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인증
구독자명
독자번호
* 독자번호는 매주 받아보시는 내일교육 겉봉투 독자명 앞에 적힌 숫자 6자리입니다.
* 독자번호 문의는 02-3296-4142으로 연락 바랍니다.
플러스폰 이벤트 참여
자녀성함
* 플러스폰 개통 시 가입할 자녀의 성함을 적어주세요(필수)
* 개통 시 자녀의 이름으로 가입하셔야 합니다(자녀 본인이 직접 가입 또는 학부모가 대리 가입 가능)
결혼식 하면 누구든 같은 장면을 떠올릴 거야. 생을 통틀어 가장 예쁘게 화장을 하고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랑. 제목은 모르지만 유치원생들도 알고 있는 결혼식 단골 곡 ‘딴딴따단~ 딴따다단~’까지. 그런데 한 번이라도 궁금해본 사람 손 번쩍! 흰색 웨딩드레스와 <결혼행진곡>, 이 정형화된 예식 문화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놀라지 마~ 이 모든 것은 19세기 영국 왕실의 두 모녀가 이뤄낸 산물이야. 엄마는 드레스를, 딸은 음악을 맡았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줄게.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 알고 보면 소녀감성
빅토리아 여왕
늘 소개만 받다가 소개를 하려니 어색하네~.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대영제국과 아일랜드 연합왕국 그리고 인도를 64년간 다스린 여왕이 바로 나야. 사람들은 내가 통치했던 그 시대를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른단다. 홍홍~ 너희들이 배우는 역사책에서는 아마 그때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며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라 부른다지?
원래 나는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저만치 멀리 있었어. 그런데 웬걸, 당시 숙부며 사촌들이 줄줄이 저 세상으로 간 거야. 당시 막 18살이 된 나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하며 여왕의 자리에 올랐지. 대영제국의 미혼 여왕이라니! 얼마나 많은 나라의 왕과 왕자가 구혼을 해왔을지 상상이 가니? 내가 누구를 선택할지는 세기의 관심사였어. 그러나 그 누구도 눈에 차지 않더라고. 그러다가 띠로리~ 어느 날 운명처럼 독일계 왕족인 동갑내기 외사촌 앨버트를 만난 거야. 그리고 그날 저녁 생전 안 쓰던 일기를 썼지. “앨버트는 정말 잘생겼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정말 쾌활하다는 것이다.” 난 첫눈에 사랑에 빠졌어. 앨버트는 적극적인 나의 구애에 결국 두 손을 들었고 난 만세를 부르며 결혼식을 준비했어. 어떻게 해야 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일까?
당시의 웨딩드레스는 파란색·분홍색·노란색·금색·은색에 심지어 검은색까지 정말 다양했지. 하지만 최고의 신부가 되고 싶었던 나의 선택은 흰색이었어. 시시하게 흰색이 뭐냐고? 무식한 소리! 당시는 천을 진한 색으로 물들이는 염색 기술보다 하얗게 만드는 결표백기술이 더 어려웠단 말씀! 하얀 드레스가 얼마나 비쌌는지, 들으면 깜짝 놀랄걸? 심지어 신부의 12명의 들러리 공주들까지 모두 하얀 드레스를 입었다니까! 그날 결혼식장에서 흰색이 아닌 건 내 사랑 앨버트가 선물한 파란색 브로치뿐이었어. 내 초상화를 봐봐. 파란 브로치와 하얀 드레스가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니?

# 순백의 결혼식, 유행이 되다
밴드웨건 효과
지금도 영국 왕실은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지? 나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말야. 홍홍~ 꽃같이 예뻤던 나는 당시 모든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단다. 내가 결혼식에서 입은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당연히 여성들의 로망이 됐지. 처음엔 돈 많은 귀족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다 20세기 들어 표백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민 아가씨들도 ‘하얀 드레스를 입은 결혼’ 이라는 로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됐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 이제 전 세계 신부들은 만국 공통으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지. 이런걸 유식한 말로 ‘밴드웨건 효과’라고 해. 너희들도 좋아하는 스타가 입은 옷은 예뻐 보이고 사고 싶지? 그게 바로 스타를 섭외해 광고를 하는 이유란다. 결혼식에서 울려 퍼지는 ‘딴딴 따단~ 딴따다단~’은 뭐냐고? 그건 우리 딸이 설명해줄 거야.

# 내 결혼식의 곡은 내가 고른다
빅토리아 공주
우리 엄마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유행시킨 이야기 잘 들었지? 난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공주야. 헷갈리면 곤란해.
난 17살에 프로이센의 꽃미남 왕자 프리드리히와 결혼하게 됐지. 뭐 이리 빨리 결혼을 했냐고? 이 어처구니없는 미모 때문이지. 당시 10살이었던 나를 우연히 본 프리드리히가 줄기차게 우리 부모님께 구애를 했기 때문이야. 대영제국의 장녀인 나는 잊지 못할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고 멋진 음악이 그 답이라고 여겼지. 내가 결혼식 곡을 선택하기 전에는 예식에 정해진 연주곡이나 노래는 없었어. 바그너의 광팬이었던 내가 신부 입장 때 선택한 곡은 오페라 <로엔그린> 중 3막의 <축혼합창곡>이야. 뭐? 이 곡이 오페라의 일부인 줄 몰랐다고? 사실 이 곡을 선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반대 의사를 표했어. <로엔그린>은 비극적인 작품이거든. 한 번 들어봐야겠다고? 그래. 4시간이 넘는 곡을 졸지 않고 들으며 <축혼합창곡> 부분을 찾아내면 500원을 주겠어. 신부와 신랑이 희망 찬 미래를 향해 퇴장할 때 울리는 곡으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선택했지. 멘델스존의 대표작 <한여름 밤의 꿈>에 수록된 곡이란다. 그 뒤 이 두 곡은 마치 결혼식 음악의 모범 답안처럼 전 세계의 모든 결혼식에서 울려 퍼지고 있지.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바그너는 반유대주의자이자 히틀러가 사랑한 음악가야.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 강제수용소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밤 낮으로 틀었다는 사실은 유명하지. 그런 이유로 최근까지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음악 연주가 금지돼 있었어. 반면, 멘델스존은 유대인이야. 바그너는 멘델스존의 음악을 지휘하는 것도 끔찍해했다지? 100년이 넘도록 앙숙지간인, 이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의 곡이 나로 인해 가장 행복한 결혼식장에서 낭만적 화합을 이루고 있는거야. 어때? 엄마와 내가 선도한 결혼식 이야기를 알게 됐으니 앞으로 결혼식장에서 좀 유식해 보일 수 있겠지?


댓글 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