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은 가족 중심 생활에서 또래 중심 생활로 이동하려는 시기이다. 엄마의 말 한마디보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더 무게중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그러나 모든 교우 관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교우 갈등에서 상처를 받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기도 한다. 아이들이 관계의 건강함을 유지하려면 엄마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긋난 관계에 서 있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각적으로 조명해봤다.
취재 김지연 리포터 nichts29@naeil.com 도움말 이수석 교사(인천 강서중학교)·이보람 변호사(법무법인태율)·차주현 대표(차주현심리상담센터) 참고 <폭력 없는 교실은 어디 있나요?>
CASE 1 친구를 때리는 아이들
“네가 우리 엄마 이름을 막 불렀잖아.” 친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친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다. 미안하다는 사과보다 상대를 때린 이유를 먼저 둘러댄다. 이처럼 상당수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상대의 원인 제공으로 정당화한다.
“잘못한 사람도 때릴 수 없음을 알려주세요”
이런 버릇은 자신의 폭력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앗아간다. 법무법인태율 이보람 변호사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가 자신을 괴롭힐 때 자신을 스스로 구제할 권한, 즉 자력구제권이 없다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나 영화에서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를 직접 응징하는 장면을 많이 보고 자라 자신을 괴롭힌 상대를 자신이 직접 응징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 변호사는 “잘못한 상대를 징벌할 권한은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나 국가가 징계권, 형벌권을 갖는다. 엄마가 이점을 아이한테 인식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CASE 2 투명인간 된 아이들
점심시간,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다 말고 한 학생에게 “넌 빠져”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시합에서 실책을 저지른 아이에게 가하는 응징이다. 한 아이가 나서고 다른 아이들은 침묵으로 동조한다. 교실엔 한 여학생이 혼자 남았다. 어제까지 급식실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갑자기 이 학생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한 탓이다. 이 학생만 빼고 단톡방도 따로 만들어서 이 학생의 휴대전화는 조용해진 지 오래다.
“열린 질문으로 아이 고통 빨리 알아채야”
신체적인 변화가 없어 학부모가 알아채기 힘든 유형의 학교폭력이다. 다시 말해 아이의 이상 징후를 빨리 눈치채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인천 강서중 이수석 교사는 “평소에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하교 후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원 숙제 다 했니?”보다는 “오늘은 어땠어?”와 같이 “네” “아니요”로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고 아이가 말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야 아이도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 또한 이 교사는 “학부모가 아이들의 갈등을 교사에게 전할 때는 되도록 사건의 내용(팩트)만 전달하는 게 좋다. 감정까지 전달하며 입장을 표명하면 본질이 흐려질 우려가 있다. 일이 확대되기 전, 아이가 겪은 상황을 말해주길 권한다”고 강조한다.
CASE 3 재미 삼아 친구를 놀리는 아이들
“우리반 아싸(아웃사이더) 지나간다.” “아냐 쟨 전따(전교 왕따)야.” 중학교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아이들은 상대를 비하하는 말을 죄책감 없이 쓴다. 상대가 기분나빠하거나 반박해도 죄책감은 없다. “재미로 그러는 건데 왜 별나게 굴어?” “사실이잖아”라며 그 말을 웃어넘기지 못하는 학생의 마음이 좁은 탓이라고 단정한다.
“상대가 불쾌해하면 ‘폭력’이라는 것 알려야”
요즘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의 대부분은 정제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한 말이 학폭위에 오를 수도 있다는 걸 모른다. 이 변호사는 “중학교 교실에서 흔히 오가는 말이더라도 언어적 폭력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사실을 말하는 것도 명예훼손이 된다는 걸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법적으로도 외모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학생의 이성관계가 사실이라고 그것을 지목해 놀리거나 퍼트리면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일 때, 이것만은 알아두자
✚ 아이 위해 문제 덮으면, 더 큰 상처
사건 해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주위 사람의 응원은 줄고 피로감은 늘어난다는 점이다. 가해자나 학교 등의 태도에 2차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 아이를 위해 사건을 빨리 정리하려는 피해자 학부모가 나타나는 이유다. 하지만 피해 학생에겐 사건의 빠른 해결보다 응어리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 차주현심리상담센터 차주현 대표는 “가해 학생에게 사과를 받고, 만족할 만할 결과가 나와야 치유가 시작된다. 무조건 상황을 덮으면 피해 학생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학부모도 심적으로 지치겠지만 우선은 아이의 절대적인 지지자가 돼줘야 한다”고 전한다.
✚ 학교 상담 기록 모아두세요
신체적 폭력 이외에 정서적 폭력이나 언어적 폭력은 가해자가 가해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변호사는 “그럴 경우 학교 상담교사와 상담하고 기록을 모아두면 나중에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가해자? 언어로 보는 학교폭력 사례
◈ 시험 결과지를 보고 반 단톡방에 특정 아이의 낮은 시험 점수를 공개하고 비웃는다.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한다.
◈ 입이 큰 친구한테 ‘하마’라고 하는 등 친구와 닮은 동물 이름을 부르며 자주 놀린다.
◈ 반 아이와 싸운 뒤 “죽을래” “너 가만 안 둘 줄 알아”라는 문자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다.
◈ 중3 형이 중1 동생과 다툰 동생 친구한테 찾아가 혼내주겠다고 수차례 말한다.
◈ 조별 숙제를 하면서 한 학생을 의도적으로 “빠져” 하고 여러 번 제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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