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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호

EDU CULTURE |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29

앞으로 ‘역사 찌개’라 불러다오 부대찌개에 담긴 5대 전쟁 이야기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29 | 부대찌개

앞으로 ‘역사 찌개’라 불러다오
부대찌개에 담긴 5대 전쟁 이야기

며칠 전, 영국 BBC가 나를 집중 조명했다지? “한국전쟁 중 탄생한 ‘생존 찌개’인 부대찌개는 한국인에게 기쁨과 안정을 주는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로 자리매김했고, 이제는 국제적 레시피로 진화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했다나 뭐라나. 나 진짜 팬사인회라도 열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마음상하게 BBC는 날 제대로 살피지 않았어. “부대찌개는 끝나지 않은 잔혹한 전쟁을 상기시키는 음식이며 황폐한 재난에서도 빛난 창의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고 했거든. 내가 탄생하게 된 기나긴 역사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단 얘기지. 내 안에 한국전쟁과 미군만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왜냐, 난 전 세계의 역사가 녹아 있는 글로벌 푸드니까! 그러고 보니, 나 원래 세계적이었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1. 소시지, 햄을 탄생시킨 몽골의 ‘유럽 정복 전쟁’

소시지와 햄의 조상은 누구? 912호의 ‘육포’ 편을 본 친구라면 어렵지 않게 맞혔을 거야. 유럽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한 몽골의 기마부대. 그 무시무시한 기동력은 육포에서 나왔다고 알려줬었지. 역사적으로 전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둘 이상의 국가 사이에 무력을 동반한 침략이 자행되고 폭력이 난무한 상태를 가리켜. 참혹한 아픔을 불러오는 한편 각국의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해.

몽골군의 전투식량이었던 육포는 유럽인들에게 지옥맛을 보게 했지만 그 뒤 소시지와 햄으로 발전 돼 유럽인들의 입맛을 책임졌지. 어디 그뿐이니? 독일 함부르크 노동자들은 빵과 빵 사이에 햄을 넣어 먹는 간편식을 개발했고 이 음식이 미국으로 건너가 함부르크, 영어로 ‘햄버거’가 됐다는 거 아니니. 이제 겨우 소시지와 햄만 소개했는데 벌써 몽골, 유럽, 미국까지 나와버렸네~.


#2. 만두를 탄생시킨 제갈 량의 ‘남만정벌’

촉한(蜀漢)의 유비, 관우, 장비 삼총사와 위(魏)나라의 조조, 오(吳)나라 손권의 활약이 돋보이는 소설 <삼국지연의>, 보통 <삼국지>라 불리지. 그러나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유비가 삼고초려로 모셔온 브레인, 제갈량일지도 몰라.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지략가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제갈량은 지금까지도 ‘넘사벽’오라를 뽐내며 현명한 이를 비유하는 대명사로 쓰이니까. 그런데 그거 알아? 간식으로 자주 먹는 만두도 제갈량의 지략에서 탄생했다는 거.

당시 제갈량은 남만이라는 곳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났어. 함께 있던 사람들이 남만의 풍습에 따라 사람의 머리 99개를 물의 신에게 제사지내야 한다고 전했지. 제갈량은 밀가루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음식을 빚어 그것으로 제사를 지냈고 그러자 풍랑이 가라앉았다고 해. 여기서 만두란 이름이 나왔는데, ‘속일 만(瞞)’과 음이 같은 ‘만(饅)’을 빌려 ‘만두(饅頭)’라고 했단다.


#3. 빨간 김치를 탄생시킨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의 일당백 활약으로 명성이 자자한 ‘임진왜란’. 일본은 이때 포르투갈인들에게 전수받은 ‘조총’으로 무장하고 조선에 쳐들어왔어. 임진왜란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전쟁 중 하나로 꼽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지금 우리 식탁과 입맛을 빨갛게 지배하고 있는 ‘고추’와 만난 계기이기도 해.

고추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인데 신대륙 발견, 아니 침략으로 인해 유럽으로 전파됐고 그 뒤 먼저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게 전해졌지. 재밌는 건 정작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먼저 고추를 맛봤으나 그 매운맛에 놀라 요리에 사용하지 못했단 사실. 게다가 고추는 조금만 습해도 잘 썩는, 고도의 재배 기술을 요하는 작물이라 활용이 쉽지 않았겠지.

하지만 우리가 누구? 의지의 한국인, 아니 조선인이잖아. 결국 고추의 대량생산에 성공했고 그 뒤 수확한 고추를 말려 가루를 내는 획기적인 기술까지 선보이며 우리의 김치는 지금과 같은 빨간 옷을 입게 돼. 그럼 그전 김치는 하얗고 안 매웠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려. 하얗기는 했지만 산초라 부르는 초피를 넣어 매운맛을 냈거든. 초피는 지금 고추에 밀려 추어탕에 얼얼한 매운맛을 담당하는 정도라나 뭐라나. 근데 추어탕도 고춧가루가 점령해 빨갛게 됐다는 건 모른 척해주자.


#4. 중국 청(淸)나라에서 대파와 배추를 들여온 ‘임오군란’

‘임오군란’은 조선 말 고종황제의 개화 정책으로 설치된 신식군대와 기존 구식군대 간의 차별대우로 인해 발생한 난을 말해. 고종은 임오군란의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SOS를 보냈고 청은 즉시 군대와 상인을 파견해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했어. 그 뒤 화교들이 본격적으로 조선 땅에 들어와 장사를 시작했는데 이때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두 종류의 채소가 들어오게 돼. ‘배추와 대파’가 그 주인공이지.

아니, 그전부터 배추김치를 먹었는데 뭔 소리냐고? 임오군란 전 배추는 반결구형 배추라 불리는 조선배추, 즉 다른 품종이었어. 지금 김치를 담그는, 속이 꽉 차 아삭아삭한 맛이 나는 배추가 아니었단 말씀. 대파도 이때 들어와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고, 고추까지 합세하며 이 채소 ‘삼총사’가 우리의 김장 문화를 새롭게 만들었지.


#5. 부대찌개 탄생을 가져온 ‘한국전쟁’

한반도를 둘로 쪼갠 한국전쟁. 부대찌개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가 있던 경기 의정부시에서 탄생했다고 해. 미군이 들여온 햄과 소시지가 일반인들에게 전달됐고 이를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사람들은 신김치와 함께 넣고 끓여 특유의 맛을 내는 찌개를 개발하게 된 거지. 그래서 이름하야 부대(部隊)찌개 아니니. 처음에는 남은 음식을 넣어 끓이는 잡탕 느낌이 강했지만 이젠 부대찌개 전문점도 여럿 거느릴 만큼 대표적인 한식 메뉴로 자리 잡았어.

부대찌개 한 그릇 안에 들어가는 재료에는 이렇듯 방대한 세계의 역사가 담겨 있어. 오늘 너와 내가 먹은 음식 하나하나마다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하지. 맛집을 방문해 먹음직스런 음식을 맛보며 인증숏을 남기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되겠지만, 그 음식의 자기소개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에 혼밥도 외롭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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