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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호

교과서 파먹기 6 | <음악> ‘피타고라스의 7음계’ _ 음악에서도 나를 만날 줄 몰랐지?

서양 음악 이론의 창시자, 피타고라스

그리스 철학의 원조라 불리는 탈레스. 서양 철학의 기둥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거의 모든 이론의 창시자 아리스토텔레스. 이들은 모두 ‘철학자’로 불린다. 하지만 최초로 철학자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는 바로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 정리’가 워낙 유명한 탓에 수학자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서양 과학 문명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이도, 모든 음악의 토양이 되는 ‘음계’를 탄생시킨 사람도 피타고라스다. 우주의 비율을 현(絃)에 옮겨 인류에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사한, 이 위대한 스승의 음악적 세계관을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철학 콘서트> <예술, 역사를 만들다>








음악가로 만나는 피타고라스

음악이 빠진 영화나 드라마를 상상해보자. 국과 찬 없이 왕으로 거친 보리밥만 먹어야 하는 느낌과 흡사할 것 같지 않니? 음악이 없는 게임은? 아니, 음악이 없는 세상은? 만약 그런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어쩌면 우린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의 몰골이 될지도 몰라. 세상에 음악이 없는 삶이라니!

인류의 역사가 곧 음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둘은 불가분의 관계야.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 등에서도 종교 의식을 위한 음악이 행해졌음이 벽화나 유물 등에 나타나 있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대 음악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어. 음계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기 전이라 기록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고등학교와 중학교 <음악> 교과서 ‘서양 음악사’ 부분을 펼쳐보면 이 같은 설명이 아~주 짤막하게 소개돼 있지.

그리고 두둥! 한 낯익은 인물이 등장해. 그 주인공은 바로 피타고라스! ‘뭐? 왜? 또 누굴 괴롭히려고!?’라고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면 워워~ 흥분을 가라앉히길 바라.

어린 시절 필수 코스(?)인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엘>과 <체르니>를 너나 할 것 없이 연습할 수 있는 이유, 대한민국의 국보급 소프라노 조수미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세계 무대를 재패할 수 있었던 이유, BTS를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의 곡을 전 세계인이 함께 부르고 연주하며 즐길 수 있는 이유는 하나야. 모든 멜로디가 12음계 안에서 표현되기 때문이지.

이 토대를 닦은 이가 바로 누구? ‘도-레-미-파-솔-라-시’ 7음계를 규정한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 짤막 소개

자, 그럼 지금부터 인류에게 ‘병 주고 약 준’ 피타고라스에 대해 살짝 알아볼까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에게해 동쪽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어.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의 어마무시한 교육열 덕분에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교양을 쌓을 수 있었지. 성스러운 악기라 불린 ‘리라’ 연주까지 포함해서. 리라가 고대인들에게 어떤 악기로 여겨졌는지는 두말하면 입 아픈 스테디셀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보면 알 수 있어.

동화에는 판과 아폴론의 ‘세기의 연주 대결’이 등장하는데 목신(牧神)판은 피리를 불었고 태양·음악·시·예언·의술·궁술까지 관장하는 아폴론은 리라를 연주했지. ‘제우스 다음 신’이라 불린 아폴론이 선택한 악기인 만큼 서양 문화권에서 리라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악기로 여겨졌어. 그런데 연주 대결 심사위원 미다스 왕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판이 분 피리 소리가 더 낫다고 한 거지. 눈치 없이 너무 주관을 펼친 바람에 귀가… 쯧쯧쯧.

피타고라스는 수학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했어. 만물은 수(數)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음악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했지. 그러더니 높낮이가 다른 두 음 간의 간격인 음정을 비율 관계로 설명해냈다니까! 대애~박!






피타고라스, 음악을 수로 증명하다

고대에는 규격화된 음계 없이 연주자가 듣기 편한 음색을 찾아 연주하곤 했어.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피타고라스는 오랫동안 음과 음이 서로 잘 어울려서 듣기 좋은 ‘협화음정’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찾고자 노력했지.

어느 날, 피타고라스는 대장간을 지나가다 음악적으로 조화로운 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듣게 됐어. ‘서로 어우러지는 음높이! 바로 이거야!’ 대장간에 들어간 그는 주의 깊게 망치 작업을 관찰했지. 비밀은 망치들의 각기 다른 무게에 있었어. 첫째 망치는 12파운드, 둘째 망치는 9파운드, 셋째 망치는 8파운드, 넷째 망치는 6파운드였지. 계속 집중! 어라? 12파운드랑 6파운드, 1:2 비율로 치는 망치 소리는 두 개의 음높이가 높고 낮은데 마치 같은 음처럼 들리네? 이걸 8도(옥타브)라고 하자.

12파운드와 8파운드짜리 망치, 그리고 9파운드와 6파운드짜리 망치는 옥타브 다음으로 아름다운 음정인 5도 소리(두 음 간의 음정 거리가 5도)가 나는구나. 12파운드와 9파운드 망치, 그리고 8파운드와 6파운드 망치는 협화음정 중 그 거리가 가장 좁은 음정인 4도 소리를 내내? 와우!

이러한 방식으로 피타고라스는 음악적 하모니의 비율이자 불변의 본질을 발견해냈어. 8도인 옥타브는 2:1, 5도는 3:2, 4도는 4:3. 게다가 이렇게 똑! 떨어지는 우주의 수, 정수비라니! 너무 알흠답잖아~ (이걸 발견한 뒤 피타고라스는 진심 감동했대.) 만물은 수라 주장한 피타고라스가 ‘피타고라스’한 거지.

내친김에 그는 음의 어울림인 협화를 현 길이의 비례로 설명했어. (리라 연주의 달인이시잖니~) 즉 현의 길이가 간단한 정수의 비를 가질수록 듣기 편한 협화음이 나고 복잡할수록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이 난다고 말야. 우리가 흔히 ‘완전음정’이라 부르는 1, 4, 5, 8도 음정은 이렇게 탄생하게 됐단다.




피타고라스 음계에 이름을 붙인 ‘귀도 다레초’

피타고라스의 음악 정신은 중세로 이어져 11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이자 음악 이론가였던 귀도 다레초에 이르러 또 한 번 포텐이 터지게 돼. 서양 음악의 기본이 되는 7음계명을 탄생시켰거든. ‘도-레-미-파-솔-라-시’ 계이름이 음악사에 등장했다는 의미지.
수도사였던 만큼 귀도는 라틴어로 된 <성 요한 찬가>의 시구(詩句) 첫째 음을 음계에 적용했어. 각 음계의 이름과 그 의미를 살펴볼까?



숫자로 표기됐던 피타고라스의 1, 4, 5, 8도 완전음정을 계이름을 적용해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도-도’ ‘도-파’ ‘도-솔’ ‘도-(높은)도’가 되는 거지.





코스모스의 하모니, 협화음

피타고라스는 비율이나 질서, 조화는 모두 둘 이상의 ‘관계’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어. 즉 한 음의 울림만으로는 음악이 될 수 없고 음들의 관계가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지.

음들의 관계와 음 사이의 거리인 음정을 수학적 비율로 분석한 ‘서양 음악 이론의 창시자’ 피타고라스. 수학자로만 한정짓기엔 너무 다재다능하지 않니?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근본적 원리를 이루는 수학적 관계들을 조화와 일치의 여신을 지칭하는 ‘하르모니아’라고 부르고 이 하르모니아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천체를 ‘코스모스’라 했어. 그러고 보니 우주에게 코스모스란 이름을 붙여준 것도 피타고라스구먼!

피타고라스가 우주의 음정을 담아 고안한 듣기 편안한 협화음은 신(神) 중심 사회였던 중세 시대까지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어. 그 뒤 14세기 중반, ‘흑사병’이라는 끔찍한 감염병이 창궐해.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하는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지. ‘신에게 항상 복종하며 그의 뜻을 좇아 살아온 우리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친 걸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인간을 중심으로 사유하기 시작했어.

그래, 신도 인간처럼 표현하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다시 부흥시키자! ‘인문주의’에 기반한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된 계기지.

먼저 미술과 건축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어. 종교화를 벗어나 세속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고대 건축 양식을 본뜬 둥글고 원만한 원형 교회가 생겨났지. 비록 매번 한 템포씩 늦긴 했지만 음악도 그 뒤를 따랐어. 르네상스 시대 후반기에 이르러 사람의 감정을 음악에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고? 생각해봐. 협화음으로 어떻게 화와 분노, 불안, 좌절을 나타내겠니? 그래! 불협화음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야~


바로크 시대의 불협화음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이야. 르네상스의 전성기가 지난 16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의 예술사조(思潮)를 가리키지. 당시 사람들은 새로 등장한, 낯설고 어색한 문화 양식들이 몹시도 못마땅했어. 바로크는 르네상스의 특징인 질서와 균형, 조화와 논리성과 달리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을 강조했으니까. 물론 여기엔 불협화음이 섞인 음악도 포함된단다.

악기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어. 덕분에 다양한 음악이 탄생하기에 이르렀지. 이전까진 악기의 발달이 더뎠던 까닭에 여전히 피타고라스 7음계를 기본으로 한 무반주 성악 합창곡이 주를 이루고 있었거든.

그러다 두둥! 오르간과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코드와 하프시코드가 등장한 거야. 즉 피타고라스 음계에선 없던 ‘도#(레b), 레#(미b), 파#(솔b), 솔#(라b), 라#(시b)’라는, 피아노의 검은 건반이 담당하는 소리들이 나타났다는 얘기지. 이제 옥타브는 12음계가 된 거야. 이제 모든 악기로 모든 조성을 연주하고 합주할 수 있는 길이 열렸어.

무슨 소리냐고? 으뜸음을 ‘도’로 했을 때와 ‘레’로 했을 때를 생각해봐. 현악기는 조바꿈이 바로 가능하지만 건반악기는 한 번 정해진 조율로 끝까지 연주해야 하잖아.

만약 검은 건반인 반음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조바꿈이 불가능했다는 얘기지. 또 다양해진 반음으로 인해 더욱 많은 감정을 표현해낼 수 있게 됐고. 덕분에 인간의 희로애락을 종합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는 오페라가 꽃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지. 대한민국 방방곳곳에 피아노 학원이 들어서게 된 것도 바로크의 공이지.

바로크의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비발디와 바흐, 헨델이 있어. 이 위대한 세 작곡가를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오늘은 ‘음악가 피타고라스’ 이야기를 들려준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수를 음계에 담은 피타고라스, 어땠니? 이제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가 선사한 수학의 아픔을 조금은 잊을 수 있기를 바라.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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