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27 | 키위
과일 이름이 아니었다?
원조보다 더 유명해진 ‘가짜’ 키위
‘키위~ 키위~’ 왜 뜬금없이 과일 이름을 불러대냐고? 이봐, 이건 내 울음소리야. 비둘기 ‘구구’, 오리 ‘꽥꽥’, 병아리 ‘삐약삐약’처럼 난 ‘키위키위’하는 새란 말씀!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전 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오직 뉴질랜드에만 서식하는 특별한 존재야. 내가 뉴질랜드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국조(國鳥)로 승격된 이유지. 이에 보답하고자 나는 조국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화폐와 우표, 상표 등에 무상으로 출연하며 재능기부에 이 한 몸을 불사르고 있었어. 그 과일이 내 이름을 강탈(?)해 가기 전까지 말야.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1. 중국에서 온 ‘듣보잡’ 손님
‘양타오(羊桃)’ 뉴질랜드에 상륙하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바나나, 파인애플, 체리 같은 수입 과일은 좀 사는 집 아니면 먹기 힘들었다는 사실, 알고 있니?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88>에서 바나나 하나를 가족 수대로 잘라먹었던 건 설정이 아닌 사실이었단 말씀이야.
이후 수입자율화 정책이 시행된 덕분에 지금은 국산 과일보다도 더 싼 값으로 수입산 과일을 먹고 있지. 이 밖에 또 달콤한 유혹으로 너를 매혹시킨 수입 과일이 혹시 뇌리를 스쳐지나갔나 친구? 과거에는 달달한 초록색 과육만 존재했지만 지금은 신맛은 덜고 단맛은 더한 노란색도 데리고 와서 맛과 함께 건강까지 책임진다고 광고하는 그 과일.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의 대표주자 ‘키위’!
사실 과일 키위의 본명은 ‘양타오’야. 느낌이 팍! 오지? 그래, 이 친구의 고향은 바로 중국이란다. 중국 사람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아싸’ 과일 양타오. 어떤 경위인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1906년 양타오는 뉴질랜드 땅에 심어졌어. 그런데 어머나, 뉴질랜드의 기후가 이 친구에게 딱! 맞았던 거야. 이를 눈여겨본 종묘업자 헤이워드는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크기도 굵고 당도도 높은 과일로 양타오를 둔갑시켰어.
1940년대에는 지금의 품종으로 대량 재배에 성공해 수출 상품으로 국가에게 ‘찜’당했지. 이름도 양타오에서 ‘차이니즈 구스베리’로 개명했고 말야. 당시 뉴질랜드는 주요 수출 품목이 ‘양’뿐이어서 늘 새로운 상품 개발에 목을 매고 있었거든. 양타오가 구세주가 된 거지. 그러고 보니 둘 다 ‘양씨’네?
#2. ‘차이니즈 구스베리?’ 안 먹어!
잠깐만요, 얘 본명은 사실 ‘키위’예요
‘키위새’와 양타오 ‘키위’
1952년 드디어 영국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차이니즈 구스베리’, 양타오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호평을 이끌어냈어. 이에 고무된 뉴질랜드 농민들은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부푼 희망을 안고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야심차게 도전했지. 그런데 어라? 사람들이 ‘이건 뭐지?’하고 관심을 보이며 왔다가 과일 이름을 듣고는 휙! 가버리는 거야. 그러더니 양타오를 ‘수입 금지’ 물품 목록에 집어넣기까지 했지.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당시는 냉전시대(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이 동·서로 나뉘어 대립하던 시대). 과일 이름이 문제가 된 거지. “왓? 차이니즈 구스베리? 공산국가 과일? 안 먹어!” 애써 키운 과일이 다 버려지게 된 순간이었지, “저… 생각해보니 얘 이름은 ‘차이니즈 구스베리’가 아니었어요. 키위! ‘키위’가 본명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니 이 사람들이 내 몸통 부분이 양타오와 비슷하게 생긴 게 그때 갑자기 떠올랐다나? 게다가 내 이름 ‘키위’는 뉴질랜드인들만 알고 미국인들에게는 낯설어 인기를 끌 것 같았다나 뭐라나.
결과는? 네가 알다시피 난 키위라는 이름을 양타오에게 뺏겼어. 흑흑.
#3. 양타오의 금의환향(錦衣還鄕)
뉴질랜드 대표 과일로 고향 중국에 수출되다
제스프리의 그린키위와 골드키위.
이후 1997년 뉴질랜드 농민들은 ‘제스프리’라는 마케팅 회사를 설립해 전 세계로 양타오, 즉 키위를 수출하기 시작했고 1998년에는 신맛을 줄이고 당도를 높인 골드키위 개량에 성공해 또 하나의 수출 효자 품목을 만들어냈어.
양타오의 고향 중국에서도 이 두 친구를 수입해 즐겨 먹고 있는 상황이니, 그야말로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양타오의 금의환향이라 할 수 있지.
이제 슬프게도 사람들은 나 키위새의 존재는 잊어버린 듯해. 이 글을 읽은 너는 꼭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 나는 날개와 꼬리가 없어 날지 못하고 겁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아 밤에만 잠깐 먹이를 찾으러 나오는 야행성 조류야. 한때 멸종위기 동물로 분류됐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
언젠가 네게 ‘키위~키위~’ 하며 예쁘게 우는 소리를 들려줄게. ‘키위’ 하면 과일이 아닌 내가떠오르도록 말야.
댓글 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