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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호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10 제멜바이스

“손 씻고 수술하자”고 했다가 따돌림 당한 남자, 제멜바이스

바위에게 무참히 깨진 계란은 그 계란 하나로만 보면 실패다. 그러나 수많은 계란들이 깨져 바위를 더럽히고 부식시키는 역사의 과정 전체로 보면 이는 성공의 일부가 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인류가 받아들이기까지 10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오늘날과 같은 수술실이 생기기까지 수천 년간 진행된 인류의 죽음이 있었다. 세균과 감염의 실체를 알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다. 여기, 환자 수술 전 의사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동료 바위들에게 무참히 깨진 첫 계란 ‘제멜바이스’를 만나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인류를 구한 항균제들> <미생물군 유전체는 내 몸을 어떻게 바꾸는가>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그저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것뿐이었다.” - 이그나츠 제멜바이스(1818~1865)



# 수술은 곧 죽음?!
합병증이라는 공포
어이쿠! 이봐 친구~ 수술이 끝난 지 얼마 안 됐구나. 맹장 수술이라니, 많이 아팠겠다. 이제 푹 쉬면 금방 회복될 거야. 지금처럼 수술실에 사람들이 안심하고 들어간 역사가 150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옛날 사람들은 수술을 안 받았냐고? 아니, 인류는 늘 병마와 싸워왔고 고대부터 외과 수술은 꾸준히 진행돼왔어. 원시인의 두개골에서도 수술의 흔적이 발견됐으니 인류의 역사는 곧 수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내가 외과의사로 활동하던 시기인 19세기에도 수술은 빈번했지만 인류에게는 여전히 두려운 치료 방법이었어. 수술할 때 발생하는 통증을 해결할 만한 적당한 방법도 없었고, 만약 수술이 잘됐다 하더라도 합병증으로 죽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야. 합병증은 대개 수술 부위가 곪으면서 열이 나고, 서서히 그 부위가 아프기 시작해 여러 증상으로 발전하다가 결국에는 의식을 잃고 죽는 경우를 뜻해. 20세기 초까지도 합병증은 곧 죽음을 의미했을 정도였지. 때문에 환자나 의료진 모두에게 수술은 공포의 대상이었어.

# 산모를 구하라!
제멜바이스, 세균을 밝혀내다
1840년대 말,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던 나는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한단다. 우리 병원에는 두 병동에 각각 분만실이 있었는데 제1병동에는 의사와 의대생이 근무했고, 제2병동에 서는 조산사가 산모를 돌봤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사들이 맡은 분만실보다 조산사들 이 일하는 분만실의 산모 사망률이 훨씬 낮은 거야.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말이지 ‘제1병 동에서 아이를 낳느니 길바닥에서 낳는 것이 낫다’는 평이 있을 정도였어. 실제로 병동에 오기 두려워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의사로서 가슴 아픈 일이지.
나는 산모들이 죽어가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열심히 관찰했어. 그런데 헉! 의사들이 시체를 만지거나 감염성 질병을 앓는 환자를 돌보다 아무런 조치 없이 분만실로 들어가는 것을 계속해서 목격하게 된 거야. 유레카! 이거야! 나는 동료 의사들이 분만실에 출입할 때 수술 도구와 손을 비누와 염소로 소독하도록 했지. 그 결과 산모의 사망률이 제 2병동보다 제1병동에서 처음으로 낮아졌어. 그래, 세균의 존재를 밝혀낸 거야.



# 피는 곧 훈장!?
동료들에게 외면받다
난 세균이 감염의 원인임을 동료 의사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어. ‘우리 의사들 때문에 너무 이른 시기에 무덤으로 간 환자가 얼마나 많을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 이라며 관찰한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지. 그런데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발생한 거야. 동료들과 의학계가 대대적으로 반발하면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지.
세균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의사들은 여전히 환자의 피를 손에 묻히고 다니는 걸 훈장처럼 여겼고 나의 뜻에 따라 손을 씻을 경우 그건 자신들이 그동안 한 수술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내 의견을 묵살해버렸어. 내 주장은 당시로썬 너무 파격적이었던 거야.
결국 나는 근무하던 병원에서 쫓겨났고 고향인 부다페스트로 돌아와 작은 산부인과를 개업해 운영했지. 그럼에도 환자들의 소중한 생명을 세균으로부터 구하고 싶어 유럽 전 역의 산부인과와 병동에 세균 감염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는 편지를 꾸준히 보냈지. 계속해서 논문도 발표했고. 언젠간 동료들도 내 뜻을 받아들일 날이 있으리라 꿈꾸면서 말야.
그러나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의학계는 나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조롱했지. 난,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어. 결국 정신병동에 수감되고 말았단다.

+ 뒷 이야기
정신병동에서 동료들의 비난과 직원들의 구타로 괴로워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제멜바이스. 사후 30년이 지나 결국 그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의 연구는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의학계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부다페스트대학’의 이름을 ‘제멜바이스 의과대학’으로 바꾸었답니다. 제멜바이스는 깨진 계란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안심하고 수술실에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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