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째 컴퓨터 앞에서 움직이질 않는구나! 게임은 이제 그만! 더 이상 못 참아. 마지노선을 넘었어!” “오늘 할 일 다 했어요! 잔소리, 보이콧할래요!” 이 대화 속에 오늘 살펴볼 두 인물이 등장했어. 사람 이름 비스무리한 것도 안 나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어허! ‘마지노’ 장관과 ‘보이콧’ 대위가 등장했잖니. 뭐야, 그 놀라는 얼굴은? ‘마지노선’은 사자성어 아니었냐고? 뭐…. 글자 수로 보나 어감으로 보나 오해할 만해. 그럼 ‘보이콧’은 뭐라고 설명할래? ‘반대’를 뜻하는 영어단어 아니냐고? 이제 설명해줄께!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1. 우리는 거부한다!
불의를 저지른 ‘보이콧’에 뭉쳐 싸우다
안녕? 난 영국의 식민지 아일랜드에 주둔한 영국군 대위 찰스 보이콧이라고 해. 군에서 재대한 후 아일랜드에 머물기로 한 나는 영국인 대지주 언 백작의 재산관리인으로 일하게 됐지. 난 아주 엄격하게 농민들을 관리했어. “아직도 쉬고 있어? 땅 빌린 돈을 내야 할 거 아냐!” 하여튼 인간이란 빈틈을 보이면 게을러지는 족속이니 말야.
그런데 1840년대 아일랜드의 주식인 감자에 감자역병(감자에서 발생하는 질병)이 발생했어. 대기근이 일어났고 굶어죽는 이가 속출하기 시작했지. 그렇다고 빌려준 땅에 대한 임대료를 안 받을 수는 없잖니? 농민들은 나를 찾아와 울며불며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했지만 성실한 내가 그럴 순 없지! “돈 내기 싫으면 나가!”
어라? 이것 보게~ 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어. 갑자기 농민들이 일을 안 하고 상점에서도 나한테 물건을 안 파는 거야. 심지어 우리집 하인과 하녀도 일을 그만두더라니까! 나는 영국 신문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알리는 글을 기고했지만 고용주 언 백작은 나 때문에 자신이 ‘악덕 지주’라는 오명을 얻었다며 해고를 통보했어. 그 뒤 나를 배척한 아일랜드 주민들의 행동을 내 이름을 딴 ‘보이콧’으로 명명했다나? ‘여러 사람이 뭉쳐 어떤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치는 일’이라는 아주 훌~륭한 뜻으로 말이지. 다 내 탓 아니냐고? 이봐, 원칙대로 일한 게 죄는 아니잖아~
<베니티 페어>에 실린 ‘역설적 기여의 대표주자’ 찰스 보이콧의 삽화.
#2. 전쟁의 승패는 참호가 결정한다!
최후의 방어선, 마지노선
뭣이라고? 독일의 움직임이 또 심상치 않단 말이지? 다시는 독일이 우리 국토를 유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전쟁의 관건은 참호(적의 총포탄에 의한 피해를 최소로 막고 전투를 자유롭게 수행하기 위해 깊이 땅을 파서 만든 도랑)가 얼마나 튼튼하냐에 달렸어.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지금부터 우리 프랑스는 독일과의 국경선 일대에 세상에서 제일 강한 현대식 참호를 구축한다!
아, 내 소개를 깜빡했군. 반갑네, 친구들~ 나는 프랑스의 국방 장관 앙드레 마지노라고 하네.
1913년, 36세에 프랑스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나는 당당하게 국회에 입성했지. 그런데 웬걸,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지 뭔가. 조국이 나를 부른다! 난 부사관으로 용감하게 자원 입대했고 1916년 지옥의 서부전선(독일군과 연합군이 격돌한 프랑스 동북부, 독일 편의 서쪽 전선)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역사에 남은 베르덩 전투에 참전했지.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 주를 이뤘다네. 그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 참호 속 습기와 벌레, 그 추위…. 아군과 적군 모두 불과 몇백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수년 동안 몇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일상이 반복됐고 나 또한 다리에 총상을 입고 후송되고 말았네.
그 뒤 나는 두 번에 걸쳐 프랑스 국방 장관을 지냈지. 그리고 그 악몽 같던 참호전의 경험을 토대로 1926년, 독일과의 국경선 일대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제안했다네. 독일이 비록 1차 세계대전에선 졌지만 전쟁이란 늘 대비해야 하는 법! 게다가 독일에서 히틀러라는 ‘듣보잡’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지 뭔가. 750km 길이에 160억 프랑(약 20조 원)이 투입된 ‘마지노선’은 이렇게 탄생했지.
앙드레 마지노
#3. 프랑스 수호할 철벽?
무용지물의 대명사
안타깝게도 난 내 이름을 딴 마지노선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네. 내가 죽고 4년 뒤, 1936년에야 이 위대한 철벽 요새가 완공됐거든. 국경을 따라 설치된 장벽에는 142개 요새와 352개 포대, 그리고 지하로 연결된 5천여 개의 벙커가 설치됐지. 규모가 큰 요새의 경우 1천 명 이상의 병력을 수용할 수 있었네. 전투 시설은 물론 생활 시설까지 갖춘 마지노선은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은 가장 얇은 보루의 두께도 3.5m나 됐지. 프랑스 국민들은 이제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된 게야.
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는데 히틀러가 탱크를 앞세워서 벨기에로 우회해 프랑스로 진격해 들어왔다고? 항공기까지 날아오고! 마지노선 요새에 있던 프랑스 군대가 오히려 포위당해 꼼짝달싹 못하고 죽어갔단 말이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요새가 족쇄가 돼버렸구먼, 흐흐흑.
마지노선 요새 중 일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별다른 역할을 못한 마지노선은 1970년 이전까지 핵전쟁을 대비한 대피소로 운영됐다가 차츰 방치됐다. 이 중 일부 요새는 와인 저장고나 버섯 농장으로 개조됐으며 10여 개는 관광지가 됐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최후의 보루’라는 뜻과는 사뭇 다른 마지노선의 허망했던 결과는 여전히 프랑스 전쟁사의 아픈 부분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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