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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6호

EDU CULTURE |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32

아편전쟁이 야기한 ‘부먹찍먹’ 논쟁? 듣고 나면 ‘울먹’하는 탕수육의 역사

중국집에 들어간 두 절친. 비장하게 바라보는 메뉴판. ‘사느냐 죽느냐’보다 어려운 선택,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이 난제(難題)를 극복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 “탕수육 추가요~” 먹음직스런 진수성찬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소스를 들더니 바삭바삭하게 튀겨져 나온 탕수육에 휘리릭 붓는 한 친구. “야! 뭐 하는 짓이야!” “뭐하긴? 탕수육은 소스에 절여져야 풍미가 살아나!” “뭐? 탕수육은 바삭함이 생명이야. 소스에 찍어 먹으며 끝까지 바삭하게 즐겨야 하는 거라고! 이렇게 우리가 서로 다른지 몰랐다. 정말 실망이야.”
중학교 때부터 다져온 5년 지기의 우정은 이렇게 끝나고야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오늘은 너에게 그보다 더 가슴 시린 탕수육 탄생에 얽힌 역사 한 토막을 들려줄게.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튀김의 발견>

#1.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
영국이 일으킨 아편전쟁

19세기 서양에서는 중국의 비단과 차, 도자기에 대한 인기가 엄청났어. 특히 영국의 경우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해 차의 본산지 중국에서 대량으로 차를 수입해야 했어. 이를 위해 영국은 자신들의 주력 수출품인 공업품을 중국에 선보이며 무역을 통해 양국 간에 필요한 물품들을 수출하고 수입하자는 조건을 제시했지.

“헤이, 룩! 이건 우리 영국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모직물과 면직물! 베리 질김~ 노 찢어짐. 싸게 기브 유.” “여기 지금 여름이다 해~ 그거 바람 안 통해 우리 사람 쪄 죽는다 해~” 협상 결렬.

당시 중국은 영국이 제시하는 상품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어. 자국에서 생산하는 물품만으로도 자급자족이 가능했거든. 영국은 계속 중국의 화폐인 ‘은(銀)’을 주고 차를 사갈 수밖에 없었지.

영국에서 중국산 차의 인기는 고공행진했어. 당시 일반 가정의 월 수입 중 5%를 차 구매에 사용했다니 말 다했지. 영국의 은은 밑 빠진 독에 붓는 물처럼 중국으로 흘러들어갔고 계속된 적자에 참다 못한 영국은 비열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돼.

‘중국인들을 아편(마약)에 중독시키자! 인도에서 아편을 생산해 몰래 중국에 퍼뜨린 뒤 나중에 약 없이 살 수 없을 때 비싸게 넘기는 거야, 음하하하!’

영국의 계획대로 수많은 중국인들은 영국에서 대량 살포한 아편에 찌들어갔어. 뒤늦게 실상을 안 중국 정부가 이를 막으려 애썼지만 영국은 왜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느냐며 전쟁을 선포했지.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 불린 아편전쟁이 발발했단다. 그것도 1차, 2차에 걸쳐 두 번이나.




아편전쟁.


#2. 방귀 뀐 놈이 맛난 거 달라고?
젓가락질 필요 없는 탕수육의 탄생

당시 전 세계를 호령하던, 아니 호령한다고 믿었던 중국은 영국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깨졌어. 아편전쟁의 결과 막대한 전쟁 보상금 지급과 홍콩 할양, 5개 항구(광저우·샤먼·푸저우·닝보·상하이) 개항을 골자로 한 ‘난징조약’에 어쩔 수 없이 서명해야 했지.

불평등한 조약이 체결된 후, 중국의 항구는 거대한 시장에서 한몫 챙기려는 서양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뤘어. 그런데 서양 상인들에게 고민거리가 생겼지 뭐야. 젓가락을 사용하는 중국 요리를 먹기가 너무 힘들었던 거야. 거기다 왜 채소만 볶아서 주는지. “아임 디스 먹기 베리 힘듦. 딴거 없음?” “채소 몸에 좋은데 싫다 해? 그럼 잠깐 기다리라 해~ 면 삶아주겠다 해.” 오~ 스파게티? 그건 포크로 먹을 수 있겠다. 나온 음식은? 국물 가득 우육면(牛肉面).

괴로움에 몸서리치던 서양인들은 중국 요리사에게 외쳤지. “고기! 미트! 포크 팍팍 찍어 꿀꺽, 오케이?” 중국 요리사들은 왜 남의 땅에 함부로 들어와서 악마가 손에 쥘 법한 삼지창으로 찍어 먹을 요리를 만들라고 소리를 질러대는지 고개를 갸웃했어. 그렇다고 공자의 인(仁)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 사람을 굶길 수도 없으니 고민이 컸지.

요리사는 고민과 번민 끝에 돼지고기를 한입 크기로 썰어 반죽 옷을 입히고 튀겨냈어. 당시 서양인들이 즐기던 파인애플을 넣은 새콤달콤한 소스도 곁들여 냈지.

그 튀긴 고기의 이름은 침을 꿀꺽 삼키다는 뜻의 ‘꾸루로우’로 지금 우리가 즐기는 ‘탕수육’의 원형이야.





#3. 또 다른 부먹찍먹 대표주자
돈가스의 정체를 밝혀라

1868년 메이지유신 개혁을 통해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서양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던 일본은 불현듯 큰 깨달음을 얻었어. 유럽에서 공부를 하고 와도, 서양식 학교를 세우고 그들처럼 공부해도 뭔가 허전한 거야. “왜 우리는 서양인 같은 자신감이 없을까. 뭐가 문제일까….” 그리고 답을 찾아. “그래! 고기! 육식을 즐기지 않아 그들보다 덩치가 작으니 항상 위축됐던 거야!”

이후 일본왕은 친히 국민에게 선포해. “고기 마니 먹어야 하무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들에게 고기를 먹는 건 고역이었어. 1천200년 동안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만 해왔거든.

그런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자 탄생한 음식이 바로 고기를 바삭하게 튀겨낸 ‘돈가스’란다. 서양에 무릎 꿇은 역사에서 탄생한 탕수육, 서양을 닮고자 한 욕망에서 탄생한 돈가스. 비록 배경은 다르지만 둘 안에 깃든 당시 백성들의 아픔의 크기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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