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의 문해력을 생각하면 이러다가는 일상 대화도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과 대화하다가 아찔해졌던 순간을 소개합니다. 얘들아, 폰은 그만 보고 책 좀 읽자!
글·사진 김은진 리포터 likemer@naeil.com
시발점 | 이 사건의 ‘시발’점은 욕이 아니란다
아이가 논술 학원을 다녀오자마자 씩씩거리며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요. 논술 주제가 역사였는데 선생님이 동학농민운동을 설명하며 “이 사건의 시발점은 무엇일까?”라고 해서 애들 사이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에요. 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 덕분(?)에 선생님은 순식간에 비속어를 말한 사람이 돼버렸고요.
얘들아, ‘시발’은 처음 시(始), 필 발(發)이야. 즉 시발점은 사건이 시작된 지점이라는 뜻이고~ 한자는 잘 몰라도 문맥을 통해 뜻을 유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큰 기대였을까요?
개편 | 개편하다의 ‘개’는 멍멍이가 아니야
개편은 책이나 과정, 조직 등을 고쳐 다시 엮거나 만드는 일을 말합니다. 고칠 개(改), 엮을 편(編)을 써요. 회사에서는 조직 개편 등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데 저와 남편의 대화를 들은 아이가 “그럼 조직이 ‘개(멍멍이)+편해지는’ 거야?”라고 되묻네요. 아이고, 머리야.
실제 ‘개-’는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쓸데없는’이란 의미를 더하는 접두사로 쓰여요. 개떡, 개수작, 개꿈의 ‘개-’는 멍멍이란 뜻이 아니라 모두 이런 뜻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우리말입니다. 뭐,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멍멍이라는 의미가 와닿긴 하지만 그래도 얘들아, 원래 뜻은 좀 알고 쓰자, 응?
사흘 | 4일이니까 사흘? 그럼 3일은?
“엄마, 카페가 리모델링으로 ‘사흘’간 쉰대요. ‘사’니까 4일, 그러니까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휴업 맞죠?” 아이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물었어요. “그럼 3일은 뭘까?” “…….”
사흘은 삼일(三日)의 우리말이에요. 이 기회에 날짜를 셀 때 쓰는 우리말을 다시 한 번 복습해볼까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사실 ‘사흘’의 의미를 헷갈리는 어른도 꽤 있어요. 하지만 모르면 제대로 배워야죠. 오늘은 온 가족이 모여 우리말 퀴즈 대회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요? ‘모레, 글피, 그글피’의 뜻을 맞히는 사람에게 치킨 쏜다!
이지적 | 내가 쉬워 보여요?
‘이지적인 분위기가 느껴져요’란 말은 좋은 칭찬이죠? 남편이 회사의 어린 후배에게 이렇게 칭찬했다가 ‘이지’를 영어 ‘easy’로 받아들여 곤란했다고 하네요. 내가 그리 쉬워 보이냐는 반응에 분위기만 싸해졌다고 하니 참 난감합니다. ‘이지(理智)’적이라는 말은 용모나 언행에서 풍긴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칭찬도 생각하고 해야 하는 시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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