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한 두 거물이 있었어.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지. 둘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출중한 경영 수완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고 말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기부 문화에 앞장섰다는 공통점이 있어.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자선사업 부문에서 1순위로 거론되는 빌 게이츠도 이 두 조상님이 설계한 기부 방식을 벤치마킹했다고 하지. 하지만 일각에선 ‘카네기와 록펠러가 이룬 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 값’이라며 둘을 기부 천사로만 포장하는 건 매우 곤란~하다고 주장한단다. 자, 그럼 지금부터 두 얼굴의 어르신, 카네기와 록펠러를 만나보자고!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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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강도 귀족’이라고?(feat. 카네기)
이거 서운하구먼. 그 오명에서 벗어나려 갖은 애를 썼는데 아직도 날 그렇게 기억하다니 원.
미국에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강도 귀족(Robber baron) 시대’라 불러. 이 시기 미국은 엄청난 산업화가 일어났고 그 틈을 타 어마어마하게 부를 일군 재벌들이 속속 등장했지. 대표적인 인물로는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자동차왕’ 헨리 포드, 그리고 곧 등장할 ‘석유왕’ 록펠러와 ‘철강왕’이라 불린 내가 있단다.
우리에게 ‘강도’혹은 ‘잔인한 수완가’라는 별칭이 붙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하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경쟁 회사를 무너뜨리거나 합병하며 시장을 독점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근로자들의 노동 강도를 계속해 높이면서도(내 입으로 말하려니 씁쓸하지만) 봉급을 삭감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지. 특히 지금까지도 미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노동자 탄압 사건으로 기록돼 있는 ‘홈스테드 학살사건’은 나의 뼈아픈 아킬레스건이란다.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12살에 낯선 땅 미국으로 건너온 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부를 일궈낸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나 지금 잘 살고 있나?’를 되돌아보게 됐어. 그러다 1901년, 내 나이 66살에 회사를 JP모건(그래~금융왕네)에 4억8천만 달러(현재 약 350조 원)에 넘기고 평소 생각만 하고 있었던 기부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단다.
난 자선도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고자 고심했어.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과연 뭘까? 당장의 굶주림을 모면하게 하는 건 진정한 자선이 아냐.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거야. 해답을 교육에서 찾은 난 1902년 재단을 설립해 미국 전역에 2천500개의 공공도서관을 지었고 카네기공업대(현재 카네기멜론대)를 비롯해 수많은 학교를 세웠지.
뿐만 아냐~ 너무 자랑 같아서 쑥스럽지만 뉴욕을 대표하는 음악 공연장 카네기홀도 내 작품이란다. 또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핵무기 감축 관련 연구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더 많지만 난 겸손이 최대 매력이니까 여기까지만 할게.) 죽기 전 내게 남은 돈은 고작 3천만 달러 정도였어. 재산의 90% 이상을 기부한 거지. 어때, 이쯤 했으면 그래도 ‘기부 천사’라는 애칭으로 불러줄 만하지 않니? 생각해본다고? 이런~
‘홈스테드 학살사건’ 카네기 철강 회사가 출범한 1892년 6월, 카네기 소유의 홈스테드 제강소의 노동자들은 임금을 삭감당하자 파업을 벌였다. 회사 측은 사설 용역 업체에 의뢰해 건장한 청년 수백 명을 고용했고 이들을 현장에 투입해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이 과정에서 10여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6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주(州) 방위군이 총을 들고 현장에 투입된 이후에야 이 처참한 폭력 사태가 중단됐다.
나?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의 표본이지!(feat. 록펠러)
카네기 형님 재산이 350조 원이라… 나보다 딱 20조 원 적으시네. 소소하셨고구먼. 얼마 전 풍문으로 들었는데 내가 역사상 최고 부자로 기록됐다며? 얼른 누가 좀 깨줬음 좋겠네~
나 또한 카 형님처럼 풍족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 특히 울 아빠는 전국을 누비는 사기꾼 약장수에다 부인만 셋을 거느린 사랑 많은(?) 분이셔서 툭하면 집을 비운 바람에 난 스스로 강한 삶을 개척해야만 했지. 내가 꼬꼬마 때부터 돈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랐던 이유야. 평생 동안 1센트도 놓치지 않고 회계 장부를 작성했을 정도였으니까.
1863년, 그러니까 내 나이 24살 때 난 석유가 ‘검은 황금’이 될 거라는 강한 확신으로 정유회사를 설립했어. 아니나 달라? 당시 노예 제도 폐지를 두고 벌어진 남북 전쟁은 석유에 대한 수요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고 이 기회를 틈탄 똘똘한 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기업으로 평가받는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설립해 돈을 쓸어 담았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난 경쟁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로 결심했어. 이를 위해 그야말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 정치인 매수부터 경쟁 기업 정보 빼돌리기는 물론 이윤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을 단칼에 해고하기도 했어. 결국 미국 석유 산업의 95%가 내 손아귀에 들어왔고 우리 회사가 공급하는 석유 없이는 단 한 대의 자동차도 굴릴 수 없는 형국이 됐지.
하늘이 참회할 기회를 준 걸까? 난 55살에 남은 수명 1년이라는 불치병 진단, 아니 사형선고를 받았지 뭐야. 그때 내 눈에 병원 로비의 액자에 써 있는 글이 ‘훅!’ 들어왔어.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도다.’ 그래, 이때부터야. 내 기부사업이 시작된 게. (그리고 이때부터 40년 더 살았다.) 카 형님처럼 나도 재단을 세워 대학도 건립하고(노벨상 수상자가 쏟아진 시카고대가 내 작품이야.) 개발도상국 원조, 기회 균등과 문화 발전 등 지금까지도 (난 비록 지구에 없지만) 각종 사회사업을 이어나가고 있고 누적 기부 금액은 150조 원 정도 돼. 소소하지? 재단이 계속해 일할 테니 지켜봐줘. 아직도 많은 이들은 우리의 기부를 지은 죄를 면피하기 위한 ‘쇼’라 비판한다지. 그래도 노력한 성의를 봐서 좀 예쁘게 봐주면 안 될까? 생각해보겠다고? 이런~
‘지금까지 이런 TMI(too much information)는 없었다!’로 시작한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독자 분들의 요청에 다시 시작합니다. TMI 시즌 2는 “재밌게 읽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까지 됐다”는 말에 ‘어쩌면 쓸모 있을’을 타이틀로 삼았습니다. 과학, 문학, 역사,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세기의 라이벌들로 재밌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그저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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