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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호

김한나의 이슈 콕콕 13 | R&D 예산 감축

첨단기술 중요한 때 지원 축소, 후폭풍은 미래 세대 몫?!

IMF(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와중에도 증가했던 R&D(국가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8월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내년도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을 전년 대비 3조4천500억 원 줄인 21조5천억 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연구개발 예산이 줄어든 것은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64년 이래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첨단기술이 국가 생존과 번영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 같은 조치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첨단기술 인력이 해외로 대거 유출되는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R&D 예산 삭감과 이에 따른 논란을 짚어봤다.

김한나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인류 역사 바꾼 ‘맨해튼 프로젝트’

1939년 10월, ‘박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1순위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손에 쥐어졌어.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으니 미국이 한 발 앞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지. (사실 이 편지는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게 아냐. 동료 과학자들이 작성한 글에 서명만 했을 뿐이거든. 훗날 아인슈타인은 이를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해.)

루스벨트가 ‘무브~무브!’를 외치며 즉각 행동을 지시하자 곧바로 우라늄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1942년 6월 ‘원자폭탄 연구 및 제작’이라는 특수 임무를 띤 군사 지역이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에 설치됐어.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현재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인 영화 <오펜하이머>의 배경이 된) ‘맨해튼 프로젝트’란다.

이론만 있을 뿐 현실 가능성이 불투명했던,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을 요한 이 프로젝트에는 13만 명의 과학기술자가 동원됐고 20억 달러(지금 가치로 약 280억 달러니까 우리 돈 34조 원에 달해.)가 투입됐어. 이론을 다루는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장치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엔지니어까지, 모든 인력이 서로 자유롭게 토론하며 소통해 뭐라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미국 정부는 3년이란 세월 동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을 쏟아부었단다. 결국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원자폭탄은 1945년 8월 6일 일본에 투하됐지.


과학 강국 향한 시발점, ‘kist’

원폭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과학기술과 R&D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한 크나큰 계기였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은 1965년 창설된 KIST(키스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어. 초대 원장은 최형섭 박사였는데 변변한 사무실도 갖추지 못한 채 고군분투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지. 그랬던 KIST가 성과를 내기 시작한 건 당시 집권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이 전폭적인 후원을 하면서부터야. 베트남전쟁 참전의 대가로 박정희 정권은 미국 측에 단기 원조가 아닌 ‘한국 공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종합연구기관 설립’을 요청했고 린든 존슨 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거든.

이듬해 드디어 KIST연구소 부지가 결정됐고, 착공 3년 만인 1969년에 준공되기 이르렀단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진흥, 경제 개발 및 국력 증강을 위해 막중한 사명을 차질 없이 수행할 것”을 과학자들에게 당부하곤 전 연구진이 마음껏 연구 활동을 펼칠 수 있게 정부로부터 사업 계획 승인이나 회계감사를 받지 않도록 행정을 간소화했어. 또 당시 한국에 없던 의료보험을 미국과 계약해 지급하게 했고 급여 수준도 국내 대학교수의 2~3배로 책정했지. 그러면서 한 말, “kist는 감사하지 마라”.

이후 가발과 섬유가 주력 수출품이던 한국은 1988년 도핑테스트 기술을 선보여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고, 2000년대에 세계 최초로 차세대 반도체 스핀트랜지스터와 플렉시블 메모리를 개발하는 등 굵직한 업적을 이뤄냈어. 그리고 지금은 반도체, 바이오, 미래차를 수출하는 경제 규모 8위의 강국이 됐지. 이런 걸 뭐라고 한다? 기적!





과학기술계 ‘패닉’

KIST 창립 초기 12억 원에 불과했던 정부 지원금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 국가 전체 예산 대비 5.1%에 달하는 약 30조 원이야. 이는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에 이은 세계 5대 규모이며 GDP(국내총생산) 대비 투자 비중으론 세계 1위 수준이야. (1981년엔 KIST와 KAIS(한국과학원)이 통합돼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설립됐다가 이후 분야별 산하 조직으로 나뉘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단다.)

IMF라는 모진 시기와 금융위기의 풍파 속에서도 우리 정부는 뚝심 있게 R&D 투자를 지속했어. 그 결과 1992년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발사됐고 이듬해인 1993년엔 ‘우리별 2호’가 우주에 올라갔지. 2021년엔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해 1톤 이상의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라는 쾌거를 이뤘고. 현재 세계를 이끌어가는 우리 ‘이차전지 기술’도 10년 전부터 대학과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와 같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자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기업들과 기초 연구부터 해온 결과물이란다.

과학기술 R&D를 담당하는 기구는 크게 대학과 출연연 그리고 기업 연구소로 구분돼. 기업 연구소는 기업의 필요에 맞춘 R&D에 중점을 두는 반면 대학에서는 지식을 생성해내는 기초 연구를, 출연연은 국가적 요구에 맞춘 연구를 담당하면서 대학과 기업을 잇는 가교 역할, 즉 응용연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실상 대학과 기업이 장기간에 걸쳐 대형 연구를 추진하기란 쉽지 않아. 때문에 정부가 지원하는 출연연이 대형 연구를 거의 도맡아 하고 있는 상황이고. 한데 최근 과학계가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였다고 해. 내년도 출연연 주요 사업비 예산이 전년 대비 25%나 줄어들었거든. KIST와 항공우주연구원(KarI)이 23%,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bb)과 KISTI가 28%,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도 약 10% 삭감을 통보받았고.


‘R&D 카르텔’을 잡아라!

윤석열 대통령은 6월 28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카르텔’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나눠 먹기·갈라먹기 식 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어. 이에 국가 R&D 예산안은 법적으로 6월까지 확정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돌연 심의가 미뤄졌고 감사원은 R&D 운영 실태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지.

또한 7월 2일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최근 해외 순방을 다니며 세계적인 명문 대학 석학들을 만나면서 ‘R&D가 국가 경쟁력 확보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키웠다. DARPA(다르파,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에 갔을 때도 영감을 많이 받았다. 뻔한 형식적인 국가 R&D 말고 (세계 석학들과) 국제 공동 연구를 추진하라 (지시했다)”는 발표를 내놨어. (그 뒤 연구기관들에 이틀 안에 국제 공동 연구 계획안을 제출하라고 했다지.)

갑작스러운 통보에 과학기술계가 항의하자 과기부 주영창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지난달 7일, “카르텔적 요소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내년도 R&D 예산안 감축의 당위성을 강조했어. 현재 R&D는 과거 추격형 연구에 머물러 있고 비효율 누적·예산 낭비·기득권 형성 등 문제점이 노출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했지. 또 ‘갈라파고스 R&D’가 아닌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실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고. (하지만 ‘어떤 나라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냐?’ 는 물음엔 답하지 못했음.)




R&D, 국가 미래 대비하는 초석

8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내년도 전체 예산안과 재정 운용 계획이 공개되자 파장은 더 커졌어. 기획재정부가 12대 분야 2023~2027년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을 3.6%로 제시했는데 R&D는 가장 낮은 0.7%로 책정됐거든.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주장하는 낡은 관행 타파와 예산 효율화 입장엔 동의하나 오직 ‘효율성’이라는 관점으로 R&D를 재단한다면 도전적 연구보단 성공률 높은 R&D만 선택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어. 출연연 관계자도 “대다수 선진국에서 R&D 예산 변화를 5% 이내로 잡는 이유는 새로운 지식을 개척하고 축적하며 인재를 키우는 일이야말로 국가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출연연이 주도해 만든 반도체·통신·원자력·우주기술 등도 효율성만 따졌다면 연속적으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지.

이미 과학기술계가 걱정했던 일들은 현실화되기 시작했어. 8월 21일부로 전기료 상승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KISTI 내부 GSDC(대용량데이터허브센터)가 운영하는 슈퍼컴퓨터 일부가 가동이 중단됐고 출연연에 있는 박사후연구원(포닥)들에게 권고사직서가 날아오고 있는 형편이거든. 국가슈퍼컴퓨팅본부의 슈퍼컴퓨터가 멈추면 얘 혼자 ‘얼음!’이 되는 게 아냐. 이 아이가 분석하던 연구들도 줄줄이 정지돼버렸다고~ 또 NST(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25개 출연연에는 포닥 1천471명, 대학원생 3천635명이 계약직 형태로 매년 계약을 갱신하면서 연구과제에 참여하고 있는데 (단순 예산 삭감 비율로 따져) 포닥 370명, 대학원생 916명이 연구실에서 곧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들이 나가면 지금껏 연구했던 일들이 물거품이 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우수 인력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크다. 예산 절감보다 국력 낭비가 더 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며 경고하고 있어.


R&D 지원, 패러다임 바꿀 때

다시 놀란 감독이 놀랍게 만든 영화 <오펜하이머> 속 ‘맨해튼 프로젝트’로 돌아가보자. 한데 모여 3년 만에 원폭을 개발한 13만 명은 그냥 과학기술자가 아냐. 한평생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 ‘매미’들이었지. 여름철 한 달 남짓한 삶을 살기 위해 17년을 땅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매미 말야.

정부는 전반적인 R&D 예산은 삭감하면서도 첨단바이오, AI, 사이버보안, 이차전지, 반도체 등 ‘첨단과학’ 쪽은 투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했어. 한데 말야, 20년 뒤 또 100년 뒤엔 어떤 게 첨단이 될지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만 2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어. 당장의 성과가 아닌 중장기적 안목으로 기초과학 분야 인재 양성에 나선 결과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아.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높은 교육열과 정부 주도적인 과학기술 지원 정책이 있었기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축적한 인재들이 국가 번영에 앞장설 수 있었던 거라고. 어쩌면 국가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과학기술자 군단을 얼마나 양성해내느냐에 달렸을지도 몰라. 우리가 처한 ‘자원의 빈약함’을 ‘기술 우위’로 극복하게 해줄 유일한 해결책일지도 모르니 말야. 과학계 떡잎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정부가 이번 R&D 삭감안을 다시 한 번 재고하길 바라. 그럼 이만 총총~





재기발랄한 문체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한나 리포터가 화제의 시사 이슈를 콕콕 집어 해설합니다. 쉽고 재밌고 깊게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보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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