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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호

교과서로 세상 읽기 22 | 블랙홀

지구 코앞 ‘조용한 블랙홀’ 물리학 새 지평 열 비밀 열쇠?

교과서로 세상 읽기 22 | 블랙홀

지구 코앞 ‘조용한 블랙홀’
물리학 새 지평 열 비밀 열쇠?

우주의 모든 별은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겪는다. 지구도, 태양도 예외는 없다. ‘블랙홀(Black hole)’은 글자 그대로 ‘검은 구멍’을 뜻하며 별이 죽기 직전 폭발을 일으킨 뒤 남은 물질이다.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중력장이 극단적으로 강한 공간’이라 하겠다. 즉 엄청나게 강한 중력으로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린다. 아무 별이나 블랙홀이 되진 않는다. 태양보다 무거운 별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빛조차 삼켜버리는 블랙홀은 관측이 어려워 지금껏 그 생김새를 상상만 했을 뿐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지난해 세계 과학사 최초로 블랙홀 촬영에 성공, ‘2019 과학계 최대 업적’으로 선정됐다. 지난 5월 6일에는 유럽남방천문대(ESO) 연구진이 지구와 1천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블랙홀을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맨눈으로도 관찰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로 학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보이는 우주와 블랙홀. 왜 이토록 전 세계의 큰 화두가 되고 있는지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참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인류 최초로 촬영에 성공한 블랙홀 사진.

TV 뉴스와 신문기사로 본 세상



교과서로 뉴스 이해하기

무한한 상상도 빨아들이는 검은 구멍, 블랙홀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니? ‘상대성 이론과 블랙홀을 완벽히 담아낸 교과서’로 평가받는 작품이지. 영화의 절정은 주인공 쿠퍼가 탄 우주선이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야. 어떤 돌발 상황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짙은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가던 쿠퍼가 자신이 지구에서 떠나기 직전의 시간과 공간으로 연결되는 장면에선 탄성이 절로 터지지. 이는 블랙홀이 그 어떤 상상도 가능할 만큼 신비로운 개념이자 미지의 영역이라는 걸 모든 이들이 수긍했기에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어.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중력에 의해 빛이 휜다’는 혁명적인 주장에서 도출됐는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블랙홀 이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

사실 블랙홀은 무명의 독일 천재 물리학자 칼 슈바르츠쉴트의 작품이지. 슈바르츠쉴트는 1차 세계대전 참전 중에 일반 상대성 이론의 ‘중력장방정식’을 풀어 아인슈타인에게 보냈어. 그는 항성이 정지 상태에 있다는 전제하에 강한 중력을 가진 별은 시공간이 엄청나게 휘어 있는 부분이 있고 빛도 빠져나오지 못해 암흑처럼 보인다는 이론을 도출해냈지.

그로부터 53년 뒤 미국의 물리학자 존 휠로가 이 암흑의 공간을 ‘블랙홀’이라 명명했고 1971년에는 블랙홀이 이론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그 형상을 확인하지는 못했어. 그러나 블랙홀이 2019년 드디어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고 앞서 설명했지? 고등학교 <통합과학> 1단원 ‘우주의 시작과 원소의 생성’을 보면 블랙홀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돼 있어.



다시 읽는 블랙홀

우주 팽창론부터 빅뱅 우주론까지
<통합과학>은 ‘빅뱅 우주론’으로 포문을 열고 있어. 너무나 짤막하게 소개됐지만 내용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아. 빅뱅 우주론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우주 팽창론’을 알아야 해. 지금은 당연시되는 우주 팽창론이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단다. 마치 지동설의 아픈 과거처럼 말야.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당시 최고의 지성들이 ‘우주 정지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에드윈 허블이라는 외모는 아이돌급에 두뇌는 아인슈타인인 엄친아가 나타나 이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지. 거짓말에도 정도가 있다고? 당시 허블의 별명이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 ‘아도니스’였다니까 그냥 좀 믿어라.

1929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허블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천체가 적색편이 현상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어. 적색편이 현상이란 관측자를 기준으로 멀어지는 물체의 색깔이 조금 더 붉게 보이는 현상을 뜻해. 이는 멀어지는 속도만큼 방출되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기 때문이지. 그럼 반대로 관측자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는 푸르게 보일까? 맞아. 다가오는 속도만큼 빛의 파장이 짧아지기 때문에 푸른빛을 띠게 돼.

허블은 예외 없이 모든 천체가 적색편이 현상만을 보인다는 것, 게다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일수록 적색편이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어. 이게 뭘 의미하겠니? 그래.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거야. 우주 정지론은 틀렸어. 아인슈타인은 대과학자답게 ‘일생 최대의 실수’를 저질렀다며 정중히 오류를 인정했지.

이에 멈추지 않은 허블의 호기심. 우주가 팽창한다면 초기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간을 돌려보자. 영상을 뒤로 돌리듯 끊임없이 돌려 0의 시간에 다다르면 우주 전체가 점 하나에 담기지 않을까? ‘빅뱅 이론’은 이렇게 탄생했단다.


질량이 큰 별의 진화 과정.



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블랙홀
마치 인간처럼 별도 탄생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을 산단다. 죽음에 이르러 폭발하는 별을 ‘초신성’이라 하는데 별의 죽음은 곧 또 다른 탄생을 의미해. 먼지가 된 별의 잔해는 우주 공간에 퍼지고 이렇게 발생한 수많은 먼지와 기체, 행성 등의 ‘성간 물질’들은 별과 별 사이에 존재하면서 새로운 ‘원시별’이 태어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 갓 태어난 원시별이 수축을 시작하면 핵 부분의 밀도가 증가하게 되는데 밀도가 한계에 다다르면 수소와 헬륨의 핵융합 반응이 시작되고 그 후 항성, 즉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되는 거란다. 원시별은 세월이 흘러 어른별이 되고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 죽음을 맞으며 또 다른 원시별의 탄생을 돕지.

빛나던 별이 수명을 다하면 부풀어 올라 거대한 붉은 별이 되는데 이를 ‘적색 거성’이라고 해. 적색 거성의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가스가 우주 공간으로 차츰 빠져나가면서 거기에 조그마한 흰색별이 남게 되는데 이게 바로 ‘백색 왜성’이야.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백색 왜성의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고 더 이상 빛을 내지 않는 ‘흑색 성운’이 되지. 먼 훗날 우리의 태양도 이렇게 최후를 맞이할 거야. 엄청난 빛을 내는 초신성의 폭발은 방대한 양의 물질을 우주 공간으로 방출하는데 이때 남은 중심부는 밀도가 큰 ‘중성자 별’이 돼. 폭발 후 질량은 그대로 보존한 채, 크기만 엄청나게 줄어들어 수축의 정도가 심해지면 빛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의 무시무시한 중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게 바로 블랙홀이지.



한걸음 더 생각하기

블랙홀 발견의 의의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너무 막연하다면 태양과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만 놓고 생각해보자. 현재 우주의 크기를 1010배만큼 줄이면 태양은 딱 귤만 한 크기가 돼. 그 귤을 광화문광장 한가운데 내려놓고 15m 정도를 걸어가. 한 스무 걸음 정도? 거기에 모래알 한 톨을 내려놓으면 그게 지구야.

거기서 또 80m를 더 걸어서 체리씨, 목성을 내려놔. 이제 크기가 좀 가늠이 되니?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은 센타우루스 자리의 ‘프록시마’야. 여기까지는 같은 셈법으로 4천km 떨어져 있어. 또 다른 귤 하나를 들고 광화문에서 인도의 도시 콜카타까지 일직선으로 걸어가서 도착해 귤을 내려놓으면 그게 프록시마 자리야. 태양과 프록시마가 위치한 우리은하의 중심부까지 가려면? 거기서 다시 2천600만km를 가야하니까….

그만하자. 우리은하의 크기도 이러할진데 우주의 크기는 말해 뭐하겠니. 은하계에 담긴 블랙홀의 숫자만 수억 개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된다니 원.
블랙홀의 발견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단다. 종전까지는 전파망원경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확인만 했을 뿐이었지만 이제 화상으로 직접 관측하게 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다시 한 번 확고하게 검증했다는 것. 또 하나는 지구 앞마당에서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블랙홀 이론과는 다른 양상의 블랙홀을 찾아냈다는 거야.

블랙홀은 주변의 가스를 삼키면서 뱅글뱅글 회전할 때 X선을 표출하는데, 이것이 블랙홀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돼. 일반적인 별이 눈으로 보이는 가시광선을 뿜어내 존재를 알린다면 블랙홀에선 X선이 그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지.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블랙홀에선 특이하게도 X선이 나오지 않았어. 이는 블랙홀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됐음을 의미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블랙홀에 커다란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관여하는 에너지의 크기가 인간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엄청난 값을 갖기 때문이야. 과학자들은 그 상상 불가의 에너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의 여러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새로운 물리학의 지평을 열 것이라 예측하고 있지. 또한 블랙홀이 거대한 미래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단다.


우주 탐험, 쓸모없다?
우리의 몸은 물 탄소 암모니아 석회 인 염분 질산칼륨 황 불소 철 규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수십억 년 전 초신성 폭발로 우주를 떠돌던 별의 잔해들이 뭉쳐져 지구를 만들고 너와 나를 만든 거야. 우리 혈액 속 요오드 철 칼슘도 모두 우주가 준 선물이지. 과학자들은 오랜 시간 생명의 기원인 우주라는 신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에 필요한 신소재를 개발해냈어.

우주 탐험에 박차를 가할수록 인간의 삶은 점점 윤택해졌지. 향긋한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 머신부터 정수기, 적외선 귀 체온계, 편의점과 마트의 문 없는 냉장 진열대, 전자레인지, 냉동건조 식품, 공기청정기, 진공청소기, 병원 CT 촬영기와 MRI 영상기, 무균실의 중환자실, 화재 경보 장치, 내비게이션…. 여기까지만 할까?

<코스모스>의 지은이 칼 세이건은 “블랙홀 자체가 사실상 독립된 우주일 수 있으며 우리 우주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우주들이 존재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도 방대한 블랙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어. 또한 먼 훗날 인류가 블랙홀을 통해 행성과 행성, 은하와 은하 사이를 넘나들며 휴양을 보내는 모습을, 블랙홀 근방에서 성장할 위대한 ‘은하 문명’을, 그리고 결국 우주가 하나 되는 미래를 꿈꾼다고도 전했지.

무한한 매력이 담긴 우주, 우리은하에서 발견된 블랙홀은 어쩌면 세이건이 꿈꾼 미래의 첫 단추일지 몰라. 혹시 아니, 블랙홀 여행이 가능한 날이 성큼 다가올지 말야.

뉴스는 넘치지만 의미를 제대로 알기는 더 어려워졌죠. 청소년의 실생활과 밀접하거나 알아두면 언제고 도움이 될 뉴스들을 ‘콕’ 집어서, 교과서 개념과 연결해 쉽게 읽어주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중·고등학생의 눈높이로 풀어보고 싶은 이슈가 있다면 내일교육(lena@naeil.com)으로 언제든 제보해주세요.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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