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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호

토닥토닥 Talk Zone 토·톡·존

우리들의 가을 이야기

취재·사진 김성미 리포터 grapin@naeil.com


#1. 가을바람 살랑



호수공원 근처로 이사를 올 때, 매일같이 산책을 해야지 마음을 먹었지만 행동에 옮기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마시는 향기로운 모닝커피 한 잔에 발이 묶여 한동안 숨 쉬기 운동만 하고 살았답니다. 어느덧 몇 번의 계절이 지나 선선한 가을이 다시 왔네요. 뻐근한 목과 묵직한 허리통증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공원으로 나섭니다.

코끝에 스치는 서늘한 새벽공기와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 몇 알이 가을이 온 걸 알려주네요. 억새 위로 피어오르는 태양을 보며 사춘기 딸과 투닥이던 어제의 나는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습니다. 오늘은 좀 더 상냥하게 말해야지, 쓸데없는 잔소리 대신 좋아하는 요리로 사랑을 전하리라 다짐하면서요.

“딸, 오늘 메뉴는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에 투플 한우야. 우리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




#2. 추억은 멜로디를 타고


어느 날, 딸아이가 제게 ‘세시봉’을 아느냐고 묻더군요. 합창부 공연에 새로운 레퍼토리가 추가됐나 봅니다. 1학기 내내 <아름다운 나라>와 <걱정말아요 그대>를 연습하더니 이젠 사랑을 노래합니다. 소프라노 테스트에 합격한 맑고 고운 목소리로요.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걸~♪. 사랑받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 건 없을걸~♬”

천만 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가사지만, 세시봉과 엄마라니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며 허탈하게 웃었어요. 엄마는 이래 봬도 지오디 세대라며 옛날 사람 취급하지 말라고 했죠. 그랬더니 추석 연휴에 할머니 품으로 쪼로로 달려가, 할머니는 ‘세시봉’을 아냐고 재차 묻습니다. 포크송을 사랑하는 할머니와 오랜만에 코드가 통한 손녀딸. 60년의 세월을 건넌 몽글몽글한 하모니는 열흘 뒤 공연장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올 한 해 합창 연습하느라 수고한 우리 딸, 마지막까지 너무 멋졌어. Brava, Bravi.”




#3. 이 또한 지나가리니


새침하게 흐린 품이 비가 올 듯하더니 비는 아니 오고 구름이 잔뜩 낀 날. 공 들여 준비한 음악회 행사를 무사히 마쳐 긴장이 풀린 탓일까요? 오랜만에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오겠다던 딸에게 사고가 났습니다. 대한민국 초·중딩들의 국민 놀이 ‘지옥 탈출’을 하다가 그만 손가락이 꺾였다고요. 멍이 들어 퉁퉁 부은 새끼손가락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가까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어이쿠 골절 당첨이네요. 앞으로 최소 한 달은 반깁스 신세, 상태를 보고 통깁스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성장판 손상이 없어 다행이긴 한데, 왜 하필 오른손을 다친 건지. 당장 학교에서 필기는 어찌하고 과제물은 어떻게 소화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엄마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딸이 한마디 거드네요.

“엄마, 나 그럼 오늘 수학 학원 못 가는 거지?”

아니, 그게 지금 이 타이밍에 할 말이냐고 소리를 빽빽 지르고 싶지만, 참을 인(忍) 자를 가슴에 새기고 차분하게 답합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겠지. 약 먹고 쉬어”라고요. (bgm: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어릴 적 아이가 발목을 다쳤을 때 품에 끼고 업고 다닌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세 번째 깁스입니다. 앞으로 머리 감기고 씻기고 입히며, 사춘기와 갱년기로 틈이 생긴 엄마와 딸의 거리를 좁혀보려 합니다. 전화위복을 꿈꾸며, 이 또한 지나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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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Talk Zone [토·톡·존] (2023년 10월 18일 1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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