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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호

EDU CULTURE |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37

뭐!? 이걸 먹었다고? 유럽인들의 만병통치약 ‘미라’

‘미라(mirra)’ 하면 뭐가 떠오르니? ‘미이라’ 아니냐고? 응~ 아니야. 외래어 표기법상 장모음의 장음은 따로 표기하지 않아. 즉 2017년 개봉한 영화 <미이라>는 국·알·못 표기법이란 말씀이지. 아마도 미라 하면 누구나 붕대에 칭칭 감긴 이집트 미라를 가장 먼저 떠올릴 거야.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전유물처럼 알려져 있는 미라는 사실 인류 역사와 함께 성장해온 문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 한국에서도 조선 시대 미라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잖아. 뭐야, 그 놀란 얼굴은? 그럼에도 ‘미라는 이집트’가 된 건 체계적인 시신 방부 처리법이 이집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기 때문일 거야.
자, 그럼 이제부터 미라에 관한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줄게.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돌팔이 의학의 역사>




# 부활 대비 신체 보존

미라는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가 썩지 않은 상태로 보존된 걸 뜻해.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세상에 갔다가 돌아온다는, 즉 부활을 믿은 문화권에서 발달했지. 영혼이 다시 살아 돌아 왔는데 들어갈 몸이 없으면 얼마나 난감하겠니.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미라를 만든 곳은 기원전 5000년경 칠레 친초로와 고대 이집트라고 해. 시신 방부 처리법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특성이 가장 중요한데 이 두 곳은 습도와 토양이 방부에 적정할 정도의 기후를 유지했지. 특히 이집트는 전문적인 방부 처리사가 있을 정도로 미라 제작에 있어 고도의 기술을 보유했었단다.

처음에는 왕과 귀족만 미라가 될 수 있었어. 생각해봐. 한 사람이 죽으면 70일에 걸쳐 미라로 만든 뒤 무덤에 묻는데, 생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마스크도 만들어 씌워 죽은 영혼이 부활할 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했어. 게다가 무덤 안에는 죽은 이가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안내서와 하인으로 쓸 인형, 그 밖에 음식, 옷, 가구, 무기 등을 넣어야 했지. 살아서 쓸 돈도 부족한 일반 백성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겠느냐 이 말이야. 그땐 로또도 없었을 텐데!

시간이 흘러 이집트의 방부 처리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이는 곧 일반인들도 미라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했어. 그 결과 이집트 미라의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아졌지. 그런데 참으로 이상도 하지. 일반인도 미라로 만든 이집트에서 왜 지금은 극히 일부의 미라만 존재할까? 서양 영화에 출연하는 미라는 왜 ‘투탕카멘’이 독점하고 있느냔 말야.




# 씁쓸한 신맛의 명약

과거 중세 유럽에서는 ‘무미야’라는 만병통치약이 각광받았어. 집 안에 무미야가 떨어지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달려가서 구해놓아야만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인기 상비약이었지. ‘몰약’이라고도 불리는 무미야는 이집트 근처에서만 자라는 나무에서 뽑아낸, 살균 정화 능력이 뛰어난 귀한 약재 성분이 함유돼 있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미라의 몸을 감을 붕대에 무미야를 충분히 적시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며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사용했지.

그런데 갑자기 무미야와 미라가 동의어 취급을 받으며 사람을 치료해주는 신비한 효능이 있다고 입소문을 타게 된 거야. 1550년대 유럽에서 모두가 열망하는 최고의 명약으로 미라가 명성을 떨치게 된 웃기는 시추에이션이 발생한 거지.

뭐라더라? 정신을 잃은 사람이 먹으면 눈을 번쩍 뜨고 뼈가 부러진 데 바르면 뼈가 딱 붙는다나? 상처에 바르면 새 살이 돋고 어떤 심각한 질병도 일시에 해소해준다며 용도에 따라 물약, 가루약, 연고 등으로 제조됐어. 시중에선 잘게 갈린 미라 파우더(우웩!)까지 등장했다니 말 다했지.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라에 대한 수요는 치솟았고 유럽의 약재상들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집트로 몰려가 미라 도굴에 열을 올렸어. 미라를 구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자 걸인, 나환자, 전염병 희생자, 사형당한 죄수까지 미라로 위조해 팔았다고 해. 아무리 시신이라도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복용(?)하냐고? 현대에, 게다가 한국에서 태어난 걸 감사히 여겨라.

불과 18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선 미라가 최고의 약이었다~ 1747년 영국의 한 약학 사전에는 미라가 ‘씁쓸한 신맛’이 난다고 적혀 있어. ‘달콤한 천상의 맛’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지 뭐야. 안 그랬음 아직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르잖니. 어때, 미라 이야기 재미있었니? 식전인데 밥맛 떨어졌다고? 미라의 효능에 다이어트도 있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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