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많이 팔린다는 기호품. 한국인이 삼시 세끼 밥보다 더 챙겨 먹는 식품이자 주식보다 비싼 값을 치르기도 하는 음료. 이 모든 것이 나 커피님을 가리키는 수식어지.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은 세계 6위,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야. 별다방이라 불리는 스타벅스부터 블루보틀·엔제리너스·이디야 등 열 손가락은 물론 발가락까지 동원해도 브랜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 하지만 그렇게 많이 마시면서 누구 하나 나란 존재가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해하지 않더라는 말씀이야. 이제부터 나 커피님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마시는 즐거움>
# 목동(牧童)의 위대한 발견
염소의 열매, 커피로 탄생하다
때는 6~7세기, 아프리카에 있는 에티오피아였지. 그날도 염소들은 어김없이 나에게 왔어. 날 먹으면 아무리 얌전하고 순한 염소라도 갑자기 슈퍼 염소처럼 힘이 불끈 솟는지 길길이 날뛰더라고. 그러기를 몇 날 며칠 반복하는데 이 염소들을 돌보는 목동이 그 모습을 주시하다가 어느 날 내 붉은 열매를 먹어본 거야. 그랬더니 ‘띠용~’ 곧 온 신경이 또렷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꼈지.
이 착한 청년은 혼자만 비밀을 알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날 몇 알 따서 이슬람 수도원의 수도사를 찾아갔단다. 목동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던 수도사가 뭐라고 했냐고? 헐~ “야! 그럼 그건 악마의 열매잖아!” 라며 나를 불구덩이에 던져버리더군. 주목! 너희는 지금 역사적인 커피 로스팅(커피콩을 볶는 것으로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을 생성하는 공정) 탄생의 순간을 듣고 있는 거야. 불속에서 타오르는 나의 현란한 향기에 취한 수도사는 ‘오 마이 알라’를 외치더니 바로 수거 작업에 들어갔어. 그러고는 불에 잘 볶아진 나를 물에 타서 마셔봤지. 결과는? 당연히 내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지. 여기까지가 바로 나 커피님의 탄생 설화야. 알아 둬~
# 전쟁을 통해 건너온 커피
이슬람의 음료, 유럽에 첫발을 딛다
이슬람 수도사들 사이에 내 소문은 빠르게 전파됐어. 곧 이슬람 문화권 전 지역에 나 커피님이 공급되기 시작했지. 내가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아낸 그들은 야심한 밤에 진행되는 종교 의식을 치르기 전에 모두 한 잔씩 날 마시더군. 이때부터 야근의 역사가 시작된 거지.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됐는데, 왜 커피 하면 유럽이 먼저 떠오르게 된 걸까?
1683년, 현재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에서 신성로마제국과 오스만투르크(터키)가 격돌한 ‘빈 전투’가 발생해. 20만 명의 오스만투르크 병사가 도시 전체를 포위했고 빈의 왕은 성 밖으로 대피했어. 전투를 지휘한 오스만투르크의 재상 무스타파 파샤는 저항하는 빈 시민들을 주시하며 여유롭게 나를 홀짝거리며 항복 선언을 기다렸단다.
빈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왕이 지원군을 이끌고 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었어. 지원군이 오는지 소식 좀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20만 적군을 뚫고 누가 와서 이야기를 전해주겠냐고~ 그런데 있었어! ‘게오르크 콜시츠키’. 폴란드 출신 상인이며 오스만투르크어도 끝내주게 잘했던 인물이지. 역시 외국어는 힘이야! 빈 시민들의 운명이 걸린 편지를 가슴에 품고 그는 적진으로 뛰어들었어. 그런데 이 사람, 생김새도 이국적이었나봐. 적군에게 발각됐음에도 불구하고 오스만투르크 사령관이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 한다며 나를 대접하고 주변에 기독교인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주기까지 했다네. 결국 편지는 성공적으로 전달됐고 때맞춰 달려온 폴란드군은 오스만투르크 군대를 몰아냈지. 하도 급하게 도망가는 바람에 오스만투르크 병사들은 가져온 것들을 죄다 버리고 갔어. 거기 500자루나 되는 나 커피님이 ‘떡!’ 하니 있었지.
나의 위대함을 모르는 이들이 다른 물건 챙기느라 바쁠 때 콜시츠키가 말했지. “제가 이거 가져도 돼요?” 그리고 오스트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차렸어. 내가 써서 싫다는 유럽인들을 위해 우유를 넣은 카푸치노와 빈 전투의 승리를 회상하게끔 오스만투르크를 상징하는 초승달 문양을 본뜬 크루아상을 곁들여 팔았지. 그 커피하우스의 이름이 그 유명한 ‘블루보틀’이란다.
# 사탄의 음료가 뭐 이리 맛있어?
죄 사함 받은 커피, 근대의 포문을 열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날 처음에 푸대접했어. “이렇게 시커먼 걸 어떻게 마셔!” 라며. 음료라고는 술밖에 모르던 사람들은 급기야 날 ‘사탄의 음료’로 불러대더군. 이슬람에서 건너왔다는 이유로 마시면 죽는 ‘사약’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어. 실제 스웨덴 국왕은 사형수에게 ‘형벌’로 나를 하루 3번 한 사발씩 먹였다니까. 하지만 매력은 감출 수 없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식인과 예술가들부터 내 진정한 가치를 알아봤어. 역시 깨어 있는 자들은 달라~
그러나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이들은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트 8세에게 사악한 커피를 마시는 걸 금지시켜달라고 청원하지. 결정을 내리기 전 교황은 나를 마셔보기로 결심했어. 한 잔 쭈~욱! 오호라, 너무 맛있는 거지. “이 사탄의 음료에게 세례를 주어 기독교의 음료로 명하겠노라!” 내가 유럽을 정복하게 된 역사적 순간이야.
이후 나는 술에 취해 몽롱했던 유럽인들을 깨웠고 나를 파는 커피하우스는 토론과 예술 활동의 장소로 탈바꿈하지. 그러면서 이성에 근거한 유럽의 근대 철학이 탄생하게 돼. 나 커피의 위대함이 유럽과 세계를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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