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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75호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부모의 책임감 담긴 일본 학생들의 도시락



일본은 ‘식(食)’을 중시하고, 식도락 문화도 발달했다. 도시락 문화도 매우 우수하다. 편의점에는 각양각색의 도시락이 구비돼 있고, 지역은 물론 기차역을 대표하는 도시락도 즐비해 일본 관광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로 꼽힌다. 학생들도 급식보다 도시락을 선호한다. 학생이 되면 한두 끼는 학교에서 책임지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고교생도 엄마 손맛을 벗어나지 않는다. 비슷하면서 다른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학교식당 있어도 도시락이 최고
일본도 한국처럼 급식을 제공하는 학교가 많다. 특히 국공립학교는 대부분 급식을 제공한다. 한데 딸아이 학교는 공립 중·고 일관고인데도 급식이 없다. 중·고등학생이 함께 쓰는 학교식당이 있지만 이용하는 학생들은 거의 고등학생, 그중에서도 3학년이 주를 이룬다.
중학교 3년 내내 도시락을 들고 다녔던 딸아이에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학교식당을 이용하라고 말했지만, 딸아이는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도시락을 싸오는 대다수의 친구들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된 딸아이 친구 엄마의 SNS나 아이의 휴대폰 사진에 담긴 친구들의 도시락을 보면 모양새부터 남다르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일부 진학 학교에서는 부모들이 학교급식을 꺼리기도 한다. 좋은 식자재를 써 아이에게 최적화된 영양 식단을 제공하는 것은 부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엄마인 나로서는 도시락을 매일 싸는 일이 쉽지 않았다. 현지인들에게 모양이나 냄새가 불쾌하지 않은 반찬을 싸야 한다는 외국인 엄마로서의 고민이 컸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겪은 일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불고기를 반찬으로 싸준 날 저녁, 아이의 도시락은 그대로 돌아왔다.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옆자리의 일본인 친구가 “아, 마늘 냄새! 한국 냄새!”하며 코를 막아 먹을 수 없었단다.
일본인들이 마늘 냄새에 예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딸은 일본인 친구의 행동에 놀라기보다 상처를 받은 모양이었다. 음식 문화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방인인 우리가 이해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맛있다, 우리 문화다”라고 내세우기에 앞서 현지인의 성향도 존중해 알맞은 시간과 장소에서 한국 음식 문화를 전하는 게 서로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도시락에 대해 여유가 생겼다. 편하게 집에서 즐기는 반찬을 싸준다. 아이의 학교 친구들도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부카츠의 영향? 선후배 관계 매우 엄격
아이가 학교식당을 이용을 꺼린 이유 중 하나는 고3 선배들이 많아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일본 학교의 엄격한 선후배 관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근의 한국 학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 학교는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가 강하다.
중·고 일관고와 부카츠의 영향이 크다. 중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까지 한 학교에 재학하는 일관고의 경우 5년 동안 선후배 관계가 유지된다.
한국의 동아리 활동과 유사한 부카츠는 선배가 신입생을 선발하고 후배를 교육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본 학교의 선후배 관계는 한국보다 긴밀하고 엄격하다.
딸아이 학교 학생의 대부분은 부카츠를 하므로 상급생인 고3 선배와 학교 식당을 함께 이용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대입을 코앞에 둔 선배들의 편의를 높인다는 명분 아래 1, 2학년은 자체적으로 식당 이용을 최소화한다. 인상적인 것은 학생들이 만든 규율을 학부모나 학교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불편하거나 불합리할 수도 있지만, 어른들이 나서서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드물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학생들 스스로 만들고 지키면서 개선해나가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외국 생활은 익숙한 것들과 현지인의 일상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의 연속이다. 학교 문화도 다를 것 없다. 공부하고 먹고 노는 아이의 삶은 어디에서나 같지만, 어떻게 공부하고 먹고 노는지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특히 엄마에게 다소 번거로울 수 있는 도시락 문화는 일본의 교육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상급 학년일수록, 대입 실적이 우수한 진학 학교일수록 도시락을 싸주는 학부모가 많다. 신선하고 안전한 재료로 만든 먹을거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나 쥬쿠(학원)에서 보내는 청소년이라도, 가정의 역할과 책임을 학교 이상으로 무겁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은 여러모로 나를 돌아보게 한다.






1. 학교식당의 식권 자판기. 학생들은 필요할 때 가서 사 먹는다.
2. 김밥 도시락. 딸은 물론 일본 학생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3. 딸과 친구들의 점심시간. 함께 도시락을 즐기고 있다.
4. 딸 친구 엄마의 SNS에 올라온 도시락 사진. 반찬 하나도 모양을 내 담은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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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8년 09월 12일 8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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