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사진 윤소영 리포터 yoonsy@naeil.com
‘초록 괴물’ 두 얼굴의 사춘기
“빨리 일어나! 또 지각하겠어. 서둘러. 어제 늦게 잤니?”
“방 꼴은 이게 다 뭐야? 정리 좀 해! 옷 좀 걸어두고.”
“게임 몇 시간째야? 수행평가 끝냈니? 학원 숙제는?”
“빨리 방문 안 열어! 셋 셀 때까지 열어! 하나, 둘, 둘 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늦둥이 아들이 중학생이 되더니 변했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자기 할 일 찾아 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는 상냥하고 싹싹한 초등학생이 중학교 문턱을 넘자 딴사람이 된 것 같아요. 아침마다 늑장 부리다가 깨워줘야 후다닥 뛰어나가고, 교복은 벗어놓은 그대로 양말, 잠옷과 산을 만들어두죠. 그뿐인가요? 책상 위는 온갖 프린트물, 교재가 뒤엉켜 필요한 물건을 찾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아이의 머릿속이 딱 이런 것 같아요.
게임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어 한소리 할라치면 격한 저항과 함께 눈동자의 흰자를 드러내며 “왜 나에겐 자유가 없냐”며 소리치곤 방으로 들어가네요. 그러곤 연필을 두 동강 내고 시험지를 박박 구기며 씩씩거리죠. 귀여운 소년이 난폭한 ‘초록 괴물’로 순식간에 변하는 장면을 목도한 느낌이에요. 들끓는 사춘기 호르몬과 리모델링 중인 전두엽, 격한 감정 회로의 편도체가 자극된 걸까요? 아님 스·라·밸(스터디 라이프 밸런스)이 어긋나는 학업 스트레스 때문일까요?
긴 호흡과 참을 인(忍) 자를 마음에 새기며 말을 걸었더니, “죄송해요~ 근데 저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화가 나서 주체가 안 돼요. 또 안 그런다고는 약속 못하겠어요”라고 하네요.
상냥했던 우리 아들, 이 시기를 잘 넘기면 돌아오겠죠?
어른들의 사춘기, 갱(更)년기
“이거 아빠 거 안 남기고 다 먹어버린 거야?”
“그 공연 아빠도 보고 싶은데 너희들 것만 예매했어?”
오십 줄에 막 접어든 남편이 최근에 집에서 하는 말들이에요. 평소 말수도 적고 늘 회사 일로 바빠 저녁 식사나 가족 행사는 저와 아이 둘이 치르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요즘 들어 자기만 소외된 것 같다며 섭섭함을 토로합니다.
“아빠도 같이하자. 우리, 가족 티셔츠도 맞춰 입을까?”
“아빠, 요즘 좀 이상해요~ 말도 많아지시고….”
눈치 빠른 큰아이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마디 합니다.
저도 갱년기 증상이 시작됐어요. 수시로 더웠다 추웠다 계절을 알 수 없이 변하는 체온과 홍조에 아들의 사춘기와 대결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 기복, 신경질, 우울증, 두통, 불면증 등이 생기고 있거든요. 이게 바로 갱년기라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건강 보조제나 운동, 산책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요. 얘기를 들어보니 제 주변의 남편들도 그렇다네요. 평소와 달리 드라마 보다 눈물 흘리고, 작은 일에도 삐치고, 참견이나 잔소리가 많아지고, 우울해하는 ‘남자 갱년기’.
다시 ‘갱’, 갱(更)년기! 100세 시대에 인생 절반을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뜻일까요? 슬슬 노안이 오고 자주 깜박하는 신체의 노화는 시작됐지만 한편으로는 인내할 줄 아는 여유, 넉넉한 사랑, 분별 있는 지혜가 늘어난 것도 같아요. 아들의 성장통과 부부의 갱년기 고충이 지나가면 더 단단하고 끈끈한 가족으로 업그레이드되리라 기대해봅니다.
매일 비슷해한 일상 속 특별한 날이 있죠. 학생,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담는 코너입니다. 재밌거나 의미 있어 공유하고 싶은 사연 혹은 마음 터놓고 나누고 싶은 고민까지 이메일(lena@naeil.com)로 제보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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