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09년, 중국 역사상 최초로 농민 반란이 일어났어. 중국에 차이나(China)라는 이름을 선사한 ‘진(Chin)시황’이 죽은 지 딱 1년이 지난 때지. 농민에서 하급 장교가 된 진승이랑 오광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하며 징용에 끌려가던 농민 병사들을 데리고 난을 일으켰지. 두 친구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며, 차라리 왕이 되겠다고 발악(?)을 한 거야. 뭔 소리냐고? 당시 징용된 농민이나 죄수들은 가혹한 요역을 감당하지 못해 죽는 경우가 수두룩했어. 때문에 끌려가다 몰래 도망들을 갔걸랑. 문제는 출발 인원과 도착 인원이 일치하지 않으면 호송자가 그 죄를 물어야만 했다는 거야. 결국 이 사건이 발단이 돼 10년간 진시황 치하에 눌려 있던 세력들이 마구 들고 일어서게 된 거지. 오늘의 주인공 항우와 유방을 포함해 말이야.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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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존재감과 포스, 패왕_항우
진과 당당히 맞섰던 강적 초, 그 위대한 나라 최후의 명장을 할아버지로 둔 나 항우가! 몇 천의 군사로 수십만 대군을 물리치고 세계사에서도 손꼽히는 ‘팽성대전’(그때 유방의 60만 군사를 단 3만 명으로 전멸 시켰지)에서의 승리는 물론 싸웠다 하면 무조건 이기는 천부적인 군사 능력의 보유자인 내가! 저 따위 이름도 없는 백수건달과의 싸움에서 생애 첫 패배로 죽음을 맞게 되다니, 분하다. 내가 이렇게 허망한 죽음을 맞는다는 건 진정 언빌리버블한 일이라니까!
만 명의 사람을 대적할 만한 지략과 용맹을 가리키는 ‘만인지적(萬人之敵)’,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의 ‘패왕(王)’, 세상을 뒤엎을 정도의 강한 힘과 기운을 의미하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는 말이 모두 나, 항우로부터 유래됐어. 진승과 오광의 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서로 황제가 되겠다며 까분(?) 제후들도 단 2년 만에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었지. 유방도 단칼에 없앨 수 있었지만 형님으로 모시겠다며 하도 싹싹 빌기에 봐줬더니… 이놈이 은혜를 원수로 갚네!
이렇게 대~단한데 왜 졌냐고? 난 실책을 범한 부하들을 호되게 꾸짖고 엄벌로 다스렸어. ‘용서’는 약자들의 몫이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또 다른 이들의 충고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았지. 부하 중에 한신이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감히 싸움왕인 나에게 이러십쇼 저러십쇼 하는 거야, 짜증나게~ 1도 안 들어줬더니 결국 유방한테 가대?
그리고 헐~ 날 꺾었어! ‘사면초가(四面楚歌)’ 들어봤지? 내가 진 유일한 전투인 해하전투에서 일어난 일이지. 그게 바로 한신의 꾀였어. 결국 난 31세의 젊디젊은 나이로 사랑하던 여인 우미인과 눈물을 머금고 자결했어.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나의 이 놀라운 무용담과 독보적 카리스마, 그리고 드라마틱한 몰락은 무수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안겼지. 뻥 아니냐고? <초한지> <패왕별희> 등의 작품과 장기판을 봐라. 이런 넘사벽 클라스라니~
주제 파악의 1인자_유방
내가 이름도 없는 백수건달인 걸 어떻게 알았지? <사기>에 등장한 내 이름은 집안의 막내라는 뜻의 ‘계(季)’야. 울 아빠 이름은 태공(太公), 엄마는 온(), 큰형은 백(伯), 둘째 형은 중(仲)인데 한자를 풀이하면 아빠는 아빠, 엄마는 엄마, 큰형은 큰형, 둘째 형은 둘째 형이란 뜻이지. 뭔 이름이 이러냐고 묻는다면 내 신분이 매우 미천해 이름조차도 제대로 없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보면 돼. 그럼 방(邦)은 뭐냐고? 응~ 내가 저승에 간 다음에 <한기>라는 책에 기록됐대.
난 평생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고 주특기는 외상술 얻어 마시기와 놀기였어. 이런 내가 중국문화의 기초를 닦은 왕조인 한(漢)을 세웠어, 대~박! 한족, 한자, 한문, 한방, 한약 등이 다 이 유방님의 한에서 나왔다는 거 아니니~ 항우는 어릴 적 진시황을 보며 ‘저 자리에 내가 앉겠다!’ 했다지만 난 그런 꿈조차 꾼 적이 없어.
단, 백수임에도 절대 기가 죽는 법이 없었고 돈 한 푼 없어도 큰소리를 치는 천하제일의 배짱을 지닌 멋진 인간이었지. 그럼 어쩌다 나라를 건국하게 됐냐고? 그게 좀 웃긴데, 실은 내가 앞서 진승과 오광처럼 죄수들을 끌고 호송하는 일을 어쩌다 맡게 됐거든? 근데 이 친구들이 죄다 튀네? 목적지에 가면 한 명도 안 남을 지경인 거야.
에라, 모르겠다! 다들 튀어라, 나도 튀련다하고 술을 마셔댔는데, 웬 장사 10명이 “형님! 저희가 모시겠습니다”하더니 날 따르더라고. 그러더니 막 인재들이 붙어! 내가 자기들 의견을 잘 경청해주고 능력에 맞게 대우해줘 좋다나? 난 그저 무식한 내가 뭘 알겠냐~ 전문가인 네가 알겠지~ 했을 뿐이거든.
한나라 건국의 주역인 한신, 팽월, 영포 등도 항우 밑에 있다가 온 친구들이고. 게다가 나라를 세웠더니 앞서 진시황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자 사이코가 제도 개혁, 도량형과 문자 통일, 중앙집권제, 도로 건설, 장성 축조까지 뭐 다 해놨네? 덕분에 난 그냥 백성들에게 “알아서들 살아~그동안 힘들었지?” 했더니 세상 인기 만점 황제가 된 거지. 그러니 얘들아, 다른 사람 말을 좀 듣고 그게 옳으면 따르려고 노력해봐. 그게 큰 힘이 되더라. 오늘부터 일단 엄마 말씀부터 경청해봐, 당장 반찬이 달라질 걸?
‘지금까지 이런 TMI(too much information)는 없었다!’로 시작한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독자 분들의 요청에 다시 시작합니다. TMI 시즌 2는 “재밌게 읽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까지 됐다”는 말에 ‘어쩌면 쓸모 있을’을 타이틀로 삼았습니다. 과학, 문학, 역사,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세기의 라이벌들로 재밌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그저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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