 승부를 보며 ‘흑자’를 달성했지. 정치적으로는 남북 공동 입장을 이뤄내며 감동의 쓰나미를 일으킨 건 덤!

뮌헨 대회 이후 보안과 인력 고용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경기장을 새로 짓는 등 이중삼중으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올림픽 적자’라는 공식이 통용되던 시점에 ‘모범답안’을 제시해준거지.

올림픽의 인기가 점점 식어간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4년의 노력으로 이뤄낸 선수들의 드라마틱한 승리, 세계 평화의 상징성이 있는 한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거야. 한 200년은 더 가지 않을까 싶은데, 너는 어때? 동의? 동의!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 (주)내일교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0

댓글쓰기
240318 숭실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